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오프라인 개학 결정
학부모와 교사는 물어도 학생은?
원래 그래왔다
학교운영위원회 참여권 보장
청소년 참정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코로나19의 긴 터널 끝에 오프라인 학교 개학이 결정됐다. 교육부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개학할지에 대해 고민이 무지 많았고 학부모, 교사, 시도교육감, 방영당국 등과 긴밀한 소통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사회부총리)은 4일 16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등교 수업 재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의 의견은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처럼 별도의 여론조사나 설문조사를 하지 못 했다”며 “선생님과 학부모는 일반 여론조사나 네트워크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학부모와 선생님의 의견에 일정 학생의 의견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은혜 장관은 학생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현 연합뉴스 기자는 유 장관에게 “여러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는데 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특이한 게 정작 학교에 관한 것은 학생들이 중요한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나오지 않았다. 수렴하지 않았다면 왜 하지 않았는지 말해달라”고 질문했고 위와 같은 답변을 들었다.

질의응답 전에 유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교원단체 △교육청 △학부모 △교사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고 “안전한 등교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였다”고 알렸다. 구체적으로 △장관 주재 시도교육감 영상회의(4월28일) △교원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4월27일~29일) △학부모 대상 전화 설문조사(4월29일~5월1일) 등이 진행됐다.

유 장관은 그런 조사들의 결과까지 일일이 다 소개하면서 충분한 숙의를 거쳤다는 점을 어필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존재 목적 자체가 학생들의 교육권에 있음에도 정작 그들의 의견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학부모와 교사의 견해 속 부차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 한국 교육체계는 그동안 학생들을 미성숙한 미성년자로 설정하고 훈육 대상으로만 규정해왔다. 매번 중대한 입시 정책을 결정할 때에도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수렴된 적이 없다. 정시일지 수시일지 그 비중을 어떻게 꾸려갈지에 따라 수험생인 학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들은 언제나 결정된 것을 따르기만 했다.

청소년 인권운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 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학부모와 교사 의견만 듣고 학생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다”며 “이번에 유 장관의 그 발언이 보여준 학생들의 의견 수렴 필요성에 대한 인식 정도가 매우 낮은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이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일 같은 경우도 당연히 가장 큰 당사자는 학생들인 만큼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그런 과정들이 당연히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직접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개학 날짜(5월13일)를 비롯 대상별 시기별 상이한 개학 스케줄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 결정 과정에는 어른들의 판단과 고려만 반영됐다.

학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제정연대)와 청소년 활동가들은 작년 7월29일 청와대 앞 광장(서울 종로구 효자동 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참여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58조 2항 1호~3호와 63조 1항에 따르면 국공립 및 사립학교는 △학부모위원 △교원위원 △지역위원 등을 적절히 배분해 학운위를 구성해야 한다. 학운위는 학교의 주요 의제에 대한 의사결정기구로 기능한다. 동법 17조에 따르면 “학생의 자치 활동은 권장 및 보호되고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고 돼 있기도 하고 시행령 59조의4 2항~3항은 “국공립학교에 두는 운영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학생 대표 등을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또는 제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들어야 한다”거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가 아니라 “들을 수 있다”는 수준이다. 제정연대는 시행령을 개정해서 학운위에 학생의 참여권을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문재인 대통령과 교육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관철시킬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 주권을 학운위에서부터 보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해서 시행령 개정에 나설 듯 하면서도 여전히 소극적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자와 만난 황예희 활동가(강원도 원주중등연합학생회 가람)는 학운위에 학생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짜 단순한 것”이라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의 규칙을 적용받는 것은 학생이다. 학생이 지키고 학생의 생활 규율인데 그걸 왜 어른들이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강 대변인이 밝혔듯이 원래부터 학생들의 의견이 배제돼왔기 때문에 코로나로 미뤄진 오프라인 개학을 언제 재개할지를 두고 또 다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이가영 활동가(가람)는 투표권 연령 하향과 관련해서 “아무래도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그런 선거(교육감 선거 및 교육 관련 공약이 부각된 여타 선거)에서는 학생들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학부모들의 환심을 사는 그런 공약(입시 공약)을 내세우는 분들만 많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18세 선거권이 보장됐다. 청소년의 참정권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음에도 여전히 교육부의 편견은 공고한 것 같아 인식 제고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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