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들 노숙농성 925일만에
과거사법 통과
미래통합당의 방해
김무성 의원의 역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0일 17시25분 드디어 과거사법(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와 한종선씨가 2017년 11월8일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925일 2년 반만이다. 

최씨는 작년 11월(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과 올해 5월(국회 의원회관 입구 지붕) 과거사법 처리 촉구를 위해 두 번 고공 단식농성을 단행했고 그로 인해 국회 출입 정지 6개월 징계 조치가 걸렸다. 그래서 본회의장에 출입할 수 없었다. 대신 최씨는 17시부터 본청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본회의장 현장에서 지켜본 한씨의 전화로 최종 의결 소식을 접했다.  

김무성 의원과 최승우씨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홍익표·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무성·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 다른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본청에서 나와 최씨와 합류했고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씨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크게 웃으면서 “드디어 집에서 잘 수 있다”고 외쳤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 시민사회 연대체는 21일 14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장 해단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에 통과된 과거사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부 시기 2006년 출범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하는 것이다.

법안의 골자는 △일제강점기 이후 군사독재 정권 통치 기간(1945년~1987년)에 이뤄진 국가 폭력 사건 진상조사 △요건은 민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 사유로 제한 △조사 기간 3년+연장 시한 1년으로 최대 4년 △진화위 위원 정원은 9명으로 대통령 1명+여당 4명+야당 4명씩 추천한 인사로 구성 △국가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청문회 비공개 진행 △배상과 보상 조항 통합당의 요구로 삭제 등이다.

피해자들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기존 발의안 보다 많은 부분에서 미진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구성 위원의 수가 15명에서 9명으로 축소됐고, 과거사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청문회를 공개할 수 없도록 했고, 조사 기간 역시 최대 6년에서 4년으로 줄었다. 2기 진화위 활동이 과거사의 완전한 정리를 목표로 출범한다는 점에서 위원회의 규모나 활동 기간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진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상 강구 조항이 빠지더라도 진상규명된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을 제대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점을 과거사법이 확인해줄 필요성이 있었다”면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익표 의원, 진선미 의원, 이채익 의원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과거 독재 정권에 의해 삶이 짓밟혔음에도 통합당은 배보상 문제를 예산이 과다 소요된다면서 반대해왔다. 통합당은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배상과 보상 △진상조사 대상 사건의 역사적 시기와 요건 △공론화 미흡 △조사 기간 △진화위 위원 구성 △위원 추천권 배분 △2019년 10월 민주당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일방 처리 등등 온갖 명분을 하나씩 내세워가며 법안 처리를 방해해왔다. 

정말 씁쓸하게도 통합당은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오랜 절규에는 외면했지만 같은 당 유력 정치인의 요구에는 발 빠르게 반응했다. 김무성 의원은 의원회관 지붕에 올라간 최씨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실력행사를 보여줬다. 주호영 원내대표, 여상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이채익 행안위 간사 등에게 전화를 걸어 확답을 받아냈고 합의 처리를 이끌어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까지 진상규명이 덜 이뤄지도록 행안위 채널에서 차포를 다 떼고 법안을 헐겁게 만들었다.

짧은 기간에 최씨와 관계가 돈독해진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국회의원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 해서 마음이 좀 찝찝했는데 오늘 이 법이 잘 통과돼 가지고 마음의 위안이 된다. 이번에는 3년 안에 (진화위 진상조사 활동을) 완전히 다 해가지고 다시 연장이 안 되도록 위원회 활동을 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별도의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진선미 의원은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이번에도 통과 못 시킬까봐 또 희망고문 할까봐 마음 조렸는데. 김무성 대표가 나서주시고 이채익 간사, 홍익표 간사 많은 분들이 서로 협력해서 법이 통과돼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아까 (몇몇 의원들이 표결에서) 기권했다고 하는데 배보상이 빠졌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의원들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사법은 재석 171명 중 찬성 162표, 반대 1표, 기권 8표로 통과됐다.

진 의원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국가의 품격은 어려운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가 기준이 된다. 이번에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행안위 간사로서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홍익표 의원은 “기쁘기도 하지만 훨씬 마음이 무겁다. 과거사법의 통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래된 역사를 복원해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단순히 법 하나로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미비한 점을 보완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어 “너무 늦어서 죄송하고 송구하다”고 고백했다. 

홍 의원은 기자와 만나 구체적으로 21대 국회에서 과거사법 추가 보완이나 별도의 특별법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좀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다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종선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씨는 기자회견 진행을 도맡아서 발언권을 배분했고 맨 마지막에 “지금까지 여야의 대립이 너무 국민들에게 부각이 됐는데 20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형제복지원 과거사법이 통과됐다는 것은 여야의 협치, 협력, 상생이 이뤄졌다고 본다”며 “21대에는 더더욱 상생과 협력과 협치가 잘 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씨는 “국회에서 10년 정도 피해 당사자가 활동해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힘든 과정도 많았다. 이렇게 힘내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저희들 뒤에 수많은 피해자 단체가 있었고 말 못 할 아픈 사연을 가진 분들이 너무 많았다”며 “앞에 서서 누군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픔까지 감수해야 했다. 나도 많이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죽고 싶었던 심정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같이 함께 했던 최승우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과 버텼고 어깨동무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풀어냈다.

이어 “또 한 가지는 한 때는 부랑인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저희를 부랑인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니 죄를 짓지 않은 이상 잡아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져준 시민들에게 너무 감사한다”며 “시민들, 단체들, 국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힘써줬던 언론 관계자들이 저희들 편에 서서 열심히 취재해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여기까지가 아니라 이 법안 통과로 명예 회복을 하고 진상규명을 통해서 꿋꿋하게 우리가 건강하게 죽는 날까지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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