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희생과 공동체정신
유토피아
우리 모두의 것
진상규명
왜곡과 폄훼
대통령으로서 5.18 기념식
헌법 전문 수록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40년 전 광주는 그야말로 외부의 적에 둘러쌓인 무법지대였지만 공동체가 살아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죽음의 위기를 극복했고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무자비함에 맞서싸웠다.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속 대한민국의 모습과 닮아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지만 단 한 건의 약탈이나 절도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없는 가게에 돈을 놓고 물건을 가져갔다.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있다”며 “코로나 극복에서 세계의 모범이 되는 저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병상이 부족해 애태우던 대구를 위해 광주가 가장 먼저 병상을 마련했고 대구 확진자들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월 어머니들은 대구 의료진의 헌신에 정성으로 마련한 주먹밥 도시락으로 어려움을 나눴다”며 “오월 정신은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며 지금도 살아있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정신과 코로나 극복을 연관지었다. (사진=연합뉴스)

40년 전 광주는 공자가 상상한 ‘대동사회’이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같았다. 특히 옛 전남도청(현재 전남 무안군에 위치) 앞에 있었던 분수대 광장은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망월동(운정동) 국립묘지에서 기념식을 열어왔던 과거와 달리 40주년인 올해 최초로 옛 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행사가 개최됐다.

문 대통령은 “5.18 항쟁 기간(1980년 5월18일~5월27일) 동안 광장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방이었고 용기를 나누는 항쟁의 지도부였다”며 “우리는 광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동 세상을 봤다. 직접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주먹밥을 나누고 부상자들을 돌보고 피가 부족하면 기꺼이 헌혈에 나섰다. 독재 권력과 다른 우리의 이웃들을 만났고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봤다”고 묘사했다. 

광주의 저력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을 몰아냈던 1987년 ‘6월 항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문 대통령은 “도청 앞 광장에 흩뿌려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난 40년 전국의 광장으로 퍼져나가 서로의 손을 맞잡게 했다. 드디어 5월 광주는 전국으로 확장되었고 열사들이 꿈꾸었던 내일이 우리의 오늘이 됐다”며 “우리 국민들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4.19 혁명(1960년)과 부마민주항쟁(1979년),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촛불혁명(2016년~2017년)까지 민주주의의 거대한 물줄기를 헤쳐왔다”고 정리했다.

그래서 5.18은 광주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 청년이 말했다. 5.18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아직 5.18 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 한 가정의 부모가 되고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됐다. 그날 광주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광주를 겪었다. 오월 정신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오월 정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미래를 열어가는 청년들에게 용기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재발견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완료돼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마무리 된 기초적인 진상규명의 수준을 넘어 추가적인 의혹사항들을 풀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발포 명령자 규명,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 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5.18 행방불명자 소재 파악 △추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상 및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도 소홀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광주 MBC 인터뷰를 통해 5.18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17일 방송된 광주 MBC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 인터뷰에서 “원래 이런 과거사에 대한 진상조사는 국회가 특별법에 의해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조사되는 것이 관례인데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는 그것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그렇게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하기 이전에 국방부 자체 내에 5.18 특조위 구성을 해서 스스로 진상 조사를 하도록 했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특조위에서는 △헬기 사격 사실 △집단 성폭행과 성고문 등이 추가적으로 밝혀졌다.

허나 문 대통령은 “여전히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환기했다. 

작년 2월 구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김진태·김순례·이종명)의 5.18 관련 망언이 도마에 올랐고 여전히 극우 세력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왜곡과 폄훼는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방송에서 “민주주의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런 여러 가지 폄훼에 대해서까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내는 것도 그런 폄훼나 왜곡을 더 이상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말 우리 정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 그 추가적인 진실 규명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밝혀진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광주 5.18 그런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말하자면 결정적인 상징으로서 존중받기에 충분하다”며 “법적으로 다 정리된 사안을 지금까지도 왜곡하고 폄훼하는 발언들이 있고 그것을 일부 정치권에서조차도 그런 주장들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막 확대 재생산시켜지는 일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5.18 기념식에 직접 참석했다(2017년, 2019년, 2020년).

문 대통령은 방송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그 기념식에 대통령들이 참석하지도 않고(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딱 한 번 참석) 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못 하게 해서 유족들이 따로 기념 행사를 가지는 그런 식으로 5.18 그 기념식이 조금 폄하된다할까 하는 것이 참으로 분노스러웠다”며 “실제로 내가 야당 대표를 할 때 그 공식 기념식에 정식으로 초청받아서 참석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광주지방보훈청장의 경과보고, 국무총리의 기념사, 그것을 듣고 그 속에 정말 5.18 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존중과 진심 이런 부분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은 그런 사실들이 굉장히 좀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사진=연합뉴스)
기념식의 전체적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5.18에 대한 철학은 헌법 전문 수록으로 귀결된다.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실제 개헌안을 발의한 바도 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2018년 나는 5.18 민주 이념의 계승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한 광주시의 결정이 매우 뜻깊다”고 강조했다.

방송에서는 “(헌법 전문에 명시돼 있는) 4.19의 혁명만으로 민주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4.19혁명 이후에 아주 장기간에 어찌 보면 더 본격적인 군사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4.19운동만 가지고는 민주화운동의 어떤 이념의 계승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며 “5.18 민주운동과 6월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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