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가리지 않고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
시대전환과 기본소득당
선별론과 안심소득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2월 초중순 재난 기본소득 담론이 형성된 뒤 한 달(3월30일)만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됐다. 총선이 끝나고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기본소득 담론에 뛰어들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검토 필요성”에 머무르고 있지만 기본소득을 거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준호 작가는 지난 23일 오후 국회 주변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제 기본소득 의제를 진보든 보수든 피해갈 수 없다는 걸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등을 출간한 기본소득 전문가로 기본소득당 당원이기도 하다. 

오준호 작가는 기본소득 자체가 과거와 달리 피할 수 없는 의제 사항이 됐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오 작가는 “김종인 위원장은 정치적 감각이 있고 재난지원금 효과처럼 국민들이 이것을 절실히 원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또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소득 급감 등 기본적으로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실제 추진할지 말지 당내 역학관계나 국회 역학관계를 통해 판단을 하겠지만 혹시 끝내 반대하더라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를) 피해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진보진영 안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재난지원금은 일시적인 조치라서 현금 복지 차원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당, 진보당, 민주당 ‘더 좋은 미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김윤영 사무국장(빈곤사회연대),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등은 기본소득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오 작가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보진영 내에서의 격렬한 비판 역시 기본소득이 최소한 무시할 수 없는 의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반대 논리는 아래와 같다.

①소득보장 효과 미미 
②사각지대 해소의 실효성 의문 
③소득재분배 효과 약함 
④소비증대 효과 불확실 
⑤기존 복지체계의 보완재로서도 실효적이지 않음 
⑥수혜자가 전국민이라 효과성에 의문이 있어도 표가 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자주 거론 

오 작가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산이 딱 정해져 있고 여기서 기본소득으로 재정을 써버리면 기존 복지를 못 쓴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칼 맑스의 속류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론을 인용했다. 

오 작가는 “속류 경제학자들은 임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딱 한정돼 있다고 생각했다. 한정돼 있기 때문에 액수를 어느정도 높여주면 고용이 줄고 실업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노동자들이 현재 받는 임금에 만족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맑스는 임금이란 게 노동자들이 노동한 것의 일부 밖에 못 돌려 받고 나머지는 착취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복지 재정이 왜 그렇게 한정돼 있다고만 보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결국 사회의 부를 재분배하는 문제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전략들을 짜놔야 한다”며 “흔히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론자들이 수혜자가 국민 절대 다수라 정치적으로 옳지 않아도 밀어붙이는 문제(⑥)가 있다고 했지만 기본소득과 복지정책을 잘 패키지함으로써 복지 파이를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풀어냈다. 

⑤에 대해 양 교수는 3일 출고된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제도를 유지한채로) 기본소득이 보완적으로 도입된다 하더라도 도입되는 순간 사회보장제도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위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기본소득은 단돈 1만원짜리라도 6조2400억원이 소요되는 매우 재정 소요가 큰 프로그램”이라고 환기했다.

이어 “가정 경제에서도 새로운 커다란 지출 항목이 생기면 다른 소비 지출에 제약을 받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오 작가는 인터뷰 직후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는?'이라는 주제의 국회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반면 오 작가는 “선의를 갖고 이해해보면 이제 곧 우파들의 기본소득론이 다수가 되면서 기존의 복지를 다 위축시키고 시장주의적인 복지 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며 “동시에 기본소득으로 최저생계비만 쥐꼬리만큼 쥐어주는 식으로 가지 않겠느냐라는 건데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론이 늘 좌파와 우파가 경합하는 공간에서 발전했고 거기서 진보적인 복지론이 그나마 확대되고 버텨왔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렇다면 진보적인 사회개혁론자들이 힘을 합쳐서 기본소득이 제대로 가도록 하는 게 문제지 도입 여부만 가지고 기본소득 전체에 공포감을 갖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반론했다. 
현재 가장 선명하게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곳은 원내 1석 정당인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다. 3월7일 두 정당은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기본소득 담론을 수면 위로 띄우기도 했다. 시대전환의 창당 주역이자 전직 공동대표였던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기본소득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시대전환은 △증세없이 바로 월 30만원 기본소득 지급 가능 △전국민 5187만명 기준으로 매년 약 187조원 소요 등을 주장하고 있고 재원 대책은 아래와 같다.

