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공개된 조주빈
과거의 디지털 성착취가 N번방으로
운영자와 이용자 전부 엄벌 및 신상공개
정치권 반응
입법 보완
법사위에서 있었던 일
문재인 대통령도 메시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소라넷, 몰카와 불법 촬영물,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에 이어 텔레그램 N번방까지 디지털 성착취의 고리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N번방 주범 ‘박사방’ 조주빈씨가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됐다. 코로나19와 총선 이슈로 정신없는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작년 2월 디씨인사이드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N번방 사건이 처음 알려졌다. 아직 검거되지 못 한 ‘갓갓’이라는 자가 텔레그램 1번방부터 8번방까지 만들어 성착취 영상을 유통시켰고 그래서 N번방이다. 그 방으로 입장을 유도하기 위한 링크가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갓갓과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넘겨받은 ‘와치맨’(검거) 그리고 조씨까지 이들을 위시한 범죄집단의 수법은 악랄함 그 자체였다. 

여성 청소년들의 SNS 계정에 접근해 경찰로 위장해서 꾀어내고 노출 사진과 강제 성관계 영상을 찍게 만들고 그걸로 다시 협박해서 끝없이 성노예로 잡아뒀다. 그런 불법 촬영물을 돈을 받고 팔아 넘겼다. 가상화폐가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렇게 웹상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SBS <8시 뉴스>에서 공개된 조주빈의 신상. (캡처사진=SBS)

작년 11월27일 한겨레가 N번방 최초 보도를 한 뒤 최근에는 3월9일 국민일보가 N번방 추적기 시리즈 보도를 내놨다. 23일 SBS는 <8시 뉴스>를 통해 조씨의 신상을 공개했고 경찰이 N번방에 입장한 이용자 명단을 확보하고 추적 중이라는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여성단체들의 연대체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수십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50여개의 N번방에 들어온 이용자만 중복 포함 26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박사방에 들어온 유료 회원만 1만여명이다.

조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끼 링크를 올려놓고 텔레그램 ‘맛보기방’으로 입장하게 한 뒤 더 자극적인 영상을 보려면 큰 돈을 가상화폐로 내라고 요구했다. 아직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N번방 불법 촬영물을 재판매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조씨는 미성년자 16명을 비롯 총 74명의 여성들을 협박해서 불법 영상을 촬영하도록 강요했다. 

조씨가 검거된 뒤 전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24일 자정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6개 게시물(N번방 가해자 처벌 및 신상공개 등)이 받은 합계 동의 추천수만 573만6164개에 이른다. 

이밖에도 △여성계를 중심으로 각종 집회시위 기획 △SNS ‘해시태그 릴레이’(N번방 가입자 전원 처벌+주범 포토라인 공개소환) △성지수 녹색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의 ‘분노의 담벼락 박제 캠페인’(3월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회의에서 관련 법안에 대해 상식 이하의 발언) 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스트와 여성학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하는 남성중심적 한국사회의 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반 남성들이 “모든 남성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지 말고 성찰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검경과 사법부의 엄정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26만명 아닌데? 모든 남자 아닌데? 나는 아닌데? 어떤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예를 들면 N번방 사건 같은 문제. 이런 심각하고 악랄한 범죄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라며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잊어버리고 오직 나만이 남은 사람.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자기 자신만이 있는 사람. 그걸 우린 소시오패스라고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러 저서를 집필한 박신영 작가는 “버닝썬, N번방 모두 근본 문제는 일그러진 성문화나 철없던 한 때의 일탈이 아니다. 여자 장사로 돈 버는 산업 구조 자체다. 수요는 많으니 폭력과 협박으로 여성을 공급하는 시스템 자체”라고 역설했다. 

조씨는 19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은 박사방 회원들을 단순 방관자가 아닌 집단 성범죄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은 총 124명을 검거했고 조씨를 포함 박사방에서 활동한 운영자 그룹 18명을 구속시켰다. 

서울청 신상정보심의위원회는 24일 조씨가 포토라인에서 얼굴을 공개하도록 하는 신상 공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미 공개된 만큼 무난히 공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23일 하루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먼저 민중당 여성 후보들(손솔·최서현·김도현·이소영)은 오전 10시반 국회 의원회관에 항의 방문을 갔다. 명분은 국회 청원 10만명 동의로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을 의무적으로 논의했지만 졸속 처리한 의원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후보들은 여상규 법사위원장을 비롯 법사위 속기록에 근거해 정점식·송기헌·깁도읍 의원 등을 면담하기 위해 의원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 했다. 후보들은 의원회관 정문 출입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성착취물 소지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촉구하며 “국회도 공범”이라고 소리쳤다.

