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폐쇄 무색...노인들 빵과 우유 받으려 긴줄

23일 코로나19확산에 출입을 금한 탑골공원 주위로 노인들이 빵과 우유를 받기 위해 긴줄을 서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23일 코로나19확산에 출입을 금한 탑골공원 주위로 노인들이 주먹밥을 받기 위해 긴줄을 서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노인복지센터 등이 한 달 넘게 문을 닫으면서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이 소외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인 지난 22일, 서울 중심의 한 아파트의 놀이터 벤치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곳 아파트의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K노인(82세). 코로나로 아파트 경로당이 문을 닫으면서 집안에 갇혀 지낸지 약 40여일째.

주말이면 나가던 교회까지도 문을 닫아 노인의 유일한 벗이 되어주는 건 TV. 그것도 며느리 눈치 보여 가능하면 거실에 나오지 않고 노인은 자신의 방에 놓은 배불뚝이 구형 TV로 무료함을 달랜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하지만 TV를 통해 듣고 보는 세상 소식은  온통 코로나, 종일 코로나 소식밖에 들려오지 않으니 답답함과 우울함은 더하다. 전화로 지인들의 안부를 묻는 것도 한 두 번이라 이제는 코로나 공포보다 더한 소외감에 오늘은 기어이 방 밖을 나오게 됐단다.

그렇지만 방밖을 나와도 혼자이긴 마찬가지. 혹여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세라 어린이 놀이터마저 휑하게 비어  K노인은 뒤숭숭한 시절에 저절로 깊은 숨이 터진다고.

23일 본지는 종로3가에 위치한 탑골공원을 취재에 나섰다. 우한에서 발발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달 20일 공원을 폐쇄한 정부의 조치에 탑골공원 노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아마도 휑한 거리에 노인들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종로를 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우려였다. 종로 3가 역사를 나오자마자 매캐한 담배냄새와 함께 보이는 건 삼삼오오 짝을 지은 노인들 모습이었다. 특히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즐비한 보따리 노인상인들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노인들 모습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굳이 다른 모습을 찾는다면 노인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점이었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회복지원각에서 250개 분량의 빵과 우유를 노인들에게 선착순 제공하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무리를 지어 몰려있는 노인들 너머로 길거리 상인들이 펼쳐놓은 물건들은 대부분 중고물품, 그 가운데 서너 명의 노인이 바닥에 죽 펼쳐놓은 옷가지들 중에 낡은 바지를 나눠 쥐고 서로 사겠다고 실랑이하는 모습이었다.

바지 가격은 3천원, 그 옆에는 굽이 다 닳은 운동화를 들고 망설이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역시 가격은 5천원. 노인이 망설이자 “이곳에 나오기 쉽지 않은 유명메이커 물건이다”며 “들고 가면 횡재하는 것이”라고 바람을 넣는 노인축도 있었다. 

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어디서 버린 물건 죄다 주워와 파는 것이라 사지 말라”라고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곳을 지나 일명 '락희거리' 즉 '송해길'로 접어드니 평소와 달리 조금은 노인의 모습이 줄었다는 느낌이었다. 그 옆 탑골공원은 아예 노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과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썰렁했다.

하지만 공원주위로는 아니었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많은 노인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었다. 시각은 오전 11시 40분. 사회복지원각에서 무료로 빵과 우유를 지급하고 있었고 250개 분량의 간식주머니는 금세 바닥이 나는 모습이었다. 선착순이라 발이 빨라야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코로나19확산으로 지난달 20일부터 폐쇄조치를 내린 탑골공원 (사진=신현지 기자)
코로나19확산으로 지난달 20일부터 폐쇄조치를 내린 탑골공원 (사진=신현지 기자)

빵을 받지 못한 노인들은 황급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노인들에게 무료로 빵과 우유를 지급한 사회복지원각의 사무국장은 “코로나 19확산에 지난달 23일부터 점심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3월 15일부터 250명의 노인들께 빵과 우유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다시피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좋은 일 하겠다고 점심을 제공해 코로나에 전염이라도 된다면 사회에 더 큰 누가 될 것이라 점심제공을 중단하게 됐다. 언제쯤 점심을 제공하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다 2주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추후를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원각을 나와 낙원상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종로구 방역단 직원들이 나와 노인들이 둘러선 곳곳을 소독하는 모습이 보였고  또 한 단체에서는 노인들에게 주먹밥을 제공하는 모습도 보였다.

길게 줄을 선 노인들 가운데는 여성 노인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매일 아침부터 열리던 장기판이 사라져 보이지 않은 자리에 주먹밥을 받아 든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는 모습이었다.

노인들의 점심을 제공하던 사회복지원각이 코로나 전염성 우려에 식사대신 빵과 우유를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노인들의 점심을 제공하던 사회복지원각이 코로나 전염성 우려에 식사대신 빵과 우유를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이날 주먹밥 대신에 햇빛 잘 드는 길바닥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한 노인은 “매일 아침 경기도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나온다.”며“ 코로나가 위험하니 다들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갇힌 실내가 위험한 것이지 이렇게 툭 터진 야외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 우리도 그 정도는 안다.

그리고 노인들 집에 있으면 답답증 나서 오히려 더 병이 난다. 한 이틀 집에 있으니 죽은 사람 취급하고 병에 걸리는 것보다 더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다시 나오게 되었다.

우리끼리 이렇게 술이라도 한잔 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사는데, 그 정도는 젊은 사람이 이해를 해달라, 그리고 동사무소에서 마스크를 줘서 잘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마라”면서 손을 내젓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본지로서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탑골공원을 폐쇄한 취지가 무색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한편, 대구 내 요양병원에 5곳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추가로 확인되는 가운데  22일 경북도가 경산지역 요양병원에 대해 전격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 결과 모두 음성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도는 지난 22일부터 경산지역 요양병원 10곳 2529명(환자 1523, 종사자 1006명)에 대한 긴급 표본조사와 전수조사를 동시에 시작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23일 브리핑에서 "경산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나와서 우선 경산지역부터 급히 표본조사를 했는데 다행히 모두 음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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