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버텼던 두 사람
왜 통합당은 법을 막았나
과거사법 5월 안 처리 합의
의원회관 단식 농성 중단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2년 반 911일이 지났다. 농성 전에 1인 시위까지 포함하면 8년째다. 드디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기뻐하며 웃었다. 

미래통합당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5월 안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의원회관 지붕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최승우 활동가가 농성을 풀고 내려와서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한종선 대표(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와 최승우 활동가는 로테이션으로 농성장을 지켰다. 폭염과 맹추위에도 농성장 텐트 하나로 버텼다. 의원회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사우나에서 씻었다. 농성 소식이 널리 알려져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기초생활수급비로 고단한 투쟁을 이어갔다.

30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이슈가 무척 많았지만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의 움직임은 더뎠다. 2018년 선거권 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이 노숙농성을 하는 것도 지켜봤고, 정문 앞 의무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현장에서 수많은 1인 시위자들이 오가는 것도 지켜봤다. 

나 역시 국회를 출입할 때마다 농성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무게있게 취재를 하고 4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농성장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죄송스러웠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왜 나는 더 열심히, 더 전투적으로, 더 끈질기게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정치인들에게 따져 묻고 기사로 다루지 못 했을까.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사실 굵직한 주요 매체들이 형제복지원 사건과 농성 소식을 비중있게 조명했음에도 법안 통과의 벽은 높았다.

최 활동가는 견뎌내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고, 유튜버가 됐고, 연극 무대에 섰고,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다. 인간적 존엄을 일깨우기 위해 자기 내면을 수양하고 또 수양했다. 한 대표는 책(살아남은 아이: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도 썼다. 

4.15 총선 직전 3월말이었던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던 최 활동가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평소 자주 가던 국회 근처 단골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가 아니라서 녹취를 하지 않았지만 그때 최 활동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효영아. 나는 오히려 농성 오래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참 좋아. 깊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이유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버티는 일이 배로 힘들다. 최 활동가는 끝까지 버텨내기 위해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 같았다. 인생의 황금기에 아무 법적 근거없이 연행됐고, 갇혔고, 온갖 폭력에 시달렸다. 홧병이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전국민이 전두환씨를 지탄하고 있고 그런 독재자가 집권하던 시절 자행됐던 국가 폭력이다. 하지만 2020년 5월7일에서야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니고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

그동안 구 자유한국당은 △배상과 보상 △진상조사 대상 사건의 역사적 시기와 요건 △공론화 미흡 △조사 기간 △과거사위원회 위원 구성 △위원 추천권 배분 등을 하나씩 내세워가며 법안 처리를 방해해왔다. 방해했다고 규정할 만한 이유가 있다. 

별도로 발의된 특별법(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을 통과시켜달라는 게 아니었고, 과거사법에 배보상 문제를 포함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2005년 12월에 출범해서 4년간 활동하고 해산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하는 아주 초보적인 내용의 과거사법을 통과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가족 곽정례씨 등이 통합당 의원들을 찾아가 절규했지만 외면됐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채익(간사)·윤재옥 통합당 의원이 주요 플레이어였다. 

의원회관 지붕 위에 올라간 최 활동가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총선에서 폭망한 뒤에도 통합당 의원들은 과거사법에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최 활동가는 어린이날 5월5일 국회 의원회관 출입구 지붕 위에 올라갔다. 두 번째 고공단식 농성이었다. 이미 최 활동가는 작년 11월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고 있을 때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 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건강 위험 때문에 단식을 중단하고 내려왔지만 이번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래서 의원들이 드나드는 의원회관을 택했다. 

도대체 왜 과거사법만 막았던 걸까. 

작년 내내 통합당 의원들은 같은 행안위 소관이었던 소방관 국가직화법과 함께 두 법안을 세트로 정해놓고 여당에 비협조적이었다. 행안위에 묶여있던 두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의지로 통합당과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됐고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러나 통합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버티고 있는지라 본회의 상정은 요원해보였다. 통합당은 11월에 이르러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국가직화법이 통과되는 것에 협조했다.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콕 집어서 과거사법만 잡아뒀다. 그 이유가 뭘까.

작년 12월초 최 활동가는 내게 “(울산 남구갑을 지역구로 둔 이채익 의원에 대해) 울산 쪽 출신이니까 막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도무지 한국당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게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황이 있다. 민주화 이후 1989년 故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울산 작업장 특수감금 건에 대해 당시 울산 지역 검경이 무마시켰다는 짙은 의심이 있다. 사실 전두환 정부가 집권할 때 자행된 모든 형제복지원 범죄들이 법적 단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살인(500여명), 폭행, 고문, 감금 등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불릴 정도인데 유야무야 넘어갔다. 

2년 반의 외침에 모르쇠였던 통합당 의원들이 김무성 통합당 의원의 움직임에 바로 반응했다. 하루도 안 걸렸다. 그래서 씁쓸했다. 김 의원은 바로 전화를 돌려서 실력행사를 보여줬다.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국회를 떠나는 사람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통합당은 △사건 조사기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 △기간 연장 1년으로 제한 △과거사위 소속 위원 15명에서 9명으로 축소 △추천위원 대통령 몫 4명에서 1명으로 축소 등 끝까지 진상규명이 덜 되도록 꼼꼼하게 관철시켰다.

이 의원은 “통합당이 과거사법에 반대한 것이 아니다.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 한 부분이 있었다. 홍익표 의원(민주당 행안위 간사)이 통크게 전향적 입장을 보여 낭보를 전할 수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본회의에서 통과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 활동가는 지붕에서 내려왔고 김 의원과 기쁨의 포옹을 했지만 아직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이 아니다. 20대 국회의 임기는 5월 마지막 날까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최 활동가는 “아직 기쁘다는 표현은 못 하겠다. 김 의원이 기여를 해주고 여야 간사 간 합의를 했으니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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