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사태를 보면서..

신현지 기자
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어떤 사형수가 있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는 관례가 있어 그에게도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사형수는 “고향의 연로하신 어머님을 뵙고 싶다.”라고 했다. 그러나 왕은 사람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 사형수의 그 소원만은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이때 사형수의 친구가 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저는 이 친구를 믿습니다. 왕께서 그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그를 대신해서 잡혀 있겠습니다. 만약 약속 날까지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대신 제가 죽겠습니다.”

이 같은 친구의 말에 감동한 왕이 그를 볼모로 잡고 사형수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고향으로 떠난 사형수는 약속한 날이 가까이와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의연했다. 드디어 약속된 날. 결국 사형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왕은 약속대로 사형수 대신 볼모로 잡힌 친구를 처형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친구는 그가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라며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반드시 돌아올 친구라고 믿음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려는 그 찰라, 멀리서 다급하게 외치며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안돼요. 그를 죽여서는 절대 안돼요." 바로 그 사형수였다.

새삼스럽게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탈무드의 우화가 서두에 인용되는 것인지 독자들은 대충 짐작 하리라 본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맺음을 하는지도. 즉, 인간의 관계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는 것을 우리는 초등교육에서부터 일찍이 배우고 익혀왔다.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조차도 대책 없이 견고하기만 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왜 이렇게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 배우고 익혀왔거늘 믿음의 관계 맺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죽음까지도 불사할 만큼 나를 믿어주는 이는 고사하고 여차하면 등을 보이고 마는 그런 허접한 인연에 연연하다 결국엔 깊은 상처로 복수의 칼날이나 갈고, 그러다 제 역시도 그 칼날에 자멸하고 마는 모습들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접하고 있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관련한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약자의 편에서 어두운 구석을 살피겠다던 사회운동가가 신뢰란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헌신짝으로 여겼다는 사실에 논란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더욱이 사태의 기류는 묘하게 편 가르기식 싸움의 양상에 비난의 강도가 거세지면서 급기야 위안부 쉼터 소장의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초래했다. 그러니 세상 이치 뭐가 옳고 그름인지 혼란스럽다.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수요집회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돈벌이로 이용만 당했다"라고 폭로했을 당시만 해도 비난의 화살은 온통 윤 의원을 향하는가 싶었다.

“작고한 김복동 할머니 한쪽 눈이 실명상태인데도 그런 할머니를 끌고 다니며 이용해 먹었고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가짜의 눈물을 보였다고”라고 분개하는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에 그동안 수요모금에 참여한 국내외의 개인과 단체는 배신감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개인계좌를 통한 기부금 및 후원금을 받는가 하면, 회계처리의 불투명성과 쉼터 고가 매입 의혹 등이 줄줄이 터져 나오는 부적절성에 윤 의원은 배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국회의원 사퇴론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비난의 당사자인 윤 의원은 이 할머니의 폭로를 판단력이 흐려진 치매성으로 받아친데 이어 5월 2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는 "안이하게 행동한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제기되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사퇴론을 일축하고 지난 1일 21대 국회에 입성 후 노골적인 역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반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적절성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는 원색적인 조롱과 성적 수치심 등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윤 의원을 비호하는 세력들은 친일세력의 ‘배후론’을 운운하며 진영논리에 의한 극단적인 폄훼는 물론 사회연결망을 통해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을 했다. 윤 의원의 국회 입성에 배가 아파서 훼방을 놓고 있다.”등 인신공격성으로 2차 피해의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막으려는 토착 왜구들의 모략 날조극”이라며 윤 의원을 엄호하는 자세를 보였다. 사태가 이런데도 여성단체들은 왜 침묵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가족부조차도 9일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정의연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이 이처럼 방만하게 되도록 관리감독에 소홀한 관계기관도 이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말한 성숙한 민주사회란 바로 이런 것인지. 투명성을 강조한 논리 역시 이번 사태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실망이다. 그나마 조금의 희망적인 건, 지난 8일 문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이용수 할머니를 공격하는 일을 자제하고, 기부금 논란은 바로잡되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말의 핵심이다. 그러니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수습될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잘못이 없는데 굳이 진영논리 운운하며 힘을 뺄 이유가 없다는 걸 국민은 너무도 잘 안다는 뜻이다.

부디 인정할건 인정하고 대가와 책임소재 역시 분명하게 해야만 정의연의 처음 취지대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용수 할머니 역시도 그간 정의연이 정부가 나서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데 많은 노력을 했고, 또  위안부 운동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뒤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믿음과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아울러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던 법정스님의 말도 되새겨 보게 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하지 못하고 맺은 인연은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글이 이번 사태에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지금의 형편이 꼭 이와 같다는 느낌이니 어쩔 수 없다.

편 가르기식 싸움을 더는 확장하지 않기는 바란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상처만 깊어지는 법.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지 못한 불찰도 있는 것이니. 다만, 제기된 의혹만큼은 명확하게 밝혀지기를 바란다. 정부 역시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의 기부문화가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법적인 제도장치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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