금세기 최고의 여류조각가 니키드 생 팔(1930~2002)
나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겨누어 쏘았다...64세에 쓴 회고록 "나의 비밀" 중에서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 힘이 있다고 믿는다. ”

금세기 최고의 여류조각가 니키드 생 팔의 명언이다. 

모든 훌륭한 예술은 고통과 상처의 영혼으로 창조되고 완성된다. 니키드 생팔은 어쩌면 바로 그러한 상징적인 예술가인지 모른다.

니키 드 생팔(1930.-2002)은 1960년대 유럽의 다양한 미술의 흐름속에서 전개된 누보레알리즘 운동 속에서 활동한 최초의 여성 조각가로 1930년 파리 근교에 있는 뇌이 쉬르 센(Neuilly-sur-Seine)에서 출생했다.

다섯 자녀 중 차녀로 태어난 그녀는 가족은행의 소유주였던 아버지가 1929년 대공황 당시 모든 부와 사업을 잃고, 1937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녀는 이때부터 니키(Niki)라고 불렸다.

그녀는 1941년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외조부모님 댁으로 보내져 3년 동안 생활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다.

1942년 다시 뉴욕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인 에드가 앨런 포,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에 심취하였고 학교연극에 참여하여 첫 번째 희곡과 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에 있는 그리스 조각상의 포도 잎 모양 국부가리개 부분을 진한 붉은 색으로 칠한 것을 보고 교장선생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니키를 퇴학시키겠다고 하여 결국은 학교를 접고 니키의 부모님은 딸을 뉴욕주에 있는 미션스쿨, 쉬프랭 학교의 기숙사로 보냈다.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 탓으로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그녀는 그러나 탁월한 미모 때문에 18세 때 1948-1949년 잠시 동안 모델로 일을 했다.

<보그>, <하퍼스 바자>에 그녀 사진이 실리기도 했고  <라이프 매거진>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18세에 해리 매튜(Harry Mathews)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고 1949년 6월 6일 뉴욕에서 결혼을 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는 않았다.

▲ 이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니키드 생 팔은 그로 인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예술가로 출발하여 활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유년시절은 불안하고 불행했다.

영어 가정교사와 바람난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불우한 시절의  심각한 상황을 겪고, 페미니즘적인 사상의 영상을 담는 작업들은 이런 그녀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려준다.

 20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지만 1952년부터는 오히려 예술적 재능보다는 신경쇠약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

점진적으로 그 그림들은 그녀의 인생을 서서히 바꿔 놓았다.

전문 미술교육을 배운 조각가가 아닌 그녀의 예술은 그래서 순수했다.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니키 드 생팔은 틀에 박히지 않은 그녀만의 독특한 사고와 방법으로 작품세계를 펼쳐 나갔고, 각별했던 어린 시절에서 그녀는 오히려 예술을 독창적이고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이런 상상은 모두 그녀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녀의 작품에 혁신적인 전환기는 첫 남편과의 이혼 후 두 번째 남편이 된 조각가 쟝 팅겔리(Jean Tinguely, 1925-1991)의 영향이었다. 쟝 팅겔리는 “모든 것은 움직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움직이는 미술이란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실현하였다.

조각적 요소와 건축적 구조에 바탕을 둔 니키 드 생팔의 작품세계는 현실화 되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조각적 요소와 건축적 구조에 바탕을 둔 니키 드 생팔의 작품세계는 현실화 되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 조각적 요소와 건축적 구조에 바탕을 둔 니키 드 생팔의 작품세계는 현실화 되었다.

그녀는 1961년 '슈팅 페인팅 shooting painting'으로 누보레알리즘 작가로서 이름을 얻었는데 이 작품은 마을 축제 같은 전시장에서 관객에게 총을 주어 캔버스 위에 매달아 놓은 물감 주머니를 쏘게 함으로써 무작위적인 퍼포먼스의 작업이었다.

다양한 형태와 기법으로 작업을 보여준 생팔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1983년에 제작한 표지에서 보이는 퐁피두 센터 옆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수>이다.

생팔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1983년에 제작한 표지에서 보이는 퐁피두 센터 옆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수"이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생팔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1983년에 제작한 표지에서 보이는 퐁피두 센터 옆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수"이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퐁피두 센터 바로 맞은편의 브리스미슈 거리로 들어가면 스트라빈스키 광장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파리 최초의 현대식 예술작품이 설치된 분수로 모두가 움직이는 조각 예술품들이다.

이 스트라빈스키 광장 분수는 러시아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vinsky, 1882-1971)의 발레조곡 "불새"(L'oiseau de feu-The Firebird Suite)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당대에 유명했던 발레 연출가 디아길레프에게 의뢰를 받아 러시아의 전설을 기초로한 발레 조곡 "불새 L'oiseau de feu-The Firebird Suite" (1910)를 작곡 했는데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내용과 러시아 민요적인 선율로 화려하고 현란한 춤으로 파리의 발레애호가들을 매혹시키므로 일약 유명해진 작곡가이다.

한때는 빠리의 패션계의 대명사격인 코코 샤넬과도 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움직이는 분수 조각’이 조각가 장 팅겔리와 아내 니키 드 생팔의 부부공동 작품이다.

이곳은 항상 젊은이들로 붐비는 활기 넘치는 휴식 공간이며,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부부조각가는 1960년대부터 끊임없이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발표해 왔는데, 팅겔리는 1991년 66 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빌 , 즉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키네틱 아트의 거장이었다.

