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선진화법 체제 대대적으로 손볼 듯
미래통합당의 협상력 약화
국회가 멈춰있는 이유
적대적 대결정치와 선거제도는 손보지 않고
원구성 협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입법 추진의 효율성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총선 공약집에 “일하는 국회”로 명명된 관련 정책은 일 안 하고 보이콧에 몰두했던 미래통합당의 협상 수단을 무력화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 

7일 21대 국회 1기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된 김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 개혁의 핵심인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 성과는 혁혁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경제라는 게 어렵지 않을 때가 없지만 코로나 이후의 경제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비롯 국회 차원의 경제 대책이 좀 더 빨라져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

김 원내대표는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올지 모르는데 국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경제위기를 막아내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롭게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일하는 국회 관철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의 일하는 국회 공약은 ①매월 임시국회 소집 의무화 ②자동으로 상임위원회 개최 ③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④국민입법청구법률안(3개월 내 30만명 이상 온라인 지지 서명) ⑤국회의원 불출석 제재 ⑤국민소환제 등이 있다.

공약엔 없지만 ⑥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 기간 단축도 중요하다. 이번에 낙선한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2018년 10월 ‘국민명령법’을 발의한 바 있다. 위 5가지보다 이게 핵심이다. 민주당의 총선 대승 이후 모두가 180석 달성에 주목했는데 의원 정수 300명 중 60% 5분의 3이라는 숫자는 국회에서 프리패스로 통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됐고 평시 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능이 사라졌다. 이는 동물 국회에서 식물 국회로 불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는데 주요 교섭단체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그 어떤 법안의 통과도 매우 어려워졌다. ‘날치기’는 사라졌지만 국회를 마비시키는 ‘야당의 보이콧’은 상수가 됐다. 

하지만 선진화법은 특정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의 5분의 3(전체 300명 중 180명 또는 해당 상임위에서의 60% 이상)이 동의하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고 여야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33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본회의 부의 60일)이 지나면 무조건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했다.

그래서 민주당 입장에서 국회 의석까지 지배한 마당에 330일의 거치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
 
김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일하는 국회, 상시국회를 당론으로 만들어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련 법도 이미 있는 상태다. 일하는 국회는 국민의 바람이기 때문에 야당과 협의해 맨 먼저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과의 협치도 제도적 시스템을 통한 문화 조성의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사람은 늘 불안정하기 때문에 제도 속에서 하는 게 안정성이 있다.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정성을 들여 진정성을 가지고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다. 코로나 위기를 여야가 힘 모아 극복하는 게 기본적 임무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일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먼저 갖추는 것을 야당과 협의하고 국회가 마련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일단 해당 상임위의 법안소위(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 날짜부터 잡아야 한다. 국회법상 회의 일정은 합의가 아니라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주요 교섭단체 야당은 보통 협의를 잘 안 해준다. 집권 정부를 공격할거리가 생기면 이에 대한 해명과 요구사항을 촉구하기 위해 회의 일정을 안 잡고 보이콧하기 마련이다. 보이콧의 방식은 단순히 시간끌기부터 장외투쟁까지 무궁무진하다. 

법적으로는 회의 일정을 안 잡으려고 하는 교섭단체 정당을 빼고 법안소위위원장이나 상임위원장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잡을 수 있지만 관행상 합의에 따라 잡힌다. 상대 정당 소속의 타 상임위원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상임위에서 교섭단체 정당을 빼고 의사일정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고는 하지만 미래한국당 의석까지 합하면 103석을 보유하고 있다. 300석 중 3분의 1이다. 국회 상설 상임위는 18개이기 때문에 최소 6개는 통합당 몫이 된다. 즉 통합당은 6명의 상임위원장으로 얼마든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특히 20대 국회처럼 법사위원장까지 쥐게 되면 더더욱 막강한 실력행사가 여전히 가능하다.

실제 2019년 상반기 ‘패스트트랙 충돌’이 있었고 2018년에는 △김영철 전 북한 통일전선부장 방한 △공영방송 사장 선임 관련 방송법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논란 △드루킹 댓글조작 공방 등 구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을 압박하면서 국회를 올스톱시킨 사례들이 무지 많다. 

그래서 김 원내대표가 ①②을 통해 야당의 보이콧 불능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성준 신임 원내대변인과 김 원내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실 무능 국회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가 근본 원인이고 여기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의제별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정치 문화는 요원하고 오직 상대를 짓밟아야 내가 사는 정치 시스템이 근본적인 무능 국회의 배경이다. 하지만 개헌을 하고 선거법을 뜯어고치는 것은 무척 복잡하고 난해하다. 더구나 집권 중인 민주당이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라 그 작업에 나설 가능성은 난망하다. 오직 4년 임기로 두 번 대통령 할 수 있도록 하는 개헌 말고는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대국민 정치 혐오 정서를 이용해 입법 절차의 효율성부터 꾀하려는 것이다. 

한편, 김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에 대해 “가급적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고 서로 이해되는 상황 속에서 합리적 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직 야당 원내대표가 선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상임위원회를 말하는 것은 협상에 장애가 있을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원구성 협상은 4년 임기 중 2년간 담당할 국회직을 배분하는 것으로 매우 중대한 일이다. 이를테면 △국회의장단 △18개 상설 상임위 △통상 6개 정도 되는 비상설 특별위원회 등을 의석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모범 답안을 피력했지만 주요 상임위원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통합당과의 협상에서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향후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기획재정위원장, 정무위원장, 외교통일위원장, 행정안전위원장, 국토교통위원장 등 민주당이 얼마나 차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