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소설가/ 충남문학관장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 교수

[중앙뉴스=이재인] 나에게 아홉 살 때 한문을 가르친 선생이 계셨다.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손(孫)이다. 음성이 둔탁하고 키가 늘씬한 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이 왜가리였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의 개성과 육덕을 잘 표현한 별명이었다. 쉬는 시간, 선생님은 나와 친구들에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너희들은 저 헛간에 있는 지게가 뭐 같으냐?”
“글쎄요……?”
동학 다섯 명 중에 한 학동이 대답했다.
“웬수입니다……”
한 학동이 대번에 소리쳤다. 모두가 소리내어 웃었다.
“또? 누가 대답해 봐, 대답을 잘하는 녀석에게는 이 책력을 한 권 선물로 준다……”

그제야 학동들은 중구난방으로 불쑥불쑥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눈을 끔벅이던 한 학생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한 학동의 대답이 엉뚱했다.

“예, 지게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구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이 지게의 원리가 탱크이고, 또한 코끼리차이며 앞으로 이 지게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운반 기구의 할배가 될 것 같은디유.”

“그래 맞다! 네게 이 책력을 선사한다……”

학동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우리들의 표정은 지게가 운반기구의 할배가 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청년 시절 베트남 정글 속에서 새삼 우리나라의 지게에 대한 탁월성을 실감했다.

베트콩 대부분이 물건을 나르는 도구가 바구니 비슷한 것에 노끈을 매달아 어깨에 메고 짐을 운반했다. 가시나무가 제멋대로 자란 산 속에서 이 어깨에 걸머진 도구는 쫓기는 군병에게는 성가실 수밖에 없었다.

퇴각하는 패잔병에게 그것은 포로 되기에 알맞은 도구였다. 동남아 국가 거의 모두가 이런 모양으로 짐을 날랐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게는 정말 다용도 운반 기구였다.

6.25 한국전쟁 당시 골짜기나 고지에 무기를 옮길 때 지게만한 게 없었다. 대공포를 헬리콥터로 나른다면 적에게 금시 노출된다. 

전장에서 노출은 바로 죽음이다. 은밀하게 짐을 운반하는 한국의 지게는 정말로 지혜의 산물이었다. 이것이 선교사들에게 전파되어 유럽이나 미국에 수출되어 사용되던 기록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지게는 밥도, 국도, 제물도, 대포와 소총 탄알까지 모두를 담는다. 지게는 그래서 만능도구이다. 이 지게는 구한말 보부상이나 소금장수, 박물 장수만이 걸머졌던 유산이 아니다. 어린 시절, 선생의 질문에 우문현답을 내놓은 그 학동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친구의 말을 곱씹어보며, 지게는 만인의 짐을 나르는 기구였고 국가와 민족의 영원한 반려자로 다시 한 번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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