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뼈때리기
감옥가는가 안 가는가
작량감경과 집행유예
재상고와 재파기환송
혹시 징역 2년6개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017년 2월17일 새벽 4시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보다 권력이 센 삼성 총수가 구속됐다. 전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청구한 2차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그 이후의 법적 과정은 아래와 같다. 

①1심 ‘징역 5년’(2017년 8월25일) 
②2심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 석방(2018년 2월5일) 
③3심 ‘2심 판결 부정하고 파기환송’(2019년 8월29일) 
④파기환송심(2019년 10월25일~)

김남근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이미 다 결정을 내려준 것이고 양형만 문제가 있다. 그래서 (파기환송심) 재판을 이렇게 오래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확정한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은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상호 인식 △대가성 인정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 인정 △총 뇌물액 86억원(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정유라의 말 3마리 34억원+코어스포츠 승마 용역대금 36억원) 등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정형식 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가 내린 ②을 산산조각냈다. 훨씬 더 많은 뇌물액을 인정했고, 묵시적 청탁과 경영권 승계라는 과제가 있었다는 점을 공인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면 김 대법원장이 정 판사에 대해 옷을 벗으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④을 맡고 있는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1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 범위 안에서 판결을 내려야 한다. 

1심(지방법원)과 2심(고등법원)이 공소사실의 유무죄 여부와 적절한 양형을 판단한다면 3심(대법원)은 1·2심 판결에 대해 법률 적용이 적합하게 이뤄졌는지 판결 자체에 대해서 다시 판정한다. 그래서 대법원의 선고는 ‘상고를 기각’하거나 ‘원심을 확정’하거나 ‘파기환송’시킨다.

당연히 하급심은 대법원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 법원조직법 8조에 따르면 “상급 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돼 있다. 물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 대법원의 기속력을 다시 깰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사실관계나 유력한 증거와 같은 것들이 발견돼야 한다. 그럼에도 파기환송심은 십중팔구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맞게 선고를 내린다.

대법원이 확증한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에 적합한 형량은 어느정도로 보면 될까. 작년 12월6일 열린 ④ 세 번째 공판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10년8개월~16년5개월 사이의 형량이 적절하다”고 의견서를 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3조 1항 1호에 따르면 뇌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준영 판사는 작년 10월25일 열린 ④ 첫 공판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며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밑밥을 까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정준영 판사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같은 경영 혁신 노력 △준법감시제도 도입 △재벌체제의 부작용 해소 등을 주문했다. 반성하고, 사과하고, 삼성이란 기업이 거듭나는 장치를 만들고 노력하면 좋은 선고를 내려주기라도 할 것 같은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정준영 판사의 주문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감시위)를 만들고 위원장에 김지형 전 대법관을 선임했다. 

이후 정준영 판사는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의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노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변호사는 “반성한다고 사과한다고 집행유예면 실형받을 사람이 없을 것 아닌가. 그저 양형의 한 요소”라고 일축했지만 감시위는 3월11일 이 부회장을 비롯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사에 요구서를 보내 △경영권 승계 △노동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에 대한 변화와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며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 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 (삼성의)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이 모든 것은 저희의 부족함 때문이다. 나의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특검은 정준영 판사가 이끄는 ④ 재판부가 저질러진 범죄사실이 아닌 추후 행동 여부를 지나치게 양형 요소로 고려한다며 기피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특검은 대법원에 재항고 했지만 법조계에서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기피 신청을 기각한 서울고법 형사3부는 결정문을 통해 “뇌물과 횡령죄의 양형 기준에 진지한 반성이 양형 요소로 규정돼 있으니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는 등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 이를 여러 양형 사유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고 사과나 반성 등은 형량 고려의 원 오브 뎀일 뿐이지만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이 부회장의 사회적 반성 행보가 아주 결정적인 양형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준법감시위원회 이것은 사실상 사기이고 해체가 돼야 하는 게 맞다”며 “이걸 면죄부로 삼아서 집행유예를 내린다고 하면 법원과 준법감시위 둘 다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명을 씻기 힘들게 된다. 김지형 전 대법관도 책임져야 한다. (위원장직 제안을) 거절하거나 진작에 사퇴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전 대법관은 전혀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고 현직에 있을 때도 이건희 회장 불법 승계 관련해서 재판(2009년 이 회장과 삼성 고위급 인사 8명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받았을 때 무죄가 됐는데 김 전 대법관이 그때 무죄 취지로 의견을 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 피해자 모임이나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실형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6일과 7일 삼성의 광고권에 의존하는 수많은 언론에는 [이 부회장 “경영승계와 무노조 경영 없다”]는 식의 따옴표 보도가 쏟아졌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이 부회장이 받을 법적 처벌의 하한선은 징역 5년이다. 형법 53조·62조에 따라 판사는 정상참작의 요소가 있을 경우 형의 절반까지 깎아줄 수 있고(작량감경), 징역 3년 이하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준영 부장판사가 작량감경과 집행유예라는 두 번의 조치를 취해주면 이 부회장은 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해주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우니 명분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고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감시위를 만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류 변호사는 “(뇌물죄 사건의) 케이스마다 다르긴 한데 이재용 사건 정도의 사이즈라면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실형이 나온다. 도저히 집행유예 나올 건은 아니”라고 말했고 조애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뇌물죄는 입증이 어렵지만 입증될 경우 무겁게 처벌된다. 이재용의 경우에는 액수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높게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정준영 판사가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⑤대법원 재상고심
⑥재파기환송심

