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갤러리 초대석 그림에 미치다 ⑪]김종근의 위대한 예술가의 명언(화가)
[중앙 갤러리 초대석 그림에 미치다 ⑪]김종근의 위대한 예술가의 명언(화가)
  • 윤장섭
  • 승인 2020.06.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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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그림을 베끼지는 않는다"...타마라 드 램피카 (1898~ 1980)(TAMARA DE LAMPICKA)
“새로운 스타일과 밝고 빛나는 색채"...모델의 우아한 모습을 찾아내 그린다

 

렘피카는 189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사진-=김종근 교수)
렘피카는 189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사진-=김종근 교수)

화가의 이름을 딴 향수가 이제는 종종 있다. 나는 그런 향수를 써 본 일이 있는데, 아주 유명한 ‘롤리타 렘피카 (Lolita Lempika) 라는 매혹적인 향수가 그것이다.

롤리타 렘피카는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와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합성어로 렘피카는 1930년대 당시 유럽사교계와 상류층을 흔들었던 여류 화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9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잣집 딸로 태어난 렘피카, 본명은 마리아 고르스카(Maria Górska). 그녀는 스위스 로잔에 학교를 다니고  1912년 부모의 이혼으로 16세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친척집으로 가면서 사치스런 삶을 살게 되었다.

러시아 출신의 변호사 타토이츠 렘피카와 결혼한 그녀는 1917년 남편이 볼세비키 혁명에 연루되자 가족과 함께 파리로 망명하면서 색채 화가인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와 앙드레 로토(André Lhote)에게 수공예 미술을 배우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모리스 드니의 ‘종합적 큐비즘(synthetic cubism)’과 앙드레 로트의 ‘부드러운 큐비즘(soft cubism)’의 화풍을 따르면서 그녀만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예술적 형식을 구축하면서 빛을 발했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고 드디어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고 드디어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고 드디어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다. 기하학적 형태의 명암효과가 단연 돋보이는 스타일이 그것이다.

대부분 그녀의 작품은 명암 대비가 강렬한 여성의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누드 모습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그림에는 벗은 나부 형태의 여자들이 즐겨 등장한다. 여인들은 탱탱한 피부에 유혹적인 살색으로 그들은 깎은 듯한 여인의 유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명암 대비가 강렬한 여성의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누드 모습이다.(사진=김종근)
그녀의 작품은 명암 대비가 강렬한 여성의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누드 모습이다.(사진=김종근)

렘피카의 이런 화풍은 1910년대 유럽에 불기 시작한 아르데코 양식의 장식적 화가로 떠오르면서 그의 명성도 절정에 다다랐다.

“장식미술의 스타일 그림은 그녀보다 더 잘 그린 화가가 없다” 고 할 정도로 그녀는 그림의 화류계에서도 놀랄정도로 돋보였다.

그녀가 그린 모든 초상화는 모델조차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하늘 높은줄 모를 정도로 높았고, 이탈리아 여행 중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와의 열정적 사랑이 화제가 될 만큼 그의 사생활 또한 자유분방하고 각별(?)했다.

빼어난 미모와 거침없는 남성 편력, 양성애로 화단에서 문제의 여걸로 단연 그는 손꼽혔다. 화가라는 직업 뒤에 항상 ‘화류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던 여자. 더욱이 말년에 그녀는 40세 연하의 젊은 조각가와 동거할 정도로 세인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빼어난 미모와 거침없는 남성 편력, 양성애로 화단에서 문제의 여걸로 단연 그는 손꼽혔다.(사진=김종근)
빼어난 미모와 거침없는 남성 편력, 양성애로 화단에서 문제의 여걸로 단연 그는 손꼽혔다.(사진=김종근)

그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의 매너리즘에서 힘입은 바 크다. 화가로서는 앵그르의 작품 속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특히 바로크 시대의 회화의 밝고 어두운 명암을 잘 살려냄으로써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장식을 화폭에 가장 매력적으로 조화시켰다.

그녀의 작품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우선 1920년대 입체주의풍과 고전회화가 만나는 시기인 파리 제1시대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렘피카 양식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파리 제2시대, 마지막으로 1940년대 이후 초현실주의화 그리고 구상회화로의 복귀로 나뉘어 진다.

1932년경에 그려진 작품 "아담과 이브"류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이며 모던함을 보이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1932년경에 그려진 작품 "아담과 이브"류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이며 모던함을 보이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1932년경에 그려진 작품 <아담과 이브>류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이며 모던함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금속적인 메탈 감각을 보여주는 차가운 특유의 화풍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적 화풍의 이미지 속에는 큐비즘, 즉 입체파의 영향을 보이는데 렘피카의 누드는 그 특유의 마력적 에로티시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풀어 오른 듯한 관능적인 여인의 미를 눈부시게 표현하며 화폭 속에는 종종 다소 퇴폐적인 표정이나 권태로움을 느끼게 하는 여인들의 표정이 자극적으로 묻어난다.

또한 <두 여자친구>의 벗은 모습이나 <네 명의 여인>등 섹슈얼한 렘피카 자신의 여성적 이미지, 레즈비언적인 성향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녀는 양성애자였다. 그래서 그림 속엔 레즈비언과 호모 섹슈얼리티가 아주 강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독특한 작품들은 그녀가 본능에 솔직하고, 그가 느낀 욕정과 갈망을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사진=김종근)
그녀의 독특한 작품들은 그녀가 본능에 솔직하고, 그가 느낀 욕정과 갈망을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사진=김종근)

남녀가 정욕적인 모습으로 여인을 포옹하고 있는 이유도 다 여기서 시작된다. 그녀의 독특한 작품들은 그녀가 본능에 솔직하고, 그가 느낀 욕정과 갈망을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분명하고 깨끗하게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이며, 나의 그림은 깔끔하고 완벽하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의 그림은 평론가들에 의해 부드러운 큐비즘의 후예로 불린다. 그와 같은 화가가 결코 아무 시대나 흔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분명하고 깨끗하게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이며, 나의 그림은 깔끔하고 완벽하다”고 자평할 정도였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녀는 스스로 “나는 분명하고 깨끗하게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이며, 나의 그림은 깔끔하고 완벽하다”고 자평할 정도였다.(사진=김종근 교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렘피카는 남편과 미국으로 이주하여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개인전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1950-1960년대에는 화가로서의 명성은 크게 잃었다. 전후 세계 화단을 휩쓴 추상표현주의의 열풍과 미술평론가들의 강렬한 비판과 혹평에 렘피카는 발표와 전시를 모두 거부하고 칩거 했다.

마침내 1980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Cuernavaca)에서 그녀는 화가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화풍을 만들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 또한 시대는 그녀의 그림에 열광한 것이다.

“나는 결코 그림을 베끼지는 않는다. 새로운 스타일, 밝고 빛나는 색채, 모델의 우아한 모습을 찾아내 그린다.”

김종근 교수
김종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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