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발발 70주년 ②]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6.25 무용담 더는 못 들어
[6.25 전쟁 발발 70주년 ②]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6.25 무용담 더는 못 들어
  • 윤장섭
  • 승인 2020.06.25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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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살던 고향은....살아서 못가고 죽어서 영혼이라도 간다

 

70년 전인 1950년.6월 25일은 우리나라가 김일성이 주도한 6.25전쟁이 시작된 비극의 날이다.(중앙뉴스 DB)
70년 전인 1950년.6월 25일은 우리나라가 김일성이 주도한 6.25전쟁이 시작된 비극의 날이다.(중앙뉴스 DB)

[중앙뉴스=윤장섭 기자]70년 전인 1950년.6월 25일은 우리나라가 김일성이 주도한 6.25전쟁이 시작된 비극의 날이다. 인공기를 앞세운 공산군들의 탱크앞에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하는 대한민국은 참혹한 전쟁의 비극으로 빠져들었다.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으면서,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재편된 양대 강대국의 냉전이 한반도에서 폭발했다. 

북한군은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었다.(중앙뉴스 DB)
북한군은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었다.(중앙뉴스 DB)

전쟁의 시작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일성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나 한반도를 무대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과 소련과 중국의 연합군이 맞붙은 대리전쟁과 다름 없었다.

강대국 간의 대립은 6.25전쟁에 적극 개입하면서 확대 되었고 결국엔 우리의 이웃이자 형제, 부모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당시 남북한 인구 10%에 해당하는 300만명 이상이 희생되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됐다.

전쟁은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전쟁이었다.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아닌 기약이 없는 휴전이었다. 잠시동안 전쟁을 중단하자는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맺어졌다.

사상과 이념이 다른 체제하에서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이산가족만을 만들어 놓고 70년 동안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나의살던 고향은....살아서 못가고 죽어서 영혼이