3년 넘게 이 부회장과 법적 공방을 벌여온 특검이 결과를 그냥 받아들일리가 없다. 대법원에 재상고를 할 것이다. 그러면 대법원이 이전 3심에서 분명 명확하게 선고 범위를 정해서 파기환송시켰는데 다시 사건이 올라온 것에 대해 또 다시 제대로 판결하라고 파기환송을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조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통 대법원으로부터 파기환송을 받으면 그 취지에 구속되어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도 재상고를 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할 수가 없다. 대법원의 판결이 최종심인데다 거기에 취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면서도 “만약 그런 경우는 상정해볼 수 있는데 예컨대 살인 사건인데 증거관계가 새로 발견됐다고 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조사가 안 돼 있거나 증거가 불명확했다면 이것에 대해 다르게 판단을 해볼 수는 있다”고 정리했다.

즉 ④이 대법원의 취지를 무시하고 다른 판결을 내릴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기 때문에 공소제기 주체인 검찰이 재상고를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파기환송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새로운 증거가 나오는 등 대법원의 오더와 달리 판결할 명분이 명확해야 한다. 

류 변호사는 “(대법원이 다시) 파기환송 내릴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진 않다고 보이지만 다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단비 원광대 로스쿨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두 번 파기환송을) 보낼 수도 있다. 자기들이 결정한 것을 고등법원이 안 따라주는 것이니까. 대법원이 어떤 취지로 파기환송시키면 고등법원은 대개 그 취지를 따르는데 사실 (법적으로) 따라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따른다. 또 올리고 또 파기환송하는 것은 되게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말 ⑤⑥이 가능할 수 있을까.

김 변호사는 “양형은 상고의 이유가 안 되니까. (여러 공소사실들 중에) 일부 무죄가 나오면 상고 이유가 되겠지만 양형 문제로 상고를 해도 (대법원에서) 기각될 것”이라며 “(만약 상고가 됐을 때 다시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보낼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 대법원과 달리 일부를 뭐 유죄로 하라는 것을 무죄로 했다든가. 무죄로 하라는 것을 유죄로 했다든가.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양형 이유는 원래 상고 사유가 아니니까”라고 풀어냈다.

다만 김 변호사는 “법이라는 게 그러면 이재용의 일부 특수성이 반영될 수 있어도 법의 보편성이라는 게 있는데 이 정도로 대법원이 범위를 확정시켜놓은 유죄 범위에 있는 죄가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전망했다.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정준영 판사가 가장 낮은 형인 징역 2년6개월로 줄여주는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않고 법정구속시키는 것이다. 

김준우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준영 부장판사 입장에서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생각보다 너무 일이 커지니까. 그냥 (대통령의) 사면권으로 넘기고 일단 감옥가는 걸로. 나는 그렇게 예상한다. 물론 개인 사견이다. 제일 낮은 걸로 선고해서 그렇게 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취임 이후 이 부회장과 9차례 만난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사면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부담감이 너무 커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보냈던 구속기간 1년을 제하고 1년6개월의 옥살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못 받아들여서 재상고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앞서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에 대해 아주 중하게 판결했기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 정말 난해하고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지 정준영 판사의 최종 선고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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