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아니었으면 유야무야 됐을 것
왜 두 후보를 빛의 속도로 제명했나
황교안 대표 ‘N번방 호기심’ 못 건드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래통합당(통합당)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뭔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표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판단하면 곧바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통합당 소속 김대호·차명진 두 국회의원 후보가 제명 처리됐다. 물론 아직 최고위원회 의결이 남았다.

통합당 윤리위원회는 8일 서울 관악갑 공천을 받은 김 후보에 대해 제명을 결정했다. 김 후보는 일단 여론 역풍으로 인해 사과하는 스탠스를 취하면서도 최고위 의결 전까지 재심을 청구하고 법원 가처분신청도 활용해서 시간을 벌 계획이다. 계속 관악갑 유권자들에게 통합당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30대와 40대는 논리가 없다. 거대한 무지와 착각을 지니고 있다.”
-6일 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용하는 시설이 돼야 한다. 장애인들은 다양한데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된다.”
-7일 관악갑 후보자 초청 토론회-

사과를 하고 있는 김대호 후보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과를 하고 있는 김대호 후보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실 통합당의 절대 지분을 갖고 있는 구 자유한국당은 전국민을 경악케 한 망언 소동이 종종 있을 때마다 해당 인사를 신속히 엄중 징계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논쟁 소지 또는 해석의 여지 또는 수위가 덜 한 것 등 심한 케이스가 아닌 것을 다 빼고 봐도 2019년 2월 ‘5.18 망언’은 명백한 강력 징계 사유였다.

당시 몇몇 한국당 의원들(김진태·이종명·김순례·이완영·백승주)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 유포를 남발하는 극우인사 지만원씨를 국회로 초대했다. 지씨는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완벽히 허위로 판명난 주장을 되풀이하는 인물이다.

지씨를 불러들인 토론회장에서 “5.18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김진태 의원)”거나 “5.18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 폭동이라고 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이종명 의원)”이라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의원)”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 한국당 지도부(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여론 역풍에 마지못해 솜방망이 징계를 결정했을 뿐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았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당권 선거 출마자라는 이유로 징계 유예가 결정됐다가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2019년 2월) 이후 각각 ‘경고’와 ‘당원권 3개월 정지’ 처분을 받았다. 김순례 의원은 최고위원에 당선됐고 황 대표의 판단으로 무사히 지도부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의원은 제명 결정이 내려졌지만 의원총회 의결이 계속 미뤄져 결국 20대 국회 임기를 다 채웠다.  

5.18 망언 소동은 김 후보의 망언 수위를 뛰어넘어 한 달 넘게 한국당이 코너에 몰린 이슈였다. 하지만 그때는 총선이 1년 넘게 남은 시점이었다. 지금은 선거가 일주일 남은 시점이다. 그래서 통합당은 이틀만에 불똥을 차단하고 수습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후보는 이날 윤리위의 제명 결정 직후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이해는 가지만 심히 부당한 조치”라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당에 민폐를 끼친 정치인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더 엄격한 윤리 기준이 적용돼야 할 국회의원도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데 후보 신분에 즉결 제명 처분이 나왔으니 억울할만도 하다.  

만약 한국당 때부터 재론의 여지없이 명백한 망언과 부적절한 언사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취해졌다면 김 후보의 상식 이하의 발언도 안 나왔을 것이다. 말하기 전에 더 신중하고 조심해지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선거철에 재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1일 황교안 대표(총괄선대위원장)가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호기심으로 (텔레그램 N번방) 들어왔다가 활동을 그만둔 사람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발언한 것과 무관치 않다. 

N번방 성착취 현장을 지켜본 관전자들은 돈을 내고 발품을 팔아서 들어온 사람들이고 이는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기본지식이다. 호기심으로 성착취 영상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유포를 부추길 수는 없는 것이다. ‘코로나19’와 ‘총선’ 소식으로 뉴스가 홍수인데 N번방 사건은 전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냈다. 통합당 선거 판세로 보면 큰 불이 났다. 하지만 윤리위도 당대표를 건드릴 수는 없으니 다른 후보들만 재빠르게 제거하고 있다.

차명진 후보는 세월호 유가족 관련 막말을 했다. (캡처사진=OBS)

선거철이 아닐 때와 달리 지금 통합당 선대위의 판단은 빛의 속도가 됐다. 

이미 세월호 막말(“유가족 찜쪄먹고 뼈까지 발라먹고 징하게 해쳐먹는다”)로 크게 비난받을 만큼 받은 차 후보(경기 부천병)도 지난 6일 녹화된 후보자 초청토론회에서 “혹시 쓰리썸 사건이라고 아세요? 쓰리썸 사건”이라며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사례로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했고 그 당시 막말을 할만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 

방송 토론회에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세 사람의 성관계를 뜻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되기 어렵다. 아무리 언론 기사 1개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내용을 꺼내는 것 자체가 상식 이하다. 통합당 윤리위는 8일 김 후보와 함께 이런 차 후보를 제명 처리했다. 

한국당 윤리위는 2019년 5월 차 후보와 함께 정진석 의원(“유가족 그만 좀 우려먹으라”는 인용 표현 사용)에게 각각 당원권 정지 3개월과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둘 다 공천을 받았다.

김종철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차 후보의 막말이 터져 나오자 미래통합당은 서둘러 차 후보를 제명했다. 그러나 차 후보를 공천할 때부터 이같은 일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차 후보에게 공천장을 건네는 순간부터 그간 차 후보가 내뱉었던 숱한 세월호 유족 모독 행위들에 대해 당이 면죄부를 준 것이니 제명은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문정선 민생당 선대위 대변인도 기자와의 메시지 교환을 통해 “원래 인권 감수성 부재가 통합당의 전통 아닌가? 제명으로 역풍 차단한다고 통합당 후보들의 인권 수준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겠느냐? 이러다 통합당 후보 전멸하는 것 아닌가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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