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꽃구름 카페』 펴낸 서정란 시인

사진 제공 / 서정란 시인
사진 제공 / 서정란 시인

 

봄이 온다

서정란

 

봄이 온다

겨울보다 먼저

아무데나 온다

 

실직한 가장의 폐광 같은 공장 앞에도

눈물의 점포정리 비정규직철폐 일자리구함 철거반대…

호소체로 쓴 구호가 빽빽한 담벼락 아래도

꽃의 희망이 사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문들레 민들레 노란 깃발을 들고

봄이 온다

 

짓밟힌 민들레 깃발을 들고 오듯이

실직한 가장의 처진 어깨에도

부도난 사장님의 먹장 가슴에도

두근두근 봄이 오면 좋겠네

찡한 눈물 그렁그렁 달고 오면

더욱 좋겠네

 

서정란 시집 『꽃구름 카페』에서

------------------

올해도 봄은 왔는가? 흩날려 떨어진 벚꽃들이 묻는다. 꽃들의 마음조차 겨울인 이 시절이다. 점령군 바이러스와의 전투에 피투성이 같은 철쭉들이 더욱 짙게 도리질 한다. 봄은 아니라고, 이런 봄은 겨울病에 미쳐버린 봄일 뿐이라고... 예의상 피어난 것만 같은 봄꽃들에게 난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할 뿐이고... 봄이 온다고, 분명 봄은 오고 있다고, 수군거리는 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바이러스는 그저 균일뿐, 눈부신 햇살이 진군하는 봄 앞에 사라져갈 것이다. ‘코로나19’가 갈갈이 찢고 부도낸 봄이 복구되어 가고 있다. 잔인한 시간들에 맞서 사투하는 병들고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도, 그들을 응원하며 돕는 모든 손길들에게도 기적 같은 상생의 봄이 안겨지길 기원한다. 시인의 바람처럼 두근두근 그렁그렁 눈물 달고 치유의 봄이 빨리 와주면 좋겠다. 부디 더 이상 추운 5월이 되지 않기를...

[최한나]

-------------------

서정란 시인 /

경북 안동 출생

1992년 동인지 출간으로 작품 활동 시작

동국 문학상 수상

시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어쩔 수 없는 낭만』 『꽃구름 카페』 외 여러 권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