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워킹그룹 인식
하노이 노딜 이후 발복잡기로 기능
북한의 도발 계획
남북 협력 다 막혀
임종석의 대안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으면서 외교안보 라인 교체설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워킹그룹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를 불문하고 진보진영 전체에서 욕을 먹어왔다. 북미관계가 교착 국면에 빠진 상태에서 워킹그룹 때문에 남북협력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한다는 이유로 여권 내에서도 비판 기류가 강하다.

(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장관은 워킹그룹의 긍정적 측면을 어필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대북 전단과 같이 실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관계 부처가 제대로 대처 못 한 아쉬움도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향한 대통령의 의지를 정부가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공개로 전환된 뒤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우리가 뭘 하려고 하면 자꾸 제지를 거는데 그것을 간소화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회의에는 강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사의를 표명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대타로 서호 차관 등이 참석했다.

우선 정 장관은 “현재로선 북한이 예고한 4가지 도발 조치를 할 것으로 보이고 거기에 대해 철저한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연대급 군부대 배치 △비무장지대 군부대 초소 설치 △전선경계근무 수위 1호로 유지 △대남전단 살포 보장 등 4가지 플랜을 발표한 바 있는데 정 장관이 “초소에서 일부 움직임이 보인다”고 밝혔다.

정경두 장관과 강 장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워킹그룹은 비핵화의 진전 정도와 남북협력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한미 실무진이 논의하는 회의체로 2018년 11월20일 출범했다. 우리 측은 외교부,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 실무진이 참석하고 미국 측은 국무부,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인사가 참석한다. 출범 당시에는 한미의 연대관계가 강화될 것이라고만 받아들여졌는데 갈수록 남북관계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근래 대남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17일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북남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 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 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워킹그룹 때문에 불편했던 심정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자체적인 남북협력의 일환으로 거론됐던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관광 재개 등도 워킹그룹에 막혔고 △인도적 지원으로 타미플루(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의 치료제)를 제공하려던 것도 운반용 트럭이 제재를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허됐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도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외교통인 한겨레 길윤형 기자는 18일 출고된 기사를 통해 “워킹그룹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여러 노력을 가로막는 간섭그룹이라는 한국 내부의 호된 비판을 받아왔다”고 묘사했다.

강 장관이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워킹그룹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지만 연락사무소까지 폭파될 정도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8년 남북관계가 최전성기였을 때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6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워킹그룹이 본연 취지와 다르게 왜곡되게 나타나고 있다. 남북관계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상황이라 그 지점을 외교부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에 대해 “미국이 아무래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 워킹그룹 메커니즘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앞으로 워킹그룹이 좀 더 본연의 목적에 맞도록 그런 면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외교부로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외교부의 이런 인식은 미국이 맘만 먹으면 단번에 큰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남북미 비핵화 협상이 잘 되더라도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의회 등으로 나뉘어 사사건건 제재 완화를 위한 허가를 별도로 거쳐야 하는데 그럴 필요없이 워킹그룹에서 일괄 허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노이에서 북미의 인식 격차가 영변 핵 시설 폐기만으로는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풍계리 갱도까지 폭파(2018년 5월24일)했으니 영변까지 내줄려면 몇 가지 유엔 제재 완화를 받아내야 한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영변 플러스 알파(강선 등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입장 차이에 발이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워킹그룹이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오히려 개성 만월대 발굴, 이산가족 화상상봉, 양묘장 현대화, 국군 유해발굴 사업 등이 워킹그룹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철저히 막혀 있다. 철도 및 도로 협력도 마찬가지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NL 성향의 시민사회에서는 워킹그룹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하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5월 발간된 <창작과 비평> 188호 대담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을 주문했다. 임 전 실장은 제재 부과의 기준을 ‘월경’에서 ‘소유권 이전’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저 물자가 국경을 넘어가는 것에는 제재를 걸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은 금지 품목이 북한으로 넘어가기만 해도 제재를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해왔다. 특히 미국은 워킹그룹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이 아닌 것에도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그래서 임 전 실장의 주장대로 소유권 이전 기준으로 바뀌면 △산림 협력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기본조사 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임 전 실장은 통일부가 워킹그룹에 참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정부 내에서도 통일부는 최대한 협력에 방점을 찍고, 외교부는 미국과의 조율에 방점을 찍어야 맞는데 통일부까지 들어가 있으면 외교부적 논리를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국제평화연구소는 작년 12월 <제재를 보다 영리하게 : 인도주의적 활동 보호>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북한에 지원하는 위생키트에 손톱깎이가 제재에 걸린 어느 단체 사례가 있다”며 유연한 판단을 요구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판문점 선언 비준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총선 이후 국회 구성도 여권에 유리해졌으니 정부가 비준안을 마련하면 민주당이 추진하겠다는 플랜이다. 비준이 완료되면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대북 전단 살포 금지에 대한 부분도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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