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위원장의 현실론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마음은 이해하지만
선거용 급조 정당에 비판적
민주당이 비례대표 안 내는 결단
미래한국당 사태 이후의 시나리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밖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가장 앞장 서왔던 정치개혁공동행동(공동행동)의 고심이 깊어졌다. 하승수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선거연합정당(연합정당)’을 공론화시켰기 때문이다. 공동행동은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진보적 시민사회 여러 단위들이 합심해 결성됐는데 하 전 위원장도 공동대표를 맡은 바 있다.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왔던 하승수 위원장이 연합정당론을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와 만나 연합정당 논의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결단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창당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이날 박 처장은 공동행동 차원의 ‘위장정당 해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했고 국회 청원 10만명 서명운동(미래한국당 해산/국고보조금 반납/위장정당 방지 제도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박 처장이 말하는 민주당의 결단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다. 하 전 위원장의 문제의식은 미래통합당(통합당)이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한국당)을 출범시킨 마당에 유권자의 정당 투표가 분산되면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를 통합당이 어부지리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이고 박 처장은 그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공동행동 차원에서 연합정당에 대해) 토론 중이다. 아직 입장이 안 나왔다”며 “이게 위성정당이 아닌 것은 맞는데 (민주당의) 위성정당화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목소리가 충분히 있다. 미래한국당이라고 하는 괴물정당, 기생정당, 위헌정당이 있어서 이걸 저지해야 한다는 취지를 일부 인정하는 것도 있다”고 밝혔다.

즉 연합정당은 별도의 정당을 창당한 뒤 민주당과 정의당부터 원내외 소수 진보정당들(민중당·녹색당·미래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전부 연합정당에 모으는 것이다. 기존에 지역구 후보들만이 단일화를 하는 게 아니라 정당 투표에서의 비례대표 후보들도 일종의 정당 단일화를 하는 셈이다. 정당 투표에서 한국당과 1대 1 구도를 만들어서 맞서지 않으면 그쪽이 의석을 다 가져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마냥 비현실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은 사무처장은 연합정당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이고 대신 민주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정은 사무처장은 연합정당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이고 대신 민주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특히 연합정당론은 진보 정당 벨트가 최대치의 의석 확보를 성취한 뒤 비례대표 의원들을 원래 소속 정당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모델로 하고 있다. 과거 대통령 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인물 단일화는 결국 선거 끝나고 큰 정당 후보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에 불과했다. 정책 협상은 없었다. 오직 더 나쁜 상대 정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는 것만이 목적이었고 그게 기존의 단일화 관행이었다. 그러나 연합정당론은 당선자들을 원래 정당에 돌려줄 수 있어서 큰 정당 독식 현상을 제어할 수 있다. 

하 전 위원장은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거대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를 심화시킨다고 보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런 하 전 위원장이 현실론을 채택했고 미래당과 녹색당은 위장정당 사태에 맞서기 위해 연합정당에 동참할지 여부를 숙고하고 있다. 공동행동도 마찬가지다. 물론 녹색당도 그렇고 미래당도 그렇고 당원 여론은 전반적으로 원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만큼 민주당 위주의 연합정당에 동참하지 말고 독자 출마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미래당은 전당원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곧 공식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 임시정당을 주장했던 정치인들의 기사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아 연합정당론에 힘을 싣고 있는 모양새다.   

박 처장은 “선거연합이라는 것이 정책과 함께 충분히 연대하고 논의되고 그럴 시간이 있을텐데 급조한 선거용 정당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고 환기했고 “정책 연대나 선거 연대는 야당 간에 그런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해외 사례만 봐도 그렇다. 적녹 동맹이라는 게 왜 있는가. 녹색과 노동이 결합하는 선거 연대는 늘 얘기해왔던 것이다. 그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지금처럼 선거용 정당을 만드는 과정, 정책 연대의 가치와 정책에 대한 충분한 토론없는 그 과정을 밟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박 처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민주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안 내고 다른 진보 소수정당에 대한 지지 의견을 내면 되지 않는가. 굳이 그걸 어렵게 (별도의 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할 필요가 있을까. 민주당이 결단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거듭해서 박 처장은 “집권 여당에서 그걸 충분히 감안해서 판단한다면 굳이 창당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본다”면서도 “특정 정당으로 세를 결집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걸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래한국당 사태 이후의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이 5가지가 있다.

