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성협상 12일 안에 마무리
민주당의 자신감
정수 조정 무위로 돌아가
끌려다니는 통합당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1대 국회가 활짝 열렸지만 아직도 양당의 원구성협상은 진통을 겪고 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상임위원회 정수 카드로 급하게 시간을 벌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데드라인은 재설정됐다. 12일 안에 무조건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것이고 그때까지 통합당과 합의되지 않으면 법대로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심산이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회고와 반성' 정책 세미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6.9
주호영 원내대표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회고와 반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0일 아침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서 “오늘 본회의를 열어 정수규칙개정안을 처리하고 12일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며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 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법정시한을 넘겨 법률을 위반한 상태인 국회가 더 이상 아무런 결정없이 지연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통합당이 시간을 끌면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국회 개원을 방해한다면 민주당은 단독으로라도 국회를 개원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1988년 민주화 이후부터 굳어져온 원구성협상 관행에 대해 이 대표는 “자꾸 관행을 이야기하는데 그 관행을 따른 이전 국회가 얻은 오명이 바로 식물 국회와 동물 국회였다.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다시 과거 국회의 오명을 반복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고 일축했다. 

통합당이 내세우고 있는 관행은 2가지다. 

하나는 국회의장을 1당이 가져가면 법사위원장(법제사법위원회)을 야당이 가져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원구성협상 타협을 통해 18개 상임위원장 몫을 배정한 다음에 상임위 위원 배정표를 의장에게 제출한다는 것이다.

관행을 뛰어넘어도 된다는 민주당의 당당함은 177석의 의석수에서 비롯된다. 총선에서 이긴 당이 룰 메이커가 되고 지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힘의 논리다. 

주 원내대표는 원내 지도부와 함께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11대 7의 배분 비율로 합의했다는 언론 플레이를 구사해봤고, 법사위를 수호하기 위해 법제위와 사법위를 나눠서 양당이 나눠갖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려고 하자 주 원내대표는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상임위 정수 조정 카드(상임위 위원 정수에 관한 규칙개정 특별위원회 구성)를 내밀었다. 

국회법상 개원 스케줄은 6월4일 의장단 선임과 6월8일 상임위 구성 완료다.

8일 내내 양당 원내 지도부 간의 협상이 지속됐지만 끝내 결렬될 분위기로 흘러갔고 박병석 의장은 이날 정오까지 상임위 배정표를 제출하라고 통보한 상황이었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아침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상임위 배정은 정수가 정해져야 한다. 통상 의장이 뽑히면 의장 제안으로 상임위 정수 배정을 위한 특위 구성을 제안하고 그것이 의결되면 어느 상임위 정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정한다. 각 상임위 위원수 확정없이는 (배정표를) 낼 수 없다”고 발언했고 이 워딩은 그대로 기사화됐다. 

주 원내대표는 오후에 박 의장 주재의 양당 회동에서 이런 주장을 피력했고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은 거절하려고 했다. 허나 박 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수용했고 민주당도 일단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주 원내대표가 벼랑끝에서 5선의 관록을 발휘해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기조를 이어받아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에서 “어제(9일) 여야는 상임위 위원 정수 조정에 합의했다. 야당이 요구했던 대로 특위를 구성했고 야당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정수 조정에 합의했다. 조정안은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라며 “이제 야당도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는 일만 남았다. 정수 조정 때문에 며칠 늦어진 국회 원구성에 다시 박차를 가해야 한다. 10일 본회의에서는 상임위원장 선출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코로나19로 경제와 민생에 비상등이 켜진지 오래됐다. 국난 상황에서 국회가 잘못된 관행에 매달리느라 허비할 시간이 없다. 국회를 조속히 가동하고 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신속하게 처리해 국민의 절박한 삶과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원구성 완료가 시급하다는 명분을 재차 환기했다.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통합상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연일 법대로 표결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혹시라도 주 원내대표가 어떤 신박한 카드를 또 제시해서 시간을 더 끌지도 모르는데 김 원내대표는 “어떤 이유로도 원구성을 더 늦출 수는 없다. 야당이 원구성을 지연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린다 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해서 10일 15시에 열린 본회의에서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연관있는 보건복지위 및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의 정수 조정안이 통과됐다. 이번에는 통합당 의원들도 본회의에 참석했지만 민주당은 여타 다른 상임위들의 정수 조정안도 얼마든지 통합당의 협조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이제 정말 통합당은 속칭 똥줄이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10일 방송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숫자가 177대 103 아닙니까? 2대 1이 안 된다. 1.7대 1이 아닌가. 지지 득표율 보면 49%대 41% 즉 8% 차이”라며 “(그럼에도 민주당이) 지금 국회의장 가져가고 부의장 가져가고 법사위원장 가져가고 나머지 18개 전체를 다 가지고 갈 수도 있는데 설령 일부를 준다고 해도 국회의장, 부의장, 법사위원장 가져가 버리고 그 다음에 법안에서 표결로 해서 다 처리해버리면 177대 103이나 49대 41이 아니라 100대 0이 돼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법안은 하나도 우리 힘으로 처리할 수가 없고 민주당이 처리하고자 하는 법안은 하나도 제지없이 다 처리할 수 있고 그러면 숫자가 전혀 존중이 안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원구성협상의 관건은 법사위다. 

조 의원의 말대로 통합당이 어떻게든 법사위를 사수하려는 이유는 법안을 잡아둘 수 있는 실질적인 견제권 때문이다.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통합당 패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래서 통합당은 법사위에서라도 제동을 걸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다.

민주당은 입법 절차 효율화를 의미하는 ‘일하는 국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국회의 ‘일’이라는 게 야당의 강력한 견제 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구 자유한국당의 강성 야당론과 보이콧 정치는 대국민 설득력이 전혀 없었고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철퇴를 맞았다. 결론적으로 원구성협상에서 통합당이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드라이브에 주 원내대표가 어떤 카드로 응수할지 원구성협상의 결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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