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38명 취약계층 노동자
한국 경제체제
산업재해와 노동권
노동자 정치세력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6일간의 황금 연휴가 후반기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이천 화재 참사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지난 4월29일 13시반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큰 불이 났고 현장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DNA 조사 결과를 통보받았고 참사 사흘 만인 2일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거나 이주 노동자였다. 

이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다.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3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 국내 감염자 수가 0(지역사회 감염자)이라는 뉴스와 함께 38명의 한익스프레스 산업재해 사망자 소식이 전해졌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이 아니라 한익스프레스 산업재해 사고라고 정확히 말하자”며 “산업재해라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라고 지적했다.

김훈 작가는 작년 11월25일 출고된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이고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이러한 한국 경제체제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박권일 평론가는 4월30일 출고된 한겨레 칼럼을 통해 한국 경제체제를 “요소 투입형 체제”라고 규정했다. 

박 평론가는 “요소 투입형이란 말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한국 등 아시아 경제성장 모델을 논할 때 언급했던 개념이다. 쉽게 말해 물량을 쏟아부어서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이라며 “한국 경제는 이른바 아시아의 4마리 용 시절에 비해 상당히 바뀌긴 했으나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실패해서 여전히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요소 투입형 시스템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사람을 장시간 갈아 넣어 이윤을 짜내는 구조로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 방역 현장의 노동 역시 저임금 노동자, 관련 공무원, 일부 의료인들을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에 따라 투입하는 전형적인 요소 투입형”이라며 “2018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 노동시간은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러시아에 이어서 OECD 5위”라고 밝혔다.

시공사인 ‘건우’에 공사를 맡긴 한익스프레스는 1979년 창립된 특수화물 및 유통물류 분야 기업으로 코스피 상장사다.

사회학자인 오찬호 작가는 3일 출고된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이천 참사에 대해) 최저가로 하겠다는 업체가 있었고 그 최저가에 맞추기 위해 줄어든 공사기간에 수긍하는 하청업체가 있었을 것”이라며 “여기저기서 급구라는 공지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과 산재는 부끄럽고도 고질적인 문제다.

박 평론가는 “한국은 여전히 OECD 최악의 산재 사망 국가이고 그 죽음의 절대 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2019년 9월 감사원은 한국철도공사가 선로 작업시 소지하는 열차 접근 경보기를 정규직에게만 지급해왔음을 밝혀냈다. 시민의 안전 감수성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생명은 차별하는 사회 그게 대한민국”이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은 “코로나19 총 사망자 숫자는 250명이다. 2019년 작년 한해 산재 사망자수는 2000명이 넘는다. 이중 질병이 아닌 사고사만 850명이 넘는다. 250명이 사망한 코로나19에 전국이 난리지만 매년 2000명이 사망하는 산재 사고는 왜 일상화되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까?”라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정책전문가가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이미 모든 정책은 다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샌드위치 패널 같은 자재를 난연 자재(불에 타지만 연소는 잘 되지 않는 재료)로 바꾸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아시바(공사장의 가설물) 연결부위를 튼튼히 하고 벽에 단단히 고정만 하면 상당히 효과가 있다”며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은 이토록 단순하니 정책 전문가 씩이나 필요없다. 기업살인처벌법도 이미 성안되어 있다.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들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도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세계 산업재해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0.4.22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4월22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세계 산업재해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 방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우리 국민들도 그걸 인정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압승의 총선 결과를 만들어줬다. 결국 시민의 소중한 생명과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 방역에 총력을 기울인 것처럼 산재 예방에 총력을 기울일 수는 없을까.  

오 작가는 “방역에 성공했듯 노동을 대하면 된다. 뉴스 상단엔 오늘의 산재 사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는가를 논의하자”면서 “코로나19의 입장도 이해하자. 바이러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냐 따위의 말은 하지 말자.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지자체에선 단속하고 벌금 물리고 소송도 불사하자”고 제언했다.

이어 “나쁜 기업을 발견하면 역학조사해서 그딴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한 이론을 찾아내자. 그렇게 안 했으니 죽은 거다. 안 하면 또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년 위험한 일을 하다가 2000여명이 죽어나가는데 오 작가의 시나리오대로 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 경직성을 탓하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목소리만 요란하다.

김 작가는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며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는 빈부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이 위원은 김 작가의 절절한 이야기를 존중하면서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연대를 강조했다. 나아가 한국 사회 지식인들이 끔찍한 노동 사건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위원은 “코로나19 사망자도 도련님이나 아가씨는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에 이토록 관심보이는 것은 저 죽음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전염의 두려움”이라며 “산재 사고는 전염되지 않을까? 전염된다. 화재 바이러스가 묻은 샌드위치 패널이 제대로 소독조차 하지 않고 또 투입된다. 그 전염성을 느끼게 만드는 게 바로 연대의식”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그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고 이들의 정치세력화 아닐까?”라며 “노조를 조직하고 집단 입당을 만드는 순수하지 않은 정치세력 얘기에 대해서는 언론은 물론 지식인들의 관련 언사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도 보기 힘들더라.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은 이들(故 김용균씨 등 산재 피해자)을 추모하는 것 까진 것 같다. 그래서 김훈의 글은 칭송받지만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정당을 만들고 정치세력화하는 일에는 눈을 감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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