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선 홍준표
비박계 심상치 않다
대권 주자 옹립하도록 전권 달라
원로들도 김종인 카드에 회의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비상대책위원회로 가느냐 조기 전당대회로 가느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미래통합당이 다수결 결과에 따라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시간과 전권을 달라며 높은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존심도 없는줄 아냐”며 “차라리 헤쳐 모여”를 하자고 견제구를 날렸다.

이번 총선까지 4연패를 당한 통합당이 여전히 수습책을 놓고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 하고 있다.

통합당은 20대 국회의원 및 21대 총선 당선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22일 오전 그 결과 김종인 비대위로 다수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대략 김종인 비대위(43%) 대 조기 전대(31%)로 나왔다. 통합당 최고위원회 의견 분포 역시 6대 4로 김종인 비대위 쪽이었다.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의 빈자리는 일단 이런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이제 전국위원회 의결만 남았다. 그전에 김 전 위원장과 협상을 통해 기간과 권한 등을 놓고 타협을 봐야 한다. 이게 만만치 않다. 일단 23일 오후 국회에서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와 김 전 위원장이 만나서 최종 수락 여부를 놓고 담판을 짓기로 예정돼 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미래통합당의 비대위원장을 맡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김 전 위원장은 22일 아침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7월에 조기 전대를 하겠다는 전제가 붙으면 나한테 와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면서 충분히 통합당의 체질 개선을 꾀할 시간과 권한을 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김 전 위원장은 “경우에 따라서 내 판단이 도저히 이거는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나라당 비대위 체제 때의 경험담을 거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의 체질을 칼질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이 보장돼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만약 조기 전대로 가서 단순히 수습형 비대위원장이라면 수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통합당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꼭 자신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김 전 위원장은 “다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며 “당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과거에 이 사람들을 보면 시행착오를 겪다가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허사가 돼버리는 것”이라며 “앞으로 남은 것이 대통령 선거인데 대선까지 이 당을 어떻게 수습을 해서 임할 수 있을 것이냐? 이것이 이 당의 가장 초미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 상당수 분들은 그것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정리하면 이런 거다.

①좌우 균형이 무너져 보수정당 회생의 사명이 있고 비대위원장 맡을 의향 있음
②통합당 구성원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전권을 줄지 말지 망설이고 있음 
③정말 비상 기간이니까 7~8월 전대 조건을 없애고 당 체질 개선을 위한 충분한 시간 보장
④당 체질 개선의 판단 기준은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체제를 만드는 것 
⑤굳이 전권이라 하지 않아도 현재 당대표 수준의 권한만 보장해주면 여러 잡음 통제 가능
⑥만약 맡게 된다면 총선 패배 원인 분석부터 해야 함
⑦이후 대국민 잘못 고백 및 사과가 진행된다면 재창당 수준의 변화 가능
⑧세대교체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무조건적으로 30~40대 전면 배치는 하지 않을 것
⑨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바꾸는 차원의 당명 바꾸는 것도 가능

무소속 당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 홍 전 대표는 22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③을 근거삼아 “누군 자존심도 없는 줄 아냐”면서 “아무리 당이 망가졌기로서니 기한없는 무제한 권한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당을 너무 얕보는 처사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차라리 헤쳐 모여 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닌가.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릴 때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사실 홍 전 대표를 비롯 비박계(박근혜 전 대통령)는 김종인 비대위 카드를 적극 밀었었다. 이번에 3선을 이뤄낸 장제원 통합당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홍 전 대표는 17일 방송된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총선 참패의 책임은) 황교안 대표 문제다. 김종인 위원장이 무슨 책임이 있는가. 아무리 명장이더라도 허약한 병사를 내세워서 전쟁이 되겠는가. 김종인 위원장은 책임이 없다”며 “궁여지책 끝에 생각하는 것이 지금  보이는 것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오면 좀 어떨까. 그분은 카리스마도 있고 또 오랜 정치 경력도 있고 또 민주당이나 우리 당에서 혼란을 수습해 본 경험도 있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위원장도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는 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이 공천에 무슨 관여를 했는가. 선거 시작 직전에 허약한 병졸들 데리고 장수로서 지휘를 해서 참패를 하긴 했지만 장수가 아무리 강해도 병졸이 허약하면 전쟁에 못 이긴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홍 전 대표가 귀에 거슬릴만한 발언을 좀 했다.

