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의 제안
전두환과 노태우 사례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쏘아올렸다. 대놓고 사면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라며 대통령의 결정에 공을 넘겼지만 사면을 해도 되는 시기라는 점을 환기했다.

문 의장은 21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권 초기에는 적폐청산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시종일관 적폐청산만 주장하면 정치 보복의 연장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21대 국회는 만약 누가 건의할 용의가 있다면 과감히 통합의 관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그중에 물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놓칠수록 의미가 없게 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으로 막을 내린 보수정권 10년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고 각 정부부처에 별도의 조직을 꾸렸다. 이를 통해 수많은 혐의들을 발견했고 공개적으로 검찰에 넘겨 수사가 진행되도록 했다. 일련의 적폐청산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법 처리로 상징화됐다. 

문희상 의장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띄웠다. (사진=연합뉴스)

문 의장은 구체적인 기자들의 질문에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그걸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민정수석 때의 태도 등 그분의 성격을 미뤄 짐작건대 아마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면해도 될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임기 후반기인데다 총선까지 압승했으니 포용의 손길을 내밀어달라는 것이다. 다만 논란이 될 것을 예상했는지 문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정치인 사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사족으로 붙였다.

모양새만 보면 1997년 차기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故 김대중 대통령이 故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면을 제안했던 것과 유사하다. 정치 은퇴를 앞둔 문 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을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임기 말이었던 김영상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을 받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사면을 단행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 횡령 관련 4건 △삼성 뇌물 관련 1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령 2건 △공직 대가 뇌물 수수 2건 등으로 2심 결과(2020년 2월19일) 징역 17년+벌금 130억원+추징금 57억8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 전 대통령 측은 2심 재판부의 보석 취소 및 구속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재항고 신청을 냈고 2월25일 구속집행이 정지돼 밖에 나와 있다. 현재 이 전 대통령의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관련 직권남용·강요·국고손실 포함 20개 혐의(2심에서 징역 25년+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은 뒤 상고했고 현재 파기환송심 진행) △새누리당 공천 개입(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등으로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일단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 “한 분은 지금 보석 상태지만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아직 한 분은 수감 중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마 누구보다도 나의 전임자들이기 때문에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다”면서도 “아직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 재판 확정 이전에 사면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의장의 발언 직후 문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코멘트’ 분위기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부패 사범 △시장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특히 정치인 사면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실제 임기 중 3차례 사면복권을 단행했지만 철저히 정치인은 배제했고 정봉주 전 의원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당선인) 딱 2명만 복권을 시켜줬다. 명분은 17대 대선 정치범들과의 형평성, 5대 부패범죄(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챙겨준 측면이 크다.

궁극적으로 문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에 달려 있다. 취임 이후 두 번째 전성기를 맞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상황을 봤을 때 통합과 화합의 차원에서 사면권을 행사할지 아니면 원칙을 지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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