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정치에 나선 여성들
여성의당의 ‘의’
6인 공동대표 체제
정치 교육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여성의당은 창당된지 한 달만에 총선을 치렀지만 20만8697표(0.74%)라는 높은 득표율을 달성했다. 여기에는 원래부터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여성들만의 표만 있는 게 아니다. 

오성화 여성의당 조직국장은 4월28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당사에서 기자와 만나 “당원수에 비해 훨씬 많은 표를 준 분들이 과연 누구일까. 이런 것들을 총선 끝나고 고민하고 있다. 분석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골고루 받았다. 이게 시사하는 게 뭘까”라며 “남성들로부터 그렇게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매번 다른 정당들을 지지했었는데 선거 때마다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남성이지만 이렇게 여성 의제 하나를 정확하게 잡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가겠다고 해서 반가웠다고 말씀주셨다”며 “여성의당 공약 중에 그런 게 있다. 배우자의 출산으로 인한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에 대해 너무 좋았다고 한 남성들이 되게 많았다”고 전했다. 

오성화 조직국장은 남성들의 지지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오성화 조직국장은 남성들의 지지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안티페미로 대표되는 일부 남성들의 집단적인 반감이 언론 지면이나 온라인상에 자주 노출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남성 민심도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존재한다. 
 
오 국장은 “선거하는 과정에서 공보물이 전국에 배포되고 폭발적으로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준 분들이 정말 다양했다”며 “강원도 어느 지역에서 소를 키우고 딸 아이를 가진 아빠인데 너무 놀라웠다. 나는 나를 위해서 내 딸을 위해서 이런 정책을 펴는 당신들을 지지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굉장히 연배가 있는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성들의 호응이 훨씬 뜨거웠다. 

오 국장은 “혼자 살고 아이 키우는 중년 여성인데 일하는 과정에서 동등하게 대우를 못 받는데 여성의당이 내세우는 공약이 반가웠다고 하더라. 그래서 당신이 혼자 아이를 키울 때도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여성의당의 존재 목적이라고 답했고 그런 정책 실현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10대들도 전화를 많이 했다. 비당원이지만 워낙 적극적으로 정책과 전략을 제안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확실히 연배가 어릴수록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많이 주문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실제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자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 국장은 “지금 회계 결산을 하고 있는 과정인데 약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렇게 적은 비용으로 선거를 치를 수가 있는 건가. 정말 평당원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선거를 치렀다. 물론 당직자로 불릴 수 있는 분들의 저임금 노동도 존재하지만 여성의당이 한국사회에서 이제는 정말 필요하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며 “(온라인 선거운동에 주력했지만) 가끔씩 오프라인 선거운동을 나가면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지금 투표권이 없지만 내가 투표권을 얻을 때까지 당을 잘 가꿔서 잘 성장해달라고 했다. 어떤 여성은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전달해주기도 했다. 나와줘서 고맙다고 한 반응들이 많았다”고 풀어냈다. 

이어 “50~60대 여성들 같은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으니 중노년 버전으로 홍보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카드뉴스처럼 분할되지 말고 하나의 페이지로 만들어서 주면 자신이 있는 밴드나 카톡에 보내주겠다고 한 분들도 많았다”며 “어떤 분들은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을 했고 오늘 몇십명 만났고 누구에게 공보물을 전달했다는 활동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일종의 연대감이 있다.

오 국장은 “온라인으로 자기 이야기를 한 분들이나 성평등 집회시위에 나왔던 이런 분들이 면대 면으로 만나게 된 것”이라며 “다들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선거운동 과정에서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한 호응이 있는 반면 강한 반감도 있었다. 선거운동 중 돌멩이 테러를 당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오 국장은 “정치인들은 공인이고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대중성처럼 시민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대목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이라면서도 “여성의당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들은 정치인과 공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이것은 100% 여성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SNS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비판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무조건 까대고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고 혐오하는 반응”이라며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이 많았다. 이런 공격을 당하고 자란 일반 여성들은 남성들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평범한 남성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전달받고 보게 되면 스스로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괴로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여성의당이 등장했다.

오 국장은 “항상 여러 시민단체를 비롯 여성들이 불평등을 겪고 차별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왔는데 그게 부수적인 역할로 치부되어 후순위로 밀렸다. 입법화도 법사위(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 하고 안 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다가 이제는 직접 정치를 해야 겠다는 그런 발언들이 힘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부터 기사화됐던 온라인상에서의 성착취 문제들이 좀 더 대중들에게 적나라하게 탐사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며 “많은 선배 활동가들이 뭔가 기존과 다른 행동을 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혜화역 시위와 강남역 시위에 참여했던 20대 여성들도 바깥에서 시위를 하고 누군가에게 청원하는 수준으로는 해결될 수 없겠다고 깨달았다”고 역설했다.  

결국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한 정당을 만들어야 겠다. 국회의원을 직접 배출해야겠다. 그게 맞다는 확신을 했고 지금의 여성의당이 탄생했다”며 “내가 대안이 되겠다. 여성의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총선에서 여성의당에 대한 지지로 드러난 것 같다”고 강조했다.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명백히 여성을 타겟팅한 여성 혐오 범죄였다.
 
오 국장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당신이 나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 큰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을 비롯해서 더 이상 개별 여성들이 갖고 있던 여러 성추행이나 차별 사례들이 이제는 단순히 피해를 보는 수준이 아니라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것 같다”며 “그게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니라고 받아들였다”고 정리했다. 

