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와의 사회적 거리두기

(사진=박정우 @xxjwpx)
(사진=박정우 @xxjwpx)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언론이 만든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 후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 증을 뜻한다. 올해 초 미국의 색채 연구소 ‘팬톤(Pantone)’이 2020년 올해의 컬러로 ‘클래식 블루’를 꼽았는데, 정말 ‘blue(우울한)’한 해가 되고 있다.

지난 2월,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언론은 2003년 사스, 2012년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 사태와 비교하며 ‘8, 9년 주기로 전 세계 역병이 돈다’식의 소설로 공포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두 달 만인 4월 6일 현재, 코로나19 국내 확진자는 만 명을 넘었고, 그들이 써댔던 페이지 수만 많은 소설보다 현실은 더 소설처럼 흘러갔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한국은 세계2위 코로나19 확진자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으나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으로 4월 6일 현재, 코로나 확진자 국가 순위는 17위로 떨어졌다. 1위 미국의 30만 8천명에 비하면 30분의 1수준이다.

대만보다 못한 ‘의료 후진국’이라고 일부 언론들이 부르짖던 한국의 코로나 방역·의료시스템은 WHO 세계보건기구도 인정한 세계적 교과서가 됐다.

일부 언론사들은 ‘대만보다 못한’ 코로나19 방역체계를 갖춘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 같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세계 원유매장량 1위 국가로 산업 대부분을 석유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동등비교한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석유매장량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부가 전 방위적 코로나19 대응책을 내놓자 3월 중순 기점으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수는 더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하루만에 500명 늘어’와 같은 기사를 내보낼 수 없는 이들은 이번엔 연일 해외소식으로 겁주기 시작했다. ‘유럽 아노미’, ‘미국 초토화’과 같은 표현을 써가며.

이 과정에서 해외 체류 중이던 교민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옵션까지 추가했다. ‘해외 유학생 확진자 급증’, ‘해외 복귀 교민 확진자 급증’같은 제목들이 힘을 보탰다. 그런데 ‘43명도 ‘급증’이고 500명도 ‘급증’인 이들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트 생필품 사재기’는 어땠나. 실제 취재 결과, 텅텅 비었다던 대형마트 생필품 진열대들은 비어있을 틈도 없이 마트 직원들이 경쟁적으로 재고를 채워 넣었고, 국내 한 대형마트는 “재고가 동 날 걱정은 없다”며 오히려 생필품 가격 할인 프로모션까지 진행했다.

‘사재기 현상 없는 한국, 비결이 뭐냐’는 BBC발 기사를 포함한 해외 뉴스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뉴스들은 힘을 얻기 어려운 듯 보인다.

왜 그럴까. 왜 어떤 언론은 한국이 대만보다 못한 방역 후진국’이고, 코로나19 확진자는 국내에서 꺾이지 않을 기세로 계속 ‘급증’하고, 마트 사재기가 판 치고, 마스크는 ‘대란’이라 구할 수 없다고 보도할까. 국민에게 공포를 심어주면 이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일까.

국민들이 죄다 ‘코로나 블루’에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4·15총선이 불과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권을 ‘심판’한다는 정당도, 국민 전체에 의도가 불분명한 배당금을 나눠주겠다는 황당한 정당도, 선거 유세에 한창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항상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마련이다. 갑자기 바다에 미사일을 쏘면서 뭔가를 어필하는 나라도 있다. 특히 한국에서 선거철만 되면 거의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사건이 생긴다. 날짜도 어쩌면 그렇게 짜고 치는 것처럼 맞출 수 있을까. 못 쓴 시나리오 작가가 각본을 쓴 대중성과 작품성에 모두 실패한 한국 영화처럼.

한편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산업계 위축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타인과 접촉을 피한 채 집에 머무는 인구가 늘고 있다. 정보 습득은 제한적 형태가 되어간다. 직접 눈으로 현장을 마주하거나 현장감 있는 면대면 소통은 어려워지고, 집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 제목에, 하루 종일 TV 보도하는 일부 언론사 채널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모종의 의도를 가진 공포심 가득한 뉴스들은 ‘코로나 블루’와 거리두기에 실패한 이들의 방역 마스크를 제거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들이 코로나 관련 뉴스에 노출되는 시간만큼, 코로나19의 확진자 증가 숫자를 검색하는 시간만큼, 뉴스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만큼 공포감 깃든 피로감이 한계치까지 쌓인다.

언론이 존재한 이래 독자들은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에 반응해 왔다. 인간이 고급지고 담백한 식감보다 값 싼 조미료의 자극적 식감에 훨씬 반응하기 쉬운 것처럼.

TV 시청 시간을 줄이고, 포털사이트 검색어와 메인 화면의 자극적 기사제목을 외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코로나 블루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걸음이라도 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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