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파이데이』 펴낸 김사리 시인

사진 제공 / 김사리 시인
사진 제공 / 김사리 시인

 

시그널

김사리

 

바닥을 두드리다 바닥이 된 아버지

망치질할 때마다

밑바닥 가족사가 사차선 도로처럼 펼쳐졌다

길목 고려당 빵집 앞에서 아버지는

앉은뱅이 의자였다

그 의자,

구부러지고 구멍 난 길들을 박음질했다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부표처럼 흔들리던 아버지

정작 세상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은 붙이지 못해

망치에 손가락이 터지기도 했다

평생을 바닥으로 살던 아버지 끝내,

바닥을 차고 오르지 못했다

한동안 아버지에게 박혀 있던 나는

발이 닿지 않는 먼 바다로 떠나왔다

가끔 수전증으로 떨리는 그 바닥이

새털구름처럼 떠돌다 가고

나를 놓쳐버린 숭숭한 구멍으로 파도가 들이치고

못 자국 난 아버지는 점점 지워졌다

태풍이 뒤집히던 날,

나를 받쳐준 바닥을 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가슴에 못 박은 망치였다

가슴에 수장된 슬픔을 향해 돌진하는

저 바닥의 신호,

아버지가 타전되고 있었다

--------------

좋은 詩는 어떤 시이며 어떠한 자세로 음미해야 할까? 비수처럼 찌르고 쪼개고 싸매어주는 잠언 같은 시? 한 장의 참회록 같은 시? 아니, 내 이야기 같은 시다. 오늘은 그런 詩 한 수에 피로가 중첩된 심신을 헹구어 준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한 축이 있다면 세상 모든 가장(아버지)들일 것이다. 아버지에 관한 詩들을 적잖게 접해오지만 늘 서늘하면서도 아린 여운이 남는 것은 내가 아버지의 무릎에서 배운 거라곤 불효 뿐 이라서 인가보다. 여기, 평생을 바닥에 앉아 구두를 수선하던 아버지 한 분의 일생을 그려본다. 화자의 가슴 속에 슬픔과 애틋함과 회한으로 자리했을 아버지의 망치소리가 행간마다 뭉클한 울림을 준다. 아버지라는 바닥, 그 바닥이 타전해오는 가르침! 우리의 핏줄 속에 흐르는 그 힘으로 삶은 살아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일마치고 돌아오는 길, 축 쳐진 내 어깨를 감싸는 것은 아버지의 시그널!

‘우리 딸 잘 살고 있는 거니? 잘 살아내는구나’

나, 어찌 그리도 철없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 아프게 하며 살았던가!

[최한나]

--------------

김사리 시인 /

경남 밀양 출생

2014년 계간 《시와사상》 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 『파이데이』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