Ⓐ소득세나 비과세 감면 등을 없애는 세제 개편으로 40% 마련
Ⓑ기존의 복지정책 통폐합으로 30% 마련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낭비되고 묶여 있는 예산을 풀어서 30% 마련 

반면 기본소득당은 반드시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당은 △매월 60만원씩 5170만명 기준으로 지급하려면 31조200억원이 필요하고 매년 372조2400억원 소요 △6대 원칙 ‘무조건성·개별성·보편성·정기성·현금성·충분성’ 천명 △액수는 정치적으로 조정 가능 △기본소득연석회의 제안 등을 주장하고 있다. 재원 대책은 아래와 같다.

㉮(시민세) 모든 소득에 15% 소득세를 부과해서 전체 재원의 50% 충당 
㉯(토지세) 용도 구분없이 사유지 전체에 비과세 감면없이 부과해서 33% 충당 
㉰(탄소세) 기업의 탄소배출량 1톤당 10만원 탄소세를 부과해서 16% 충당 
㉱(데이터세) 데이터 기반 산업에 대한 공유 지분권 설정

오 작가는 “(시대전환과 랩2050이) 현재의 재원들이 묶여 있는 틀을 개혁해서 새로운 재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내놨던 분석은 타당한 게 맞다. 예리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증세없는 기본소득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각종 비과세를 없애고 여러 복지정책을 통폐합하는 것이 현 세제에서 목적세 하나 더 설치해서 증세하는 것보다 더 쉬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세제 개편과 증세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얼마나 디테일하느냐가 증세를 이루어내는 데에 핵심 지렛대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세금 인상과 분배 효과 그 속에서 얼만큼 새로운 세원들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긴 한데 큰 틀에서 증세를 하려면 거시적인 의미에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내가 내는 것보다 기본소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당은 최근 신지혜 상임대표 체제로 재편됐고 용혜인 의원(원내대표)의 원내 1석을 활용해서 토론회 개최, 기본소득 반대론자 페이스북 태그 비판, 원내 7당(민주당·통합당·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연석회의 제안서 전달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오 작가는 “기본소득당과 용혜인 의원으로서는 불가피한 정치 전략을 잘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연령대의 국회의원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지금 유명 정치인들과 민주당에서 기본소득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기본소득당 입장에서 이 논의를 이끌려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방향을 제시해주는 그 역할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열린 토론회는 오 작가와 국회 미래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책 '2050 대한민국 미래 보고서'에 대한 발표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열린 토론회는 오 작가와 국회 미래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책 '2050 대한민국 미래 보고서'에 대한 발표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검토 주장이 보수진영 내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안심소득론’이 떠오르고 있다.

오 작가는 “근로장려금과 비슷한 것”이라며 “소득이 일정 수준으로 가까이 가면 액수가 줄어들어서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소득 등급별로 나눠서 지급하면 그러한 기준선 바로 위에 있는 차상위계층과의 역전이 벌어지니까 소득에 따라 지원이 점진적으로 줄도록 짜놓은 것이 근로장려세제이고 미국에서 음의 소득세(고소득자에게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소득세) 같은 것을 말한다”고 일축했다. 

어찌됐든 보수진영에서도 재난지원금 시행으로 인해 ‘현금성 복지’의 필요성을 수용하긴 했다. 하지만 다 줄 수 없다는 선별론은 여전하다. 
   
오 작가는 “현금성에 대해서는 받아들였는데 다 줄 수 없다는 것이고 선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 주고 나서 나중에 세액 공제를 통해 선별적으로 환수하는 것이나 안 줄 사람은 안 주고 줄 사람만 주는 것이나 효과는 똑같다. 결국 핵심은 모두에게 돈을 주려면 그만큼 증세를 해야 하고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재분배 자체가 싫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분명한 것은 이런 논의가 결코 복지를 확장시키는 길이 아니라 항상 있는 복지와 재원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다”며 “기본소득은 부의 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다같이 돈을 주되 부유층으로부터 선별 환수를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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