Ⓐ미래한국당 해산 관철 
Ⓑ민주당이 스스로 비례대표 후보를 한 명도 내지 않고 진보정당들에 양보 의사 천명 
Ⓒ연합정당에 민주당부터 최대한 많은 진보정당들 참여 
Ⓓ민주당의 단독 위성정당 창당  
Ⓔ미래한국당만 존재한 상태에서 이대로 각개약진

Ⓐ는 모든 주체들의 공통 목표이고 이미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여러 수단들이 총동원됐다. 하지만 총선 전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효력정지나 헌법소원상 해산 취지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선관위가 승인해준 이상 한국당을 실력으로 없애버리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 처장은 “미래한국당과 같은 정당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 최소한 정당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에서 옳지 않다”며 “저희는 선관위가 큰 문제라고 본다. 비례 후보에 대한 민주적 절차(개정된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비례대표 후보 선출 절차)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선관위에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어쨌든 민주당은 내부에서 Ⓓ를 진지하게 논의했고 언론에 알려져 십자포화를 맞자 Ⓒ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하 전 위원장이 Ⓔ로 인한 통합당의 어부지리를 막기 위해 Ⓒ를 공론화시켰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각각의 자발적 위성정당들인 △열린민주당(정봉주 전 의원) △깨어있는시민연대당(강성 친문그룹) △미래민주당(천세경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시민을위하여(우희종 서울대 교수와 최배근 건국대 교수) 등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정의당은 ⒸⒹ에 대해 명확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2일 논평을 내고 “어떻게든 미래통합당의 의석 확보를 막아보자는 그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비례용 임시가설정당을 세우자는 제안은 대 미래통합당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대국민 명분은 없다는 것이 정의당의 확고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합정당) 제안에 동참한 시민사회단체와 원로 분들은 정치개혁과 준연동형비례제 도입을 위해 함께 힘 써오신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계획이 제안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비례용 하청정당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불비하다는 이유로 연동형비례제라는 제도 자체를 훼손할 수는 없다. 연합정당이라는 미명 하의 실체는 비례 가설정당이고 비례 임시정당이고 선거가 끝나면 해산할 정당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정당에서 오래 활동해왔던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도 3일 페이스북을 통해 “본래 민주대연합론의 구심력은 민주당계 정당이 야당이고 승자독식 선거제의 규정력이 클 때 발휘되는 것”이라며 “민주당계 정당이 여당이 되고 모처럼 승자독식 선거제가 크게 이완된 데다 촛불 항쟁까지 거친 뒤에 다시 또 민주대연합을 해야 한단다. 이쯤 되면 이건 그냥 86세대 대졸자 지식인들의 지병이다. 이 병을 대대손손 이어가려는 의지. 이번에도 이에 다시 휘둘리면 이제 한국에 진보정당 운동은 없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정의당은 ‘개방형 경선제’를 통해 일반 국민에게 비례대표 순번 결정의 권한을 일부 열었고 이런 제도 아래 비례대표 출마자가 37명이나 나왔다. 이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데 상위 순번을 쟁취한 후보들이 연합정당으로 이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원내 1석을 보유한 민중당도 비슷한 취지로 ‘민중공천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 순번을 정할텐데 마찬가지로 부담스럽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해산해야 한다며 국회 청원 10만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해산해야 한다며 국회 청원 10만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러나 하 전 위원장과 주권자전국회의가 Ⓒ를 위해 결성한 ‘정치개혁연합’은 정의당의 참여없이 Ⓒ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의당과 민중당 등을 최대한 설득해보겠다는 방침이다.

박 처장이 피력한 Ⓑ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상호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장이 선임됐고 이미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후보들이 꽤 되기 때문이다. 

박 처장은 “(Ⓑ를 하기엔 민주당의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큰데) 본인들의 자업자득이 아닌가”라며 “선거법을 이렇게 만든 민주당인데 캡을 왜 씌웠는가”라고 꼬집었다.

현재 하 전 위원장은 진보 성향 시민들과 일부 녹색당 당원들로부터 연일 SNS상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에 대한 결심을 굳혔고 긴급 언론 기고문을 올리는 등 자신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하 전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연합정당은 진보적 소수정당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미래한국당이 도둑질하는 비례대표 의석 10석 정도를 가져와서 진보적 소수정당에게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진보적 소수정당의 파이를 줄이는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소수 진보정당들이 어떻게든 원내로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론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하 전 위원장의 친동생인 하승우 전 녹색당 4기 공동정책위원장은 2일 녹색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소수정당이 그런 연합화를 통해 국회에 의석을 가지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 정치인이 당의 통제를 받을까?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이, 자신이 움직이면 국고보조금도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이, 형식적으로는 복귀한 정당과의 연계성이 없는 국회의원이 당의 통제를 받을까?”라며 “한국처럼 정치가 인물화된 곳에서 그 국회의원은 아마도 정당을 좌지우지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셀프 제명하고 다른 당으로 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기존의 진보정당 운동을 봐도 그런 사례들이 보인다. 그 과정을 되밟아야 할까? 그런 정당이 정치인을 발굴하고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방식이야말로 내부 구조가 취약한 정당의 구조를 뒤흔들고 인물 중심 정치의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반대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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