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갤러리 초대석 최한나의 맛있는 시 (232) ]손아귀, 소나기... 성향숙
[중앙 갤러리 초대석 최한나의 맛있는 시 (232) ]손아귀, 소나기... 성향숙
  • 최봄샘 기자
  • 승인 2020.03.10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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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펴낸 성향숙 시인
사진 제공 / 성향숙 시인
사진 제공 / 성향숙 시인

 

손아귀, 소나기

성향숙

 

 

갑자기 굵은 비 쏟아진다

저건 몰려다니는 구름이 손아귀를 움켜쥔 주먹, 주먹을 일제히 들어 올리는 행위다

주먹과 함께 흘러나오는 왁자지껄한 함성

 

그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진다면?

 

주먹질은 금방 끝이 난다

 

이런, 게릴라성 손아귀라니

이렇게 쉽게 흩어지는 주먹이라니

긴 막대를 든 한 떼의 검은 주먹들이 달려오자

뿔뿔이 골목으로 흩어지는 손아귀

한 번의 천둥으로 놀라 흩어지는 주먹들

 

너무도 허약한 구름들

 

저 구름들 무슨 힘으로 하늘 광장에 모이나

무슨 힘으로 손아귀를 움켜쥐나

무슨 힘으로 주먹을 추켜올리나

달아나도 그 자리, 그 발바닥인데

무슨 힘으로 눈물을 모으나

 

어떤 힘의 작용으로

손아귀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나

무슨 힘으로 세상을 하얗게 잠재우나

 

하늘에서 손바닥이 내려온다면?

 

하늘에서 눈빛이 비춰진다면?

 

갑자기

 

- 성향숙 시집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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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화가 파괴되어 버린 요즘이다. 무방비였으나, 그냥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내 삶이 그간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전율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리워지기까지 하다니, 밋밋했던 그런 나날들이... ) 자칫 ‘불안’이라는 바이러스가 파고드는 심상에 시 한 편이 이토록 심리적 방역을 해 줄 수도 있음을 느낀다.

코로나19바이러스의 주먹질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비상시국이다. 어쩌면 혼미할 정도로 난타당하는 중이다. 고통 중에 있는 환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이렇게나마 적어본다. 화자가 그려낸 공감각적인 손아귀와 소나기의 이미지가 쿵쿵 가슴을 때리는 것은 요즘 내가, 그 손아귀의 따귀 맛을 제대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어디 포악스런 폭우뿐이랴. 후련하고 화끈하게 쏟아져 내려 불순한 것들을 청소해버리는 그런 장대비도 있다는 것!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소낙비, 아니 천둥 같은 군중의 힘, ‘불끈 쥐는 힘‘을 목전에서 경험하기도 했던 국민이다. 흰 새털구름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우레 같은 그런 존재임을 우리는 안다.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평온했던 일상을 기필코 조속히 쟁취할 것이다. 이 바이러스의 亂을 잠재워버릴 소나기도 바로 우리의 손아귀에 달려있는 것이라며, 시인의 책무 중 위로의 책무에 충실한 이 시 한 편에 기쁘게 박수를 보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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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 시인 /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8년 《시와반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 『엄마, 엄마들』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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