특히 부부는 조각에 정지나 멈춤이 아니라 모터와 기계 장치를 결합하여 조각에 움직임을 부여한것으로  ‘움직이는 분수 조각’에 대부분의 형상의 조각들이 천천히 돌아가면서 물을 내뿜도록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와 경쾌하고 신기한 형상으로 만들어져 보는 사람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준 대표작으로 사랑 받고 있다.

니키 드 생팔은 2002년 72 세로 삶을 마칠 때까지 두드러진 특징은 원색적이고 매우 화려한 색을 칠하여 사람과 동물 모양의 형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니키 드 생팔은 2002년 72 세로 삶을 마칠 때까지 두드러진 특징은 원색적이고 매우 화려한 색을 칠하여 사람과 동물 모양의 형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니키 드 생팔은 2002년 72 세로 삶을 마칠 때까지 두드러진 특징은 원색적이고 매우 화려한 색을 칠하여 사람과 동물 모양의 형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불새, 음자리표 솔, 나선 스파이럴, 코끼리, 여우, 뱀, 개구리, 대각선, 죽음, 사이렌(인어), 나이팅게일, 사랑, 생명, 심장, 어릿광대의 모자, 래그 타임 등 16개의 조각품들이 마치 스스로들 쇼를 하듯이 마구 움직이며 색채와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매우 다양한 주제마다 유머러스하고 익살스러운 동시에 다이내믹한 구성과 형태로 전기모터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을 내 뿜어 환경조형물의 전설로 불린다.

여기에서 기계나 금속작품은 쟝 팅겔리의 것으로 화려하고 컬러풀한 원색적인 문양의 색감과 분수는 니키드 생 팔의 작품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이 분수는 많은 파리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낸 것인데 현대음악연구소(IRCAM) 작곡가와 지휘자였던 피에르 불즈가 <분수>라는 주제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제안했고, 설치할 조각가로는 움직이는 미술이란 키네틱 아트의 현대적 선구자였던 팅겔리와 생 팔을 선정하여 1981년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쟈크 시라크가 의해 이곳에 설치 조성 된 것이다.

쟝 팅겔리는 전기로 동력을 이용하여 조각들이 움직이도록 고안 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전력을 낮추는 기술을 적용하였다.

입에서 물을 내뿜는 빨간 입술과 또아리를 튼 뱀, 화려한 빨간색,녹색,파랑색의 동물들은 물론 코로 쉬지 않고 물을 내뿜는 앙증맞은 코끼리도 있다.

이 작품들이 공개되자  ‘움직이는 분수 조각’은 분수와 일반 조각에 대한 개념을 뒤엎은 매우 진취적인 방식으로 화제와 주목을 받았고, 파리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입체적으로 하였고, 친근감을 더하도록 낮은 눈높이의 분수로 설치했다. 이 부부의 놀라운 상상력과 과감한 시도로 만든 이 분수 조각은 현재까지 공공장소에 환경 조각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 것으로 세계적인 명소로 극찬을 받고 있다.

이러한 미술작품을 보통 미술사에선 키네틱 아트(kinetic art)로 불린다. 즉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는 예술로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미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 되었다는 뜻이다.

이후 니키 드 생팔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생명력 넘치는 여성의 원형인 ‘나나(Nana)’의 모습도 여기에 녹아 있다. 그녀의 작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와 팔뚝, 경쾌하고 아름다운 볼륨의 영원한 여성상 ‘나나’로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외에 니키 드 생 팔의  주목 할만 역사적인 작품은 이탈리아의 카파비오라는 작은 도시에 세워진 <타로 공원>이다. 1998년 개관, 공사기간이 무려 20년에 달하는 명소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모자이크 조각상으로 바로셀로나의 안토니오 가우디의 귀엘 공원에서 영감을 얻은 구성으로, 타로카드에 등장하는 메이저카드의 22개 캐릭터를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해 제작한 공공조각이 만들어졌다.

그녀가 가진 환상세계를 풀어낸 펼친 타로공원은 1978년도 시작 2002년에 끝났다. 꿈의 공간인 동시에 평범한 여성으로서 살기 힘들었던 그녀의 상처와 영혼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이 조각은 길이만 무려 25미터에 달하며 여성의 자궁속으로 직접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형태로  돼 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이 조각은 길이만 무려 25미터에 달하며 여성의 자궁속으로 직접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형태로 돼 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쿠르베 이후 인간의 탄생에 관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휴식을 할수 있는 공간 ,영화를 볼 수도 있는 공간도 준비되어 있다.

이 작품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성 속에 내재된 힘을 모성이라는 형태로 보여주면서, 타인과 타인으로 만난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는 장으로 이끌어낸‘혼’은 질구를 통과하는 통과의례적 행위 속에 자궁회귀에 대한 욕구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니키드 생팔이 이룩한 상처받은 예술과 영혼의 위대함에 모든 결과물이다.

▲1970년대 남성성을 지닌 목표물을 저격하는 권총 발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절규했다.

1970년대 남성성을 지닌 목표물을 저격하는 권총 발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절규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1970년대 남성성을 지닌 목표물을 저격하는 권총 발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절규했다.(자료사진=김종근 교수)

"나는 회화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에 매료되었기에 쏘았다. 빨강, 노랑, 파랑 회화가 울고 있다. 회화가 죽었다. 내가 회화를 죽였다. 그것이 다시 살아난다. 희생자 없는 전쟁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종근 교수, 미술평론가
김종근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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