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휴가·식당폐업에 일 찾아 농촌으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에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에 농번기를 맞은 농촌에 일거리를 찾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 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신종바이러스 코로나19는 도시의 일상 뿐 아니라 농촌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지난 8일 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인근의 고추밭에는 평소 이 마을에서 볼 수 없던 낯선 얼굴들이 여린 고추모를  비닐하우스에서 꺼내 밭으로 옮겨 심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

때마침 내리는 봄비가 재촉이라도 하듯 이들은 고추모를 옮겨심기 바쁘게 고추밭 건너 빈 밭의 두둑에 고구마 순까지 찔러 넣고는 흙투성이의 우의 그대로 황급히 야산으로 달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부슬부슬 가는 봄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사리와 취나물, 두릅, 엄나무순 등을 채취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김성민씨(가명 58세)와 그의 동료들. 그러니까 김성민씨는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에 하늘길이 막히고 승객이 급감하자 25년째 운행 중인 인천공항의 리무진버스를 세워놓고 동료 세 명과 함께 이곳 고향마을로 내려왔다.

다행인 것은 이들은 무급휴가 아닌, 3개월간의 의무 유급휴가. 단. 쉬는 동안 일자리를 얻어 수입이 들어오면 유급은 안 된다는 조건이다. 하루아침에 무급휴가로 내몰리는 직장인에 비하면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김씨는 지난해 한꺼번에 두 딸의 결혼식에 이어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 당첨에 중도금과 잔금을 치러야 할 판이라 눈앞이 아찔하기만 했다.

그와 함께 내려온 동료 박길양(가명)씨도 상황은 마찬가지. 대학생 딸과 혼인을 앞둔 아들에게 전셋집이라도 마련해줘야 할 판에 무급휴가 아닌 유급휴가라고 마냥 안도할 수만은 없는 일. 무슨 일을 해서라도 아들, 며느리에게 방 한 칸은 마련해 줘야 아비로서 체면이 서는 일.

코로나19로 일거리를 찾아 농촌에 들어온 도시인들이 농번기 일손을 돕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코로나19로 일거리를 찾아 농촌에 들어온 도시인들이 농번기 일손을 돕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쏟아지는 실업자에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만 경험했을 뿐. 여기에 평소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아내의 잔소리도 문제였다. 남편의 느닷없는 장기휴가가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지나친 아내의 잔소리는 참기 괴로운 일이었다.

아니, 시시콜콜 아내의 잔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느낀 박씨 역시 코로나19에 민감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평소처럼 아내의 잔소리를 둔감하게 흘려버리지 못 한 박씨가 도피처를 찾던 중 김성민씨가 농촌에 내려가 일거리를 찾겠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이에 박씨가 응했다.

뿐만 아니라 처지가 같은 동료를 불러 세 사람이 부랴부랴 돈을 벌 계획으로 김씨를 따라 그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이 동네 노인들도 올 봄만큼은 논에 양수기 설치며 모내기, 고추심기, 고추밭 둘레의 철조망 두르는 일 등 예년과 달리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좋아했다.

왜 아니겠는가. 이들 모두 농촌 출신이라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논 옆으로 난 도랑에서 양수기로 물을 끌어올리고 밭둑에 비닐을 깔아 고추모를 옮겨 심는 일까지 척척 해내고 있으니.

이날 아침에도 김씨 일행은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이 바삐 움직였지만 마을 노인들이 부탁해온 일들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래도 조금도 피곤할 줄 모르겠다고 김씨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이들 일행은 처음 생각과 달리 무료봉사로 마을 노인들의 일손을 돕고 있다고 했다. 

이 이유에 박씨는 “처음엔 솔직히 돈을 좀 벌려고 따라 내려왔지만 와서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연로하신 어르신들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아무리 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어르신들에게 일당을 받는 것은 불편하다. 시골에서 평생 일만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고, 그래서 여기 있는 만큼은 무보수로 동네어르신들 일손을 도울 생각이다.”라고 또 웃었다.

그들을 마을로 동반한 김씨 역시도 “나야 이동네 분들이 대부분 친척 어르신들이라 무보수가 당연하고 어렵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은 생판 남인데 그저 고맙다. 어느새 이 두 사람이 마을 어르신들과 깊은 정이 든 것 같다.

억지로 돈을 쥐어 주시려고 하고 안 받으려고 하는 모습 보면서 좀 울컥했다." 며 “어르신들이 언제 서울로 올라가느냐고 물어 오시는데 그때마다 얼굴에 좀 불안한 기색이 보여서 좀 걱정스럽다. 하루빨리 일자리를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들은 하시는데 아무래도 우리랑 함께 있고 싶으신 모양이다.”라고 장난스런 웃음이었다.

코로나 여파에 일거리를 찾아 농촌으로 들어온 이는 또 있었다. 최미숙(가명 56세)씨, 이혼 후 전주에서 15년째 식당운영으로 두 아들을 키워 낸 김 씨가 식당을 접은 건 지난 4월. 대학가 인근에 있던 김씨의 식당 역시 코로나19는 피해 갈수 없었던 것.

최씨 인근의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 바람에 드문드문 찾아오던 손님들마저 아예 끊겨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건 설명할 것도 없고. 한달 내내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일자리를 없었다.

이런 상황에 주변의 지인으로 부터 농촌에 일손이 필요할 테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조언에 최씨는 일자리를 찾아 물어물어 이 농촌 마을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마침 구절초 축제로 유명한 이곳 테마공원에 일자리를 모집한다는 광고지를 보게 된 것도 계기였고.

하지만 농촌이라고 만만히 봤던 게 문제였을까. 벌써 채용이 끝났다며 죄송하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도시보다는 농촌이 일거리를 찾기는 수월하다는 생각에 매일 차를 운전해 임실까지 한 바퀴 도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말 일거리가 주어져 하루 일당 5만원에서 7만원까지 벌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최씨는 이날도 아침 일찍 전주를 떠나 임실까지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이날은 비가 오는 탓인지 아니면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이 대처에서 들어온 탓인지 일거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한편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2020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56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47만6000명 감소했다. 이는 1999년 2월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 3월 취업자 수가 2010년 1월 이후 처음 감소 전환한 데 이어 4월에는 감소 폭이 배 이상 커졌다.

특히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4만5000명 감소한 365만3000명이다. 소비활동도 큰 폭으로 위축했다. 업종별로는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가 21만2000명, 교육서비스업은 13만명 줄어들었다.

각각 통계를 개편한 2014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7만9000명 줄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10만7000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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