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N 동참 압박
한미 외교라인
노골화되는 반중 노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반중국 블록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참관국 자격으로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의 세계질서에서 중국 고립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외교라인 고위급은 5일 오전 전화통화를 하고 반중국 경제블록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 차관은 이태호 외교부 2차관에게 “한국이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공식 의사를 밝혔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은 동참하라는 말이다. EPN은 반중 경제블록으로 세계 무역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연합체다. 현재 미국은 우방국인 일본, 인도, 호주, 한국 등에 은근히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이 차관은 일단 “앞으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며 원론적인 메시지만 내놨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 차관이
키이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과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일찌감치 연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플랜을 공식화하는 등 한중 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거듭되는 미국의 반중 노선 압박 모드가 무척 곤란할 수밖에 없다. 한중 무역 거래액은 300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다. 군사안보적으로는 한미 관계가 한중 관계보다 월등한 동맹 전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빠진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에 한국을 참관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호의적인 제안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던진 바 있고 이 자리는 그 자체로 반중국 네트워크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방역의 국제적 성과로 국격과 위상이 높아진 만큼 반중 노선에 합류되는 것이 우려됐음에도 과감하게 수용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기세로 EPN에 동참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EPN은 본질적인 성격 자체가 노골적인 반중이라 부담감이 너무 크다. 안 그래도 최근 우리 국방부는 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를 교체한 만큼 중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흐름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홍콩보안법’에 대한 스탠스도 복잡한 문제다.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최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영상 세미나에서 한국의 홍콩 문제 관련 입장에 대해 반중으로 못박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외교부는 지난 2일 브리핑을 내고 홍콩보안법에 대해 “일국 양제 하에서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홍콩 편을 든 것도 중국 편을 든 것도 아닌 무난한 입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퍼 부차관보는 “전례없는 입장이고 의미심장하다”며 끼워맞추기식 평가를 내렸다.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웬만하면 모든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줄타기와 치열한 외교술은 필수다. 전방위적인 미국의 압박에 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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