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푸는 것의 철학
확장적 재정정책 옹호
한 번 더 제로금리
코로나발 경제위기 심각
미중 무역 갈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한국은행(한은)이 0.5%로 금리를 내린 가운데 이주열 총재가 확장적 재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한은은 그전까지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금리 동결을 고수했으나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풀기 위한 모든 카드를 다 쓰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본관에서 정례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0.5%로 내렸다. 사상 최초 제로금리(0.75%)로 돌입했던 3월 중순 이후 두 달여만이다. 금리 인하를 발표하고 이 총재는 통화정책회의를 주재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채택하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재는 재정건전성 관련 질문을 받고 “감염병 확산에 따른 전례없는 위기에 따라 실물 경기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취약계층과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을 보호하고 국내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이런 위기에 저희들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 한다고 하면 성장 기반의 훼손이라든가 잠재성장률 하락 등 장기적 관점에서 피해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가 OECD 국가와 비교해보더라도 재정 정책의 여력(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1%)이 크다고 하는 것은 IMF 등 주요기관이 일반적으로 내리는 평가”라며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필 경우 재정건전성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고 이런 위기에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단기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긴 시기에서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같이 이뤄진다면 정책의 타당성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재차 “현 상황에서 위기에 대응하고 우리 경제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피는 것은 필요하다”고 공언했다.

이주열 총재는 지금 재정건전성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때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둘 다 급속하게 불황에 빠지고 있는데 한은은 유동성 확대 기조 차원에서 △제로금리 △환매조건부채권 무제한 매입(한국판 양적완화)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 등 3가지 정책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최대치로 구사하고 있는데 △2월28일 ‘코로나19 민생경제 종합대책’으로 20조원 투입 △3월17일 1차 추경(추가경정예산) 11조7000억원 △4월30일 2차 추경 14조3000억원 △30조원 규모의 3차 추경 제출 예정 △재원 조달을 위해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 등을 단행하고 있다. 

재정과 통화 모두 코로나발 침체기를 맞아 돈풀기에 올인하고 있다.

관련해서 한은이 국채를 사주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이 총재는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경우 유통시장 매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발행시장이나 직접 인수는 대부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아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시한다. 직접 인수하거나 발행시장을 통해 대량으로 매입하면 그건 재정 확충 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다”며 “정부 부채의 화폐화 우려도 초래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현재 1·2차 추경 등에 따른 국고채 발행 규모가 확대되고 기금산업안정기금도 발행되는데 수급 부담 우려가 큰 상황이다. 3차 추경에 따라 국고채 발행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대규모 국고채 발행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시장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 금리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다면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국고채 매입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고채 단순 매입은 시장 불안에 대응해서 시장 안정화 조치”라고 피력했다. 

통상 세계 경제사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돈을 너무 풀면 버블 경제가 형성되고 그에 따른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평상시와 같다면 그런 우려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적극적인 금리 인하가 빈부격차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은 조금 앞서나갔다고 본다”며 “경기가 아주 부진할 때 경기 충격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소득 감소를 막아주고 고용을 유지하고 성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역설했다.

한 마디로 “현재로써는 빈부격차 확대로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니”라고 일축했다. 

코로나 정국은 장기화되고 있지만 방역 상황은 진정됐다가 재발했다가 정말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다. 1차적으로는 방역 상황이 나아져야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전망할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은 한은 입장에서 도무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에서 “2월 전망 때도 말씀드렸듯이 불확실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코로나의 전개 양상에 기초해 짚어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의 확진자 수가 2분기 중 정점에 달하고 국내에서도 대규모 확산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2월 전망이) 나왔다”며 “이렇게 전망 수치를 제시했지만 앞으로의 성장 경로는 코로나의 전개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금통위는 코로나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그 영향이 보다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크게 낮아지는 것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며 “앞으로도 한은은 통화정책 완화적 기조를 유지해 국내 경제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기본 시나리오는 글로벌 신규 및 잔존 확진자 수가 2분기 이후 정점에 이른 뒤 차차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국내에서는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대규모 재확산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했다”면서도 “4월 금통위 회의 이후에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코로나 전개 양상이 그때 보다는 진정 시점이 지연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진정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남미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 갈등은 코로나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 올초에 겨우 봉합됐는데 다시 악화되는 추세다.

이 총재는 “현재 양국간 무역 이슈를 중심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지만 향후 갈등이 구체화될지 어떠한 조치가 어떤 강도로 나타날지 예상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이번에 전망할 때도 구체적으로 수치에 반영하지 못 했다. 하방 리스크로는 보고 있다. 코로나 전개 양상이 가장 중요한 영향이 되겠지만 미중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 우리 수출의 큰 리스크로 유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중 갈등이 글로벌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환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원화 환율은 위안화 환율과의 동조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중 갈등의 전개 양상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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