먼저 김 전 위원장은 “(김대호·차명진 막말 논란에 대해 당이 지역구 유권자에 맡긴다고 하고 무시 전략으로 가야하는데 오히려 당이 일을 키웠다는 홍 전 대표의 주장을 두고) 키운 게 아니라 그건 그 사람 얘기대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단 말이 뱉어지면 그거에 대한 수습할 생각을 해야지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양 넘어갈 것 같으면 유권자들이 그런 당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겠나”라고 반론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을 견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정타는 대권 주자로서 홍 전 대표의 입지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전 위원장은 “(홍 전 대표의 대권 목표에 대해) 꿈꾸는 사람이야 뭐 홍준표씨 뿐이겠나? 내가 보기에 (보수진영에서도) 대권 꿈꾸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며 “사실 대권 꿈이라는 게 꿈 꾼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여러 여건이 갖추어지고 거기에 소위 국민들의 의사가 집약됐을 때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꿈꾼다고 대통령이 되겠나. 뭐 하늘이 아닌 여건을 만들어서 최대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황 전 대표의 공석으로 무주공산이 된 통합당에서 차기 주자로 평가되는 주요 인사는 △홍 전 대표(대구 수성을) △서병수 전 부산시장(부산 진구갑) △김태호 전 의원(경남 거창함양산청합천) △권성동 의원(강릉) 등이 있다.

가장 스피커가 크고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누가 뭐래도 홍 전 대표다. 김 전 위원장이 홍 전 대표와의 갈등 전선을 맺게 되면 향후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더라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김무성 의원 등 비박계 전현직 의원 10여명(강석호·이종구·여상규·홍일표·김성태·안상수·박인숙·장제원·김종석·권성동·이은재·김을동 등)이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찬 회동을 가졌다. 오랜만에 갖는 친목 모임이라는 명분이지만 총선 실패에 대한 이야기나 향후 당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도 당 쇄신 방안 등을 공유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 정도 비박계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을 견제하는 목소리는 보수 원로, 당선인, 현직 의원 등을 가리지 않고 거세게 터져나오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22일 방송된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비대위 체제가)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것인데 가능한 한 빨리 전당대회를 치러 새로운 지도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그래도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총선 직후에 만들어지는 비대위는 사실 별 역할을 하기 어렵다. 새로운 당선자들이 자신이 당 중심이라 생각하는데 외부인이 들어와 당을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국정농단 정국이던 2016년 12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인명진 목사는 22일 방송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내가 비대위원장을 해보니 통합당 비대위는 자기들의 잘못한 것을 누구 희생양을 데려다 덮어씌워서 위기를 모면하고 넘어가려는 일시적인 방편”이라며 “김종인 위원장 종신으로 한다든지 그러면 이해가 간다”면서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도 언젠가는 그만둘 것이고 그러면 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대위를 해서 외부 인물을 위원장 시키면 나중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기에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비대위를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구성하되 영남, 다선, 중진 이런 사람들은 다 물러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23일 보도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번에 당선되어 4선이 된 김기현 당선자(울산 남구을)는 “당의 지도 체제가 전화로 몇 번 물어(전수조사 방식) 임시처방으로 결정할 만큼 가볍고 사소한 사안이냐”면서 김종인 비대위의 정통성에 문제제기를 했다. 

3선에 성공한 조해진 당선인(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도 23일 방송된 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이런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21대 총선 84명의 당선자가 당을 스스로 다스리거나 개혁할 능력이 없는 정치적 무능력자 정치적 금치산자들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라며 김 전 위원장의 요구가 “모욕적”이라고 반발했다. 

3선 도전에 실패한 재선의 김선동 의원(서울 도봉을)은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100석이 넘는 정당이 무뇌가 아니라면 스스로 사심만 버리면,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들어낼, 이런 쇄신을 하면 국민들도 지켜봐 주실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김 전 위원장의 요구에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물론 옹호론도 존재한다. 

5선에 성공한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통합당은) 그간 위기를 자강론으로 돌파한 사례가 없다”면서 “왜 김종인이냐는 질문은 중도 성향에 위기 극복 경험을 가진 경제전문가라는 말로 설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심 원내대표에게 이미) 현역 의원과 21대 당선인들의 합동 연석회의를 갖자”고 제안을 했다면서 “당선자 총의를 모아 김종인 비대위의 시작에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김종인 비대위 카드로 대세가 기울었다가 홍 전 대표의 반감 표시 이후 다시 비박계가 돌아서는 듯한 모양새다. 또 다시 친박계와 비박계 등을 비롯한 계파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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