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 ‘중동현대미술전’

서울시립미술관이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로 중동지역의 현대미술전 '고향'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서울시립미술관이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로 중동지역의 현대미술전 '고향'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온 사회가 어수선하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을 마주한 서울 시립미술관도 열감지기가 먼저 관람객을 맞아 바이러스의 횡포를 새삼 실감케 한다. 열감지기를 통과하는 관람객들 표정 역시도 평소와 다르게 경직되어 사뭇 조심스럽기조차 하다. 여기에 서울시립미술관은 분쟁과 갈등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중동 아랍인들의 현대미술전을 마련해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19년 11월 27일부터 지역미술의 정체성을 다루는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인 ‘고향’ 전을 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2년마다 열고 있는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하나인 이번 ‘고향’전은 자신의 고향을 잃고, 고향을 빼앗기고, 고향이 없거나 고향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이 중첩되고 지속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민족’ 이라는 관념적 존재란 무엇인가를  시각 이미지의 표현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중동지역의 현대미술전 '기억의 구조' (사진=신현지 기자)
 '기억의 구조' 에서는 상실, 폭력, 충돌, 억압들을 기억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의 예술적 시도들을 만난다 (사진=신현지 기자)

또한 중동 혹은 아랍이라는 지역 미술의 정체성을 환기하는 ‘공통의 상상력’은 어떻게 정의 될 수 있는가를  ‘민족’이라는 유대감에 대입하여 주목하게 한다. 여기에참여 작가들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집트·레바논·요르단 등에서 활동하거나 이들 나라 출신 작가들로 하딤 알리, 하젬 하브, 조지 M. 알 아마 컬렉션, 할리드 쇼만 컬렉션(다랏 알 푸눈), ACC 필름앤비디오 아카이브 컬렉션과  한국 작가 박민한·김진주·최원준 등 모두 20여명(팀)이다.

먼저 전시장을 둘러보면 ‘고향’은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팔레스타인의 전통문화, 이슬람 종교적 문제, 서구 중심의 역사와 문화 왜곡에 대한 비판, 자유에의 갈망 등을 담아 잃어버린 고향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사진=신현지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열감지기와 손 세정제로 관람객을 검사하는 서울시립미술관 ( 사진=신현지 기자)

‘기억의 구조’에서는 저마다 훼손된 고향의 그리움을 내포하며 폭력을 가한 비인간성에 준엄한 성찰을 요구한다. 또한 억압, 상실, 상처 등을 내보이며 이 기억들을 기억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를 세우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들을 경험하게 한다.

이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으로 태어난 작가가 속해있는 사회 구조에 관한 ‘긴밀한 배신과 폭로’가 작가 아델 아비딘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인생이 짧으니, 일이나 치자'는 주제로 작가와 자신의 아내를 간통죄로 거짓 고소해 벌어진 재판 관련 법정에서의 대화와 문서 등을 통해 보여준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고향을 빼앗기고 빼앗는 영토 분쟁을 둘러싼 사진 기록, 이러한 충돌, 폭력, 상실, 억압의 사건 주변으로 발생하는 개인적 경험과 사적 기억을 기록하는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작업 등이 기억의 구조에서 만나게 된다.

다음은 '감각으로서의 우리'다. 이 장에서는 단순한 교환 행위의 범위를 넘어서 상호성을 통해 구성되는 ‘우리’라는 ‘유대감’ 혹은 의식적 감각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를 묻는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각이면서도 평범한 욕망이기도 한 유대감은 ‘우리’의 시작이며, 이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어떻게 중동,아랍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엮어서 생각해볼 수 있을지 질문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여기에 아메르 쇼말리, ‘깨진 결혼식’은 전통적인 팔레스타인 결혼예식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정성 어린 손바느질과 자수로 완성되는 전통 결혼 예복에 사용하는 색의 실타래를 나열하여 이와 얽힌 여러 사연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에게 각각의 색실은 1948년 팔레스타인이 겪은 비극에 대한 비석과도 같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고향' (사진=신현지 기자)
중동작가들이 표현한 '고향' (사진=신현지 기자)

'침묵의 서사'섹션에서는 숱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탈락하거나 망각한 시간을 기입하여 새로운 기원을 부여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은 지워지고, 감추어지고, 왜곡된 역사를 새롭게 쓰는 기술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델 아비딘, 와엘 샤키, 주마나 에밀 아부드의 작품들은 우리가 안다고 착각했던 아랍, 중동 역사에서 탈락하거나 잊혀진 역사를 새롭게 기입하고 새로운 기원을 부여한다. 우리는 실재와 허구,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품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두터운 의미적 층위 사이로 알게 되는 새로운 역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지막 '고향 Home'은 비디오 작품들을 통해 고향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낯선가 하면 오히려 친숙한 데자뷔나 친숙했던 것에서 오는 불안한 감정의 환상처럼 ‘고향’은 실질적인 영토에 얽힌 기억이나 축적된 문화적 감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실된 어떤 것을 되찾기 위한 소망 자체이기도 하다.

모나 하툼, 아흘람 시블리, 김진주에 이어 프로젝트 룸의 일련의 비디오 작품들은 자신의 고향을 잃고 고향을 빼앗기고 고향이 없거나 고향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이 중첩되고 지속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민족’이라는 환영적이고 관념적 존재는 무엇인가을 시각 이미지의 표현을 통해 묻는다.

한국의 작가 김진주는 비디오 에세이와 동반된 여러 설치물을 통해 타지에서 찾은 새로운 고향에서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충돌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폭력과 저항의 점철된 중동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상상 가능한  공감과 교감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마련된 이번 ‘고향’ 전은 오는 2020년 3월 8일까지 진행된다.

한편 이번 전시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Khalid Shoman Collection)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테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된다. 전시연계 작가와의 대화는 ‘땅과 기억’, ‘구조를 넘어’라는 주제로 참여 작가 아흘람 시블리, 하젬 하브, 라이드 이브라힘, 아델 아비딘, 하딤 알리의 작품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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