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연동 파생금융상품
2008년 서브프라임으로 저환율 
은행들은 배째라 분위기
금감원만으로는 안 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밀어붙였던 키코(KIKO) 피해 기업에 대한 배상 절차가 난국을 맞았다. 은행들은 피해 소멸시효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근거로 금감원의 조정안을 보이콧하고 있다. 

금융 고객에게 맘대로 팔아치우다가 원금 손실이 나면 내빼는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윤 원장이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도 뼈아픈 비판이 불가피하다.

 2018년 4월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키코 사기사건' 검찰 재고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키코(Knock-In Knock-Out)는 환율 변동에 연계된 파생금융상품이다. 미리 약정한 환율 범위 안에 있으면 정해진 환율로 외화를 팔아서 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범위만 벗어나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내 중소기업들이 은행들의 키코 상품을 많이 샀다가 낭패를 봤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8년 내내 대기업 수출 증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의 필요성을 피력했었다. 미국 달러값이 비싸고 원화가 싸야 한국 대기업의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이 터지고 주택담보대출을 못 갚는 미국인들이 속출하자 미국 당국은 구제 금융책을 썼다. 시장에 달러가 왕창 풀렸고 당연히 달러값은 떨어진다. 그 당시 원달러 환율은 900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극단적인 저환율 상태가 되자 중소기업들이 투자한 키코 상품은 모조리 낙아웃됐다. 말 그대로 무효가 됐다. 

이러한 키코 사태는 작년 내내 금융사들의 신뢰를 추락시켰던 ‘DLF 사태’, ‘라임 사태’와 맥을 같이 하는 특성이 있다. 매출 증대에 혈안이 된 금융사들이 위험한 금융상품을 불완전하게 팔아놓고 피해가 발생하자 나몰라라 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9월26일 키코에 대해 불공정 계약이 아니고 피해 기업들의 과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피해 기업들은 포기하지 않고 금감원의 문을 두드렸고 금감원은 1년에 걸쳐 재조사를 했다. 작년 6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본격적으로 배상안을 짜고 있을 때 DLF와 라임이 터졌고 그렇게 밀리고 밀리다가 12월이 되어서야 배상안 권고가 내려졌다. 

2018년 5월 취임한 윤 원장은 금융 피해 보상에 사활을 걸고 키코 배상을 추진했고 결론적으로 키코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했다. 분조위는 6개 은행(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이 손해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 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이다. 배상 대상 기업은 4곳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배째라’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소멸시효 10년도 지났고 대법원 판결문도 쥐고 있다. 3월 초까지의 상황을 보면 우리은행을 뺀 나머지 5개 은행은 대놓고 거부하거나 지급 시한을 늘려달라는 등 전부 배상 못 하겠다는 분위기다. 우리은행도 DLF와 라임에 이어 고객 비밀번호 조작까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좌초 위기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분조위의 권고안은 강제 사항이 아니고 불이행시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다. 윤 원장의 스타일만 구겨지게 될 판이다. 

사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했던 김종창·권혁세·최수현·진웅섭 전 금감원장이 윤 원장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지경까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때 대응하지 못 했던 타이밍 문제가 크다. 

분조위 결정까지 받아낸 피해 기업 4곳도 전혀 배상을 못 받을 위기에 처한 만큼 나머지 140여개 기업들에 대한 배상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이 갑자기 착해져서 배상할 가능성은 제로다.

최근 통과된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인해 금융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강화될 전망이지만 이미 발생한 키코 사태 피해자들은 국회 특별법 이외에는 배상을 받을 길이 요원해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