민중당 여성 정치인들은 사후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는 청원에 대한 충분한 논의없이 졸속으로 처리했다. 법안화 과정에서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다른 법률안과 통합 조정된 것”이라며 “포르노 영상에 여성 지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물을 처벌하는 내용의 조항이 신설되었으나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설치, 2차 가해 방지, 양형기준 강화 등 청원의 주요 내용은 담기지 못 했다”고 규탄했다.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냐.”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
 
“법정형 가중처벌은 양형은 법원에서 알아서 해도 되는데 굳이 이런 구성요건이 필요하나?”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드냐?”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

“N번방 사건이라는 것은 저도 잘은 모른다.”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 

민중당 여성 정치인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4명(김기홍·김혜미·성지수·고은영)도 1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당사에서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광범위한 성착취, 국회에서 끝장내자!>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녹색당은 논평을 내고 “지금부터다. 이런 영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자들. 이들을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검거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겁박하고 촬영하고 유포한 자. 보고 즐기고 공유한 자. 26만 명에 이르는 이들 모두를 마지막 한 명까지 다 잡아내야 한다”며 “한 명 한 명의 신상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 어디에 사는 누구이고 얼굴과 이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누구도 예외없이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유튜브 라이브 기자회견의 모습. (캡처사진=녹색당 페이스북 페이지)

기본소득당 지역구 여성 후보들(신민주·신지혜)도 11시반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 제정을 촉구했다. 후보들은 ‘N번방 원천봉쇄법’을 제정해야 한다면서 △시청한 사람도, 저장한 사람도, 유포하고 협박한 사람도, 제시의 방식으로 유포한 사람도 모두 처벌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여부를 판사가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사에 반해 타인의 신체를 성적으로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성폭력으로 규정 △대규모 유포 행위에 집단 성폭력 개념 적용 및 가중 처벌 △플랫폼 소유자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윤리 규정 마련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 여성 후보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번방 원천봉쇄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기본소득당)

정의당 성평등선거대책본부(본부)는 14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 성착취를 끝내기 위한 정치적인 싸움을 시작하겠다”며 “텔레그램 N번방 수사과정 등에 대한 1일 브리핑을 매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본부는 △갓갓에 대한 경찰의 강력한 수사 촉구 △문제적 발언을 한 법사위원 사퇴 및 법무부 차관·법원행정처 차장 경질 촉구 △여야에 ‘텔레그램 N번방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을 위한 원포인트 임시국회 소집 제안 등의 메시지를 피력했다. 

본부는 작년 3월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발의한 ‘성폭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기반으로 △성착취물 생산자·유포자·이용자 모두 처벌 △피해자 지원 강화와 디지털성범죄 가해자 수사 및 처벌 실질화 △성적 촬영물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 처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촬영과 유포에 대한 형량 강화 및 실제 처벌 비율 확대 △디지털성범죄 대응을 위한 국가 비전 수립 및 국제 공조 수사 체계 마련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강화 등을 담아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성평등선거대책본부는 1일 브리핑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당정청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권의 움직임도 있었다.

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백혜련·김상희·한정애·남인순·유승희·박경미·정은혜·허윤정·권미혁)은 10시20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번방 재발금지 3법’(성적 촬영물 이용한 협박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불법 촬영물을 휴대용 단말기 또는 컴퓨터에 다운로드받는 행위 자체 처벌/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처벌) 제정을 촉구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N번방 규탄 선언문을 발표하고 재발금지 3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14시에는 진선미 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함께 법무부, 경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여성가족부, 시민단체 프로젝트 리셋, 한겨레·국민일보 기자 등 관계 인사들이 총집합했다. 

이 원내대표는 “외국은 종신형이 가능한 범죄지만 우리 법률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너무 관대하다. 여당 원내대표로서 디지털 범죄에 날개를 달고 악성 포자를 퍼트리는 변종 성범죄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3법에 대해 “총선 후 4월말 5월초에 국회를 다시 소집하는 한이 있어도 임기 내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진 의원은 “범죄 특성을 무시하고 기존의 형법 조항을 적용하다 보니 국민의 법 감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적용된다”며 “성착취 카르텔을 끊는 법은 강력한 처벌로 구매자와 소비자 뿐 아니라 범죄 동조자 모두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윤전 법무부 양성평등담당관은 “N번방 사건 관련해서 특히 경찰이 어렵게 잡은 사람을 엄정하게 대응하도록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시사항을 시달했다.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엄정하게 대응하도록 지시했다. N번방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엄정한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2018년 초 미투운동의 문을 연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은 “제가 두려움에 가득 찰 때 함께 분노한 분들이 큰 힘이 됐다. 일부 피해자와 일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분노해야 바꿀 수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주문했고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은 “다른 SNS 플랫폼에서 유사 범죄가 일어나는지도 확인하고 수사할 계획이다.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검거하고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주당 지도부와 관계 부처 및 시민사회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도 발 빠르게 메시지를 내놨다. 

16시반 즈음 발표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동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며 “정부가 불법 영상물 삭제 뿐 아니라 법률과 의료 상담 등 피해자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였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순식간에 300만명 이상이 서명한 것은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의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나아가 “경찰은 N번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하면 경찰청에 특별조사팀이 강력하게 구축되었으면 한다. (관계 부처에도) 플랫폼을 옮겨가며 악성 진화를 거듭해온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근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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