이어 “여자로 태어나서 추행을 한 번도 안 겪어본 사람들이 없다고 말한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술자리 성희롱부터 안 겪어본 사람들이 없다”며 “왜 그게 당연히 잘못된 것인데 그 순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그냥 넘어갔는지. 그것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문제이고 때에 따라서는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법적 제재를 가하고 처벌을 해야 한다. 그 외침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고 개인적 외침이 집단적 외침으로 발전해왔고 그것이 어느 순간 정당의 건설로까지 이르렀다”고 결론내렸다. 

오 국장은 “그동안에는 그 역할들을 여성단체들이 정말 열심히 수행했지만 이제는 여성단체의 역할과 함께 정당으로서의 여성의당이 함께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 더 좋은 여건이 됐다”고 강조했다. 

여성의당의 당명에는 깊은 뜻이 있다.

오 국장은 “여성의당의 ‘의’자가 수식어가 아니라 의제할 때 그 의(議)자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이 다양한 연령대에서 발생하는 중심 의제를 갖고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라며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선택할 수 없고 그런 전체적인 것들을 담는 정치 집단으로서의 여성의당이란 권력을 지향하고 터와 그릇을 상징으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오 국장은 선배 여성운동가 그룹과 집회시위에 참여한 젊은 여성들이 만나 여성의당이 창당됐다고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여성의당은 정당 득표율 3%라는 봉쇄조항을 넘지 못 해서 의석을 얻지 못 했다. 하지만 총선에 도전하기 위해 비례대표 후보(이지원·이경옥·박보람·김주희)를 선출하고 함께 선거운동을 이끌어갔던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

오 국장은 “저희가 3월8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했고 2월말에 5개 시도당을 창당했다. 창당 이후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정말 짧았다. 정당 등록증이 3월16일에 나왔는데 어떻게 그 안에 비례대표 후보를 뽑을 수가 있었겠는가?”라며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받고, 공천관리심사위원회를 돌리고, 직접 투표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4명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어 “1번 이지원 후보는 여성학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동안 현장에서의 활동도 많이 하셨다. 한국에 반성매매 반성착취물 전국연대 그룹이 있다. 거기서 성매매반대운동을 하는 여성들을 꾸준히 만나오셨더라. 2번 이경옥 후보는 50대인데 30년 정도 지역에서 은행원으로 살면서 그 당시에는 결혼하면 퇴직해야 했는데 이제는 NGO가 아닌 정치인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포부를 밝히셨다”고 설명했다. 

여성의당은 당내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6명의 공동대표(김은주·윤서연·이지원·원소유·장지유·김진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 국장은 “조직을 어떤 관점에서 운영하는가에 대해서는 최대한 당원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발언권을 제한하지 않는 원칙이 있고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당원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며 “(6명의 공동대표를 뽑을 때) 세대별 대표성은 저희의 지향이었는데 실제 그렇게 뽑힐줄 몰랐다. 가장 많이 표를 받은 7명 중 1명이 사퇴해서 지금 6명이 됐는데. 10대 1명(윤서연), 20대 1명(이지원), 30대 1명(원소유), 40대 2명(장지유·김진아), 50대 1명(김은주), 60대 1명(이성숙)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 당헌에는 7인 이내로 공동대표를 뽑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7인의 공동대표 체제가 타 정당과 좀 다른데 상임대표라는 게 없다. 우리는 다수결의 집단지성으로 가자고 해서 모든 공동대표가 동등하다”며 “이후에 당헌 개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전당대회 준비하는 과정에서 평가해보고 고민할 것 같다. 지금 공동대표들의 임기는 첫 번째 전당대회를 치를 때까지라고 당헌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당은 주거권 특히 1인가구를 위한 주거 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오 국장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갔고 이제는 1인가구로 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미 빠르게 대응해서 모든 배달 음식, 외식 서비스 등 1인 중심으로 많은 상품들이 나와 있다. 이미 증명된 현상을 정책으로 반영해야 한다”며 “의식주 중 식과 의는 어느정도 1인 영역에서 상품으로 충분히 구매하고 누리는 것 같은데 주와 관련된 것은 무엇보다 정부 정책과 연결이 많이 돼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주택 정책은 아직까지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가구를 대상으로 아니면 신혼 부부를 상정해서 짜여진 경우가 많다”며 “가존관계법을 비롯해서 베이스가 1인 기준으로 생활동반자법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한국 제도가 바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허수들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 국장은 “1인가구도 좀 이미지화가 된 게 어떤 젊은층으로 상징되는 것도 좀 있는 것 같다”며 “가구 분포도 분석을 보면 중노년 여성들의 1인가구도 굉장히 많다. 1인가구라고 해서 그게 청년 정책으로만 국한될 수 없다. 청년 혼족이든 독거노인이든 이런 특정 계층으로만 사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거나 청년이 갖고 있는 미숙함의 상징 같은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여성의당은 향후 정치 교육에 힘을 쓸 계획이다.

오 국장은 “지금 통과된 사업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대표단이나 시도당위원장들이 같이 회의를 할 때 이런 고민을 많이 나눴다. 현재 모여있는 당원들부터 시작해서 여성 시민들과 함께 정치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공감과 교육의 과정들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여성의당만의 의회 학교와 정치 학교를 만들어서 2020년 하반기 주요한 사업계획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 “(기존 정당에서 자주 사용하는) 외부영입이라는 그 방법론은 언제든지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성정당의 비례 후보나 공천과정을 보면 말썽이 난다. 여성의당은 그런 부분에서 다르게 접근하려고 한다”며 “결국 여성의당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성 정치활동을 열심히 한 분들이 아니라 혜화역 시위로 상징되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활동가들과 함께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 특성에 맞는 정치인 교육과 학습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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