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인의협, 쪽방촌과 장애인들 위해 팔 걷고 나서
간호사 H씨의 대구코로나19 병동 일기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탈출구 있나?...텅빈 시장·도심등 다시 활기 찾아

[중앙뉴스=윤장섭 기자]대구시민들은 지금도 긴긴 터널의 끝자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2월의 대구는 중국발 우환폐렴으로 도시 전체가 전시상황이나 다름없는 혼란을 격었다. 누가 대구에서 이렇게 많은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올줄 알았을까?

하루하루가 힘들었을 그곳에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은 앞을 다투어 내려갔다. 과로로 쓰런진 시장을 비롯해 의사와 간호사 등 자원봉사자들도 힘든 시간만큼 지치고 쓰러졌다. 그리고 두달이라는 시간동안 코로나19와 싸워 지금은 조금씪 도시가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도 이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을 기록했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2월18일 이후 52일 만이다. 

대구시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대구 누적 확진자는 전날과 같은 6807명이다. 대구에서는 지난 2월 29일 하루 확진자 74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 흐름을 보였다. 5천43명이 완치됐고, 1천195명은 병원 57곳에, 476명은 생활치료센터 7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확진자 중 4천259명(62.6%)은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 교인이다. 520명(7.6%)은 요양·정신병원 등 집단 시설과 연관이 있는 확진자들이고 나머지 2천24명(29.8%)은 기타 감염자로 분류됐다. 대구에서는 코로나19로 139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구의료진 응원메시지(사진=LG)
대구의료진 응원메시지(사진=LG)

▲ 대구·경북 인의협, 쪽방촌과 장애인들 위해 팔 걷고 나서

코로나19로 바라본 대구시는 국가의 재난상태와 다름없는 기간을 무려 1달여 이상 보냈다. 환자는 쏟아졌고 의료진들은 모자랐다. 전국에서 의료 봉사자들이 대구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수많은 목숨도 살릴수 있었다.

대구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의 환경은 열악했지만 이들은 결코 환경탓을 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던 지난 2월에는 많은 간호사들이 영안실 옆에서 까지 잠을 자며 환우들을 지켰다.

의사들도 계속 되는 코로나19 검사, 진단, 치료 등으로 지치고 힘들어 했다. 쉴 공간도 변변치 못해 자신의 차 안에서 쉬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방호복이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나 간호사들보다 환자들이 먼저였다.

환자들을 먼저 생각한 의료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구시는 4월들어 안정을 찾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분들이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대구시 쪽방촌 사람들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장애를 가진 분들을 평상시 도움을 주던 대구·경북 인의협의 손길 덕분이기도 하다. 

대구·경북 인의협은 쪽방촌 주민들과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를 운영해왔다. 이주노동자들 대다수가 중국 출신들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루하루벌어 먹고사는 이주민들은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19의 감염 못지않게 이들을 힘들게 한 것은 굶주림이다. 대구역 뒤쪽에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던 무료급식소가 코로나19로 잠정 폐쇄됐다. 그러다 보니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먹을 게 가장 필요했다.

인의협은 환우들의 진료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들어온 도시락, 컵라면 같은 후원물품들을 전달하는 역활도 함께해야 했다. 장애인 단체나 시설도 어려움을 겪었다.

장애인 의심환자들은 가장먼저 지역 보건소나 1339에 전화를 걸어 의심증을 알리려고 해도 연결이 잘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답답한 사정을 가장 잘 알아줄 대구·경북 인의협으로 연락을 많이했다고 한다.

인의협 역시 선별진료소를 차리고 이들의 처지를 대구시에 알리는 등 역활을 다했다. 당시 대구시는 특정 종교단체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지면서 검사의 우선 순위가 종교인들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당시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검사하러 모시고 나오는 것부터 힘들었다고 대구대구·경북 인의협 회원들은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종교인들보다 우선순위에 밀리다보니 장애인 확진자가 나와도 병상이 부족해서 다른 지역까지 멀리 보내야 했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일치하지 않습니다(참고사잔=대구 MBC 캡처)
사진은 본문 내용과 일치하지 않습니다(참고사잔=대구 MBC 캡처)

▲간호사 H씨의 대구코로나19 병동 일기

지난 2월의 대구는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도 많이 나왔지만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손길도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H씨(32세 여)는 경력 7년차의 간호사다.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간호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보건직 공무원의 시험을 준비중이다.

H씨의 신랑도 전문 간호직으로 근무하다 3년전에 보건직 공무원에 합격해 현재 질병담당 업무를 맡아 서울 근교에서 근무중이다.

