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 시인
박종민 수필가/ 시인

[중앙뉴스=박종민] 웰빙이란 신조어가 탄생 된지 불과 십 수 년 남짓이다. 웰빙이란 몸 마음건강을 위한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것이다. 그러려면 필수되는 게 금전적이나 시간적으로 모두 허용돼야 한다.

시간은 있으나 돈이 받쳐주질 못하면 못하는 것이고 돈은 넉넉하나 시간이 허락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 더 보탠다면 돈 있고 시간도 많이 있는데 육체적으로 따라주질 못하게 몸이 아프다든지 기동하기가 불편하고 불가하면 해내지 못 하는 게 웰빙인 것이다.

웰다잉 역시 신조어로서 웰빙이 한바탕 휩쓸고 가면서 생겨난 말이다. 즉, 멋진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죽어감에 있어 멋진 죽음, 아름다운 죽음이 있을까? 정황상으론 성립불가다.

그러나 한 인생의 일생을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인간으로서 세상과의 작별하는 즈음이며 순간이니 보다 특별하고 가치 있게 색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하자는 거다. 슬픔과 아픔으로 얼룩진 죽음보다는 아름다운 죽음과 멋진 죽음을 만들어 갈 수는 있다고 하는 데에 진정한 웰다잉이 자리하고 있다.

위의 두 낱말이 성립된 배경을 차분히 성찰해 본다면 웰빙과 웰다잉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먼저 웰빙은 건강한 몸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는 것에서 출발해 명경명소들을 찾아가 보고 느껴 즐기고 만끽하면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자기 한 몸을 잘 치송하여 건강한 육신을 유지해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웰다잉은 직면한 죽음 앞에서 느끼는 공포고충과 아픔슬픔에 치달은 영혼과 육신을 덜 슬프고 덜 아프게 하며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러면서 곱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인생마지막 순간 고결함의 조성정황이다.

일생을 숨 가쁘게 살아온 한 인간 인생으로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몸과 마음이 그 얼마나 아프고 시리며 슬프고 막막하랴. 희로애락의 정감을 가진 인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프고 아리며 시린 이별의 슬픔만을 갖기보단 기꺼이 순수하고 당당하게 고결한 마지막을 마지하란 얘기다.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죽음 앞에 몸과 마음이 아프고 슬플 수밖엔 없는데도 영혼만은 흔들리질 않게 고요하며 잔잔하며 숙연하게 하란 얘기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아무나 실행하기 어려운 한 차원 더 높은 고차원의 영험(靈驗)속 세계이리라 싶다.

인간의육신은 생체학적으로 볼 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때엔 영혼과 육체는 하나요, 한 덩어리로 뭉쳐진 완전한 일체의 묶음이다. 살아있는 생(生)이 사(死)로 바뀌는 죽음에서야만이 비로소 따로 분리된다.

분리된 육신은 썩어 땅 속에 접합하여 소멸된다. 반면 분리된 영혼은 불가해하기만 한 무한의 공간과 영원 속으로 훨훨 날아 잠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적 철학적 이론에 근거를 뒀다할까?

이 같은 과정은 앞서 언급한 웰다잉의 이전단계이다. 인간에게 웰다잉이란 것은 아주 소중하며 고귀 할 수밖엔 없다는 진실과 진리에 도달된다.

웰빙과 웰다잉은 인간이 생에서 사로 이어지는 통속적 과정의 영혼과 육신이 한물로 안정을 찾게 하는 상관관계임이다. 그러므로 잘 먹고 놀며 건강하고 편안하게 제대로 몸 관리한다고 하는 웰빙이야말로 반드시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감하는 웰다잉의 전제가 돼야한다.

육신 앞에 마지막 맞닿은 웰다잉은 그만큼 중대한 순간인 것이다. 어떤 후회나 미련도 모두 다 잊고 버리면서 순수하고 조용하고 고요하게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마무리 하는 삶의 근엄하면서도 장엄한 인생의 마지막순간인 것이다. 멋진 인생의 종점을 만들어 내게 하는 웰다잉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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