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폭염에 갈 곳 잃은 어르신들
자치구별 ‘무더위쉼터’ 탄력적 운영

코로나19에 노인시설이 잠정 폐쇄되자 한 어르신이 무더위를 피해 지하철역 내 의자에서 졸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노인시설이 잠정 폐쇄되자 갈 곳을 잃은 한 어르신이 지하철역 내 의자에서 졸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복지관과 경로당이 잠정 중단되자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올 여름 최악의 폭염이 예보되고 있어 폭염에 취약한 노인들의 건강 염려의 소리가 크다.

22일 합정역 부근에서 만난 김순덕(89세) 노인은 35도가 육박하는 날씨에 지하철 입구 작은 나무에 의지한 채 붙박이로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따갑게 내리 쬐는 태양을 피해 자리의 각도만 조금씩 바꾸었을 뿐 여전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끔씩 꾸벅꾸벅 졸면서도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모습에 다가가 말을 건네니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마스크 위의 눈빛이 화들짝 반기는 기색이었다. 그런 김 할머니는 대뜸 “혼자 있기 답답해서 나왔다.”라며 “코로나 때문에 복지관이 문을 열지 않으니 동네 할머니들도 만날 수 없고 종일 가도 누구 하나 말벗이 없어 사람 구경이라도 할라고 나왔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코로나가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는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그냥 복지관 문이라도 열어주면 동네 할머니들 만나 실컷 얘기하고 에어컨 바람도 쐬고 좋을 텐데, 언제 문을 여냐"고 되묻기까지했다.

집 안에 갇힌 답답함을 참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은 신도림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허리 굽은 한 노인이 마치 긴 여행이라도 떠나온 여행객처럼 등에 짊어진 배낭을 옆 의자에 내려놓고 노곤히 단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잠든 노인의 맞은편에도 반백의 노인 둘이 무료한 듯 연신 하품을 하다 역시 잠깐 사이에 잠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이들 노인들도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었고 무릎에는 빵부스러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우울함을 설명하는 듯 했다.  

상가 쉼터에 앉아 무더위를 피하고 있는 어르신들 (사진=신현지 기자)
상가 쉼터에 앉아 무더위를 피하고 있는 어르신들 (사진=신현지 기자)

이에 지하철역 내의 청소를 관리하는 A씨는 “코로나로 노인복지시설이 문을 닫으니 노인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 더위를 피해서 지하철역으로 내려온다.”며 “종일 멍하게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뜩이나 방역강화 지시에 힘든 판이라 주위를 어지럽혀 놓고 그럴 때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하소연 했다.

지방에도 코로나19로 인한 노인들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예산의 한 농촌마을의 노인들도 매년 여름이면 경로당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의지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확산에 경로당이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바람에 동네가 적막강산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이곳 농가 마을은 독거노인이 대부분으로 노인들은 대화상대가 없어 심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동네 이만숙(91세) 노인은 “예년 같으면 경로당에서 밥도 해 먹고 수박도 나눠먹고 자식자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텐데, 올해는 전염병이 퍼지는 바람에 다들 집안에만 갇혀 누구 하나 죽어나가도 모르게 됐다.”며 “나이 먹으면 무엇보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가장 큰 무서운 병인데 무작정 경로당 문을 닫아라니 그 속을 알 수 없어 화가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동네의 이장 서OO(64세)씨는 “동네도 작고 또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외로움을 많이 호소하신다.”며“마스크 착용하고 거리를 지켜 안전수칙을 지키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 무턱대고 경로당 문을 열지 말라니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무더위에 집안에 에어컨은커녕 전기요금이 아까워 선풍기도 켜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아 올 여름 폭염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니 하루속히 경로당 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고충이 늘자 서울시 자치구들은 폭염에 대비해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무더위쉼터를 운영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휴관하거나 최소한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구로구는 경로당, 복지관, 동주민센터 등 총 254개의 무더위쉼터를 코로나19 대응단계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심각단계에서는 전체 무더위쉼터를 휴관하고, 경계단계에서는 동주민센터, 지정 우체국 등 관공서의 무더위쉼터를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또 경로당은 별도의 방역관리자를 배치하는 경우에만 운영할 수 있도록 했고 예년처럼 실내에서의 취사 또는 식사를 허용하지 않도록 했다. 영등포구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사회서비스 분야 주민참여형 돌봄 협동조합 육성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초구는 폭염에 취약한 노인들을 위해 캠핑카를 개조한 ‘폭염이동응급쉼터’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폭염이동응급쉼터 내에는 생수 등 냉방물품뿐만 아니라 덴탈마스크를 비치하여 올여름 폭염은 물론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겠다는 조치다.

성동구도 취약한 주거환경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500가구에 각 동 주주돌보미, 복지통장, SOS돌봄매니저 등이 직접 방문해 무더위 질환 예방을 위한 안전 매뉴얼을 전달했다. 또 다양한 냉방물품 및 시설을 지원하는 한편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관공서 중심으로 무더위쉼터를 차례로 운영을 재개하기로 했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9월30일까지 폭염대비 긴급구조·구급대응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이 기간 동안 소방재난본부 및 시내 각 소방서에서는 ‘폭염대책 119구조·구급 상황실’을 24시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독거 중증장애인을 위한 ‘119안전지원 콜센터’가 운영된다. 폭염경보 이상의 특보가 발령되면 각 소방서별로 관리하고 있는 독거중증 장애인 753명에 대해 전화상으로 안전여부를 확인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현장 방문으로 혈압 등 기초건강 체크를 해준다.

또 폭염경보가 발효되면 취약계층 주거지역인 쪽방촌에 ‘119안전캠프’를 운영하고, 각 소방서별로 ‘폭염119휴게실’도 확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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