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급감에만 의존 안 해
기획재정부는 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흔히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급감이다. 자동화 체제가 단순 반복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서비스직에도 확산되고 있다. 

오준호 작가는 지난 23일 오후 국회 주변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나도 강의를 하거나 사람들에게 설명을 할 때 (자동화의 공포를 언급하는 것이) 효과적인 레토릭이긴 한데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으려고 한다”며 “어떤 공포감 때문에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공유부(토지·햇빛·물·바람·자원·축적된 지식체계·문화유산 등)에 대한 배당권으로서 우리 모두의 권리란 측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동화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동화를 인간의 삶에서 좋은 봉사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화의 어떤 이익을 나누기도 하고 자동화로 인간의 위험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최소화하는 더 가치있는 활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궁핍한 사람들의 생계비를 위한 이런 식의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작가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등을 출간한 기본소득 전문가로 기본소득당 당원이기도 하다. 

오준호 작가는 기본소득 도입의 긍정적인 목적에 대해 헌법적 주권자로서 모두의 보편적 권리로 해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물론 기본소득당도 그렇고 기본소득 세력 내에서도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는 현실로 인한 도입 필요성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 작가는 “사람들의 피부에 다 체감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기술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지 않을 것이라는 분들도 있지만 전국 프랜차이즈 가게마다 키오스크가 도입되면서 알바가 줄고 대형마트도 어려워져 가는 상황에서 자영업 자체가 너무 힘들어지고 있다”며 “다 플랫폼 노동과 배달업으로 변경이 되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체감적으로 일자리 불안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이런 배경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밝혔다. 

사실 이미 2009년 강남훈 교수(한신대)와 금민 소장(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등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설립했고 10년 넘게 기본소득 담론을 형성해왔다.

오 작가는 “그때는 주로 많이 이야기했던 게 2008년 이후 금융 자본주의와 카지노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공황이었다. 금융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약탈적인 부를 재분배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컸다”며 “그 당시에도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관점이 강했다.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기본소득을 마련해야 된다는 어떤 공화주의적 철학이었다”고 역설했다.  

기본소득이 실현되려면 기획재정부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기재부는 아무래도 일반 국민 보다는 기업에 지원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오 작가는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다수 서민들에게 돈을 쓰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지만 사실 정부는 돈을 쓰는 기관이고 돈을 누구에게 쓰느냐의 문제가 있다”며 “오히려 기재부가 기업과 재계에 돈을 써서 그들의 호응을 얻으려고 하는 게 상당히 우익적인 포퓰리즘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바뀌어야 하는 복지 지형 담론이 있다면 튼튼한 복지와 튼튼한 삶의 기반 위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없이 다양한 실험들을 펼치고 당장의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할만한 혁신에 뛰어들도록 민간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며 “이러한 담론의 이동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br>
오 작가가 2017년 초에 발간한
책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사진=박효영 기자)

기재부가 기본소득 담론 자체에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유가 뭘까.

오 작가는 “예전에 토론회를 할 때 왜 이렇게 기재부는 저럴까? 그 사람의 소신을 넘어서 뭐 저렇게 필사적으로 반대를 할까 생각을 해봤다. 그런 기재부 재정 관료들이 성장해온 역사를 보면 자기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들이 계속 지속돼왔다”며 “기본소득과 같이 복지, 재정, 산업 등 경계를 넘나들며 생기는 그런 제도들이 어떤 부의 분할 위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재정 관료들의 입지를 확 약화시킬 것이라는 이걸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도 늘 기본소득에 회의적이거나 소극적인 이유가 국가 관료의 역할과 권력의 원천은 어떤 정책 대상자와 비대상자를 구분하고 구획하는 힘이다. 그걸 가져야 권력을 갖게 된다”며 “기본소득처럼 밑바닥부터 다 평등하게 지급해주고 재정을 기재부의 통제를 넘어서서 사용하게 되면 자기 권력이 무너진다는 그런 직관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예산 편성권의 최종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재부가 영향력을 막대하게 행사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오 작가는 “선출직 정치인이 민주적으로 뽑혔는데 정책 운영의 핵심은 돈인데 비선출직 관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에서 좀 말이 맞지 않다”며 “대통령이 예산을 편성하려고 할 때 적절히 어드바이스를 하는 역할로 (기재부의 권한을) 정리해줘야 한다. 법까지 필요없을 것 같고 대통령의 민주적 의지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제언했다. 

아래는 오 작가와의 추가 질의응답 내용이다. 

Q: 선별론자들은 항상 재정 부족을 이야기한다.
A:
늘 이제 하는 말이 지금 재원이 얼마 있다는 재정 제약론을 이야기하면서 근데 왜 그렇게 가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식의 가정을 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논리에 필요하니까 그만큼의 액수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적을 가능성도 있고 돈 자체가 마련되지 못 할 수도 있다. 오히려 정치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서 증세를 하든 부를 재분배하든 공유 자원의 이익을 사회로 돌리거나 하는 방안을 만들고 그 방안에 대한 합의를 만드는 것이 옳다. 

Q: 최근 기본소득 세력 내에서 선별론의 부작용을 거론하면서 세금을 내는 사람과 지원을 받는 사람이 일치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더라.
A:
현재의 선별 복지체제에서 중산층이 복지 확대에 동의할 동기가 적다. 세금을 내지만 받는 복지는 한도가 있으니까. 기본소득은 어쨌든 중산층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니까 다수가 기본소득의 지지 세력이 되는 것이고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수가 지지 세력이 되면 부유층으로부터 부의 환원이 더 원활해질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 얘기하면 항상 부자들이 돈을 더 낼려고 할까? 이렇게 묻는데 어떤 제도가 부자들이 돈을 더 내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행 복지보다는 기본소득으로 다수가 혜택을 보게 하는 제도가 훨씬 더 민주적 원칙에 부합한다. 

Q: 재난지원금을 처음 받아본 일반 국민들의 효능감이 엄청난 것 같다. 
A: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이 대략 48%로 나왔는데 3월만 해도 재난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가 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는 재난지원금의 경험이 반영됐을 것이다. 끝날 듯 끝날 듯 안 끝나고 이 재난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기본소득 형태의 지원은 필요하다. 공유부에 대한 배당 권리라든가 기본소득론의 원칙적인 입장을 떠나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Q: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국민 고용보험제와 기본소득을 대립되는 것처럼 프레이밍하고 있다. 
A:
과거 본인이 시행한 정책이나 여러 발언으로 봤을 때 분명 기본소득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굳이 전국민 고용보험제와 대결적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