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일하는 국회 추진
과감한 협조를 하되 소수 야당 배려해야
말만 과감한 협조?
김종인 비대위 밀겠단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래통합당 신임 원내지도부에 오른 주호영 원내대표(5선)가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절차 효율화 방침에 대해 과감하게 협조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을 자조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속시원히 확답을 해주지 않았다.

주 원내대표는 8일 개최된 원내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선인 총회에서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이종배 정책위의장(3선)과 함께 선출됐다. 재석 84명 중 59표를 받았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14시15분 즈음 주 원내대표는 국회 본청 의원총회장에서 원내대표실로 자리를 옮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의석수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반대없이 처리에 협조해주지 않는 모양새를 취했다. (사진=연합뉴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상생과 협치로서 야당을 설득하는 게 훨씬 빠르다는 점을 여당에 간곡히 말씀드리고 저희들도 현실적인 의석수를 인정하고 국정에 협조할 것은 과감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수자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국가 경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여당이 명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날(7일) 당선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차원의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일하는 국회”를 바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회가 처리해야 할 현안이 많기 때문에 일하는 국회는 저희들도 찬성이다. 다만 언제 본회의를 여는지 이런 현실 운영은 문제점을 확인하고 답을 내겠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에 대한 인물 평가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협상 경험도 많고 정책위의장도 겪었기 때문에 아주 잘 할 것이라고 보고 상생과 협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과감한 협조는 시작부터 ‘신중 모드’에 막혀 있는 모양새다.

기자회견 이후 본회의가 열렸는데 통합당 의원들은 집단 불참했다. 국민 개헌 발의(유권자 100만명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개헌안 발의 가능)를 가능케 하는 개헌안 처리 원포인트 본회의가 소집된 것인데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개헌안 처리를 위한 국회 투표는 불성립 처리로 허무하게 끝났다. 진보적 시민사회에서 내용을 성안하고 거기에 여야 불문하고 100명 넘는 국회의원이 서명을 했지만 심재철 전 통합당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 와중에 무슨 개헌안 처리를 하냐면서 보이콧 방침을 천명했다. 

참여해서 반대표를 행사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무산시켰다. 문희상 국회의장 입장에서 개헌안 처리 시한에 따라 무조건 이날 본회의를 열 수밖에 없었는데 통합당은 내용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면 반대한다고 피력하지 않고 그저 일방성을 문제삼아 또 일을 그르치도록 만들었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통합당의 명분없는 반대 모드가 지속되는 것이다.

민주당의 일하는 국회 공약은 ①매월 임시국회 소집 의무화 ②자동으로 상임위원회 개최 ③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④국민입법청구법률안(3개월 내 30만명 이상 온라인 지지 서명) ⑤국회의원 불출석 제재 ⑤국민소환제 등이 있다. 공약엔 없지만 민주당은 ⑥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 기간 단축도 밀고 있다. 

탄핵과 조기 대선 이후 2017년부터 2020년 총선 직전까지 구 자유한국당은 강성 야당의 본보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여권에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삭발, 단식, 농성, 시간끌기, 장외투쟁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국회 보이콧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보수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며 강하게 저항한 바 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다. 

투쟁의 정당성이 다수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통합당은 연달아 큰 선거에서 두 번이나 참패했으니 결과적으로 투쟁의 명분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으로 판별됐다.

원포인트 개헌안 말고도 3주 남은 20대 국회 임기 동안 본회의를 열어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꽤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빨리 대응하기 위해 국회가 협조해줘야 할 것들은 추경(추가경정예산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민주당과 문 의장은 통합당에 하루빨리 본회의를 열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주 원내대표는 “현안들 챙겨보고 필요성 여부를 당내에서 논의하겠다. 30일부터 시작되는 21대 원내대표이고 29일까지는 사실 20대 의원들 경우인데 내가 대표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바로 전날 여야 행정안전위원회 간사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당의 의견을 한 번 정리해 보겠다. 기존 상임위 간사간 협의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역시나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2년 반 동안 국회 노숙농성을 하다가 참지 못 하고 의원회관 지붕에 올라가서 고공 단식농성을 단행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촉구했던 것이 과거사법 처리다. 전날 다행히도 김무성 통합당 의원의 중재로 20대 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약속한 과거사법이지만 주 원내대표는 “당의 의견 정리”라는 워딩을 먼저 꺼냈다.  

주 원내대표는 ③에 대해 “우리 국회를 통과하는 법안 중 1년에 위헌 법률이 10건 넘는 걸로 아는데 체계자구 심사권까지 없애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만 체계자구 심사권이 법안 지연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양시론의 관점을 표했다. 

한편, 주 원내대표는 공식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에 대해 “가급적 빠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 원내대표는 당권 지도부가 공석인 상황에서 당대표 권한대행을 겸직하게 됐는데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해 “당헌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당내 의견을 수렴하고 비대위원장 내정자(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와도 상의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방안을 찾겠다”며 원론적인 발언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앞서 정견 발표를 통해 사실상 김종인 비대위를 안착시키는 것에 힘쓸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8월까지 3개월 반짜리 비대위원장 임기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당헌 부칙 개정(8월31일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 구성하도록 규정)을 추진해 김 전 위원장의 수락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다만 당선인 총회를 통해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특히 주 원내대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론에 대해 명확히 반대 의사를 천명했기 때문에 혹시 당선인 총회에서 그쪽으로 방향이 나오더라도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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