코로나19의 확진자가 한창 많이 발생하던 지난 2월 H씨는 공무원 시험을 잠시 중단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H씨는 의사, 간호사 등 외부 의료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한 종합병원으로 배정됐다. H씨는 작은 체구라 방호복을 입는다는 것이 활동에 불편할 수 있고 온몸이 땀에젖는다는 점에서 방호복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환우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꼭 갖추어야 할 복장이기에 착용하는 시간동안 인내심을 갖고 잘 견뎠다.

격리된 환우를 방호복을 입고 치료에 임한다는 것이 평상시 보다 몆배나 힘든 일이라는 것도 현장에서 체험했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생각이 들자 조금은 자원봉사에 대한 두려움도 몰려왔다.

그럼에도 H씨는 경력 7년차인 간호사 답게 하루이틀 환우를 돌보고 치료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H씨는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동의를 구해 내려오기는 했지만 집이아닌 병원 숙소 생활은 H씨로 하여금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H씨는 지난 1주일동안 여유있는 식사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항상 긴장상태에 있어야 했고 또 자신의 건강까지도 생각해야 했기에 변비까지 생겼다.

H씨는 아침 일찎 야간조와 교대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잠깐 잠깐 쪽잠을 자두어야 늦게까지 버틸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눈은 항상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끔 화면속 환자가 산소공급용 콧줄을 벗고 방을 활보하게 되면 긴장은 고조된다. 산소공급을 돕는 호수는 생명줄과도 같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리 답답해도 떼어내면 안된다.

간호사들이 입는 방호복은 재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환자가 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 다시말해서 간호사가 환자의 배식을 위해 병실에 들어갈 때 환자의 상황을 잘 체크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치료를 하고 나오도록 지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장비에서 포화도가 60~70% 아래로 떨어진 경우를 떠나 무조건 방호복을 입고 병실로 들어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H씨는 몆번 이런일들을 격었다. 그리고 환우의 식사를 돕는 것도 H씨의 역활이다. 나이가 많은 환자의 경우 움직임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고 또 집중 치료를 받다보니 체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밥을 먹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환자에게 밥을 먹이려면 먼저 침대에 눕혀야 하고 식사를 하기에 알맞은 각도로 침상을 조절해야 한다. 자신보다 더 큰 환자를 혼자 옮기려면 체력도 많이 소진된다. 특히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방호복 안으로 땀이 쏟아진다. 보안경도 물방울이 맺혀 앞이 뿌해 환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환자에게 그렇게 힘들게 식사를 돕고 나오면 가장 먼저 방호복을 벗어야 한다.

새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다음 환자를 케어해야 한다. 주사를 놓기 위해서 다른 병실로 들어간다. 방호복과 간호사 장갑때문에 주사를 놓기위해 혈관을 찾는 일도 한번에 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면 환자의 짜증섞인 푸념도 들어야 한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위해 간호사들이 탈의실로 모여든다. 탈의실에 있는 4인용 탁자엔 한번에 2명만 앉을 수 있다. 마스크를 끼지 못하는 식사 시간엔 서로 마주 보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8명의 간호사가 2명씩 교대해가며 식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H씨는 간편식 컵라면을 즐기는 편이다.

감염관리실이 주재하는 회의 시간도 오전에 잡혀있다. 주로 환자와 간호사들 사이에 주의해야 할 지침사항을 전달받는다. 회의를 마치면 다시 자신이 케어해야할 환자가 있는 병실로 간다.

그리고 점심 식사 전까지 오전에 했던 일들을 반복하며 환자를 돌본다.

환자들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별실에 갖혀 지내야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치료를 받아 병실을 탈출하는 것만이 최고다.

H씨는 환자 가족들과의 소통도 해야한다. 가장 환우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보호자들의 전화 문의는 시도때도없이 걸려온다. 전국에서 의료봉사자들을 위해 보내주는 응원 편지와 과일 등을 접하면 용기도 다시 살아나고 봉사자로서의 해야할 책임감도 더 커진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음 교대조와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H씨의 하루 일과는 끝이난다.

옷을 갈아입는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하루가 며칠 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H씨는 오후팀에게 인수인계 메모를 전달하며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으로 인수 인계를 마친다.

그렇게 2주일을 보낸 H씨는 다음을 기약하고 봉사를 끝내고 서울로 왔다.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탈출구 있나(사진=대구역 주변 윤장섭 기자)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탈출구 있나(사진=대구역 주변 윤장섭 기자)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탈출구 있나?...텅빈 시장·도심등 다시 활기 찾아

2월부터 시작된 대구의 코로나19가 첫 확진자가 발생한지 오늘(14일)로서 57일째를 맞는다. 57일간의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코로나19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도시가 대구다. 대구시는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 3주간 모든 것이 멈춘 듯 긴 터널의 시간을 보냈다. 불야성을 이루던 도심의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이동하는 차량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러니 식당이 문을 열어본들 무슨 장사가 되겠나.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 가정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던가 아니면 편의점 간편식이 도시락을 대신했다.

유치원을 비롯해 초, 중.고 등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지 못해 집집마다 아이들과 다투는 부모들의 목소리만 점점 담을 넘었다.

지금도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치료자들의 통계를 보면 대구가 단연코 1위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10일을 기점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희망적인지 모른다. 이제 대구는 코로나19라는 아주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하다.

대구가 코로나19에 가장 정점을 찍었던 달이 지난 2월 말~3월 초다. 이때까지는 대구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속단하지 못했다.

도지사까지 과로로 쓰러지면서 지켜낸 대구는 최근들어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0명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이철우 지사=중앙뉴스 DB)
도지사까지 과로로 쓰러지면서 지켜낸 대구는 최근들어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0명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이철우 지사=중앙뉴스 DB)

도지사까지 과로로 쓰러지면서 지켜낸 대구는 최근들어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0명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구의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닫았던 상가들이 하나 둘씪 문을 열고 젊은이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산책로도 붐비고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공원으로 들로 가족들과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재택에서 출근으로 바뀐 샐러리맨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구가 조금씪 활력을 찾자 이제 관심은 바닥까지 떨어진 대구 경제를 살리려는 움직임들이 엿보인다.

그러나 2달여 동안 멈춰버린 대구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거리와 사업장에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디기는 하겠으나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리라 믿는다.

문제는 영세 상인들이다.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왔지만 대다수 많은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사태가 끝나기도 전에 줄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대구시 서구에 살고있는 P씨(52)는 조그만 건설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10일) P씨는 기자에게 하도 답답해 낙시터에 왔다며 전화를 받았다. P씨는 대구에서 조그만 건설업을 11년째 하고있다.

비교적 작은 공사를 맡아하기때문에 일감은 쉬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약 두달간 일감이 들어오지 않아 직원들의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업 특성상 개인들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일감을 있어도 결제대금은 미수가 많다. 문제는 제때에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P씨 자신부터 사업이 휘청 거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모든 경기가 멈추다보니 자금 역시 멈췄다는 것, 결국 궁여지책으로 예금도 해약하고 보험도 해약해서 이것저것 밀린 경비를 해결했지만 또 추가로 발생된 경비는 막을길이 없다고 했다.

P씨는 일단 소상공인 자금을 신청했으나 절차도 복잡하고 대출 기준도 많이 까다로와 정부가 밝힌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며 이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자금 신청을 하겠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가 대구를 긴급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고 했지만 정작 중,소 상공인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수성구에서 인터넷가입센터를 운영하는 K씨(여성)다. K씨는 대구에 코로나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할 시점에 센터의 문을 닫았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유급 직원을 둘 수가 없어 무급으로 돌렸고 직원은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갔다고 했다.

지난달 27일(금요일)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듯 해서 K씨는 다시 센터의 문을 열기로 했다. 이어 센터 직원도 채용해야 하고 그동안 밀린 점포세와 각종 세금을 자신의 카드로 우선 납부했다. 그리고 K씨는 카드대금과 점포운영비, 영업손실비용 등을 메우기 위해 정부에서 추진중인 중,소 기업인 대출을 신청했다.

 K씨는 대출 신청을 한지 2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기업은행에 전화를 걸어 대출과 관련한 몆가지 사항들을 문의했다.  은행측 담당자는 모든 서류를 신보에 보냈고 신보에서 서류심사를 마치면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K씨는 답답한 마음에 신보에 전화를 걸어 대출과정에 대해 문의를 하려 했지만 안내멘트만 계속 나오고 직원과의 연결은 되지않아 화가나서 끊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의뢰했기때문이라는 것도 알지만 K씨는 점점 속이 타들어 간다.

대구의 모든 시민들이 다 힘들어 하지만 특히 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은 두달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보니 지방세를 비롯해 국세등 모든 공과금을 내지 못해 신불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4월의 대구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코로나19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나온 것은 분명 희망이다. 하지만 정작 힘들게 어둠을 뚫고 나와보니 눈앞에 놓인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무너진 경제를 어떻게 빨리 회복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줄줄이 도산위기에 처해있는 자영업자, 중. 소 기업인들을 구해내는 일에 대구시와 경제인연합회, 금융당국 등은 두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소상공인이 살아야 대구가 산다. 정부도 긴급 재난지역에 맞게 가장빠른 시간안에 정확한 자금 대출로 이들의 소생을 도와야 한다.

한편 대구시 당국은 아직 감염 예방의 고삐를 풀어선 절대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달성군 제2미주병원, 한사랑요양원, 대실요양원 등 집단감염 징후가 다 해소되지 않았고, 해외 입국자에 의한 바이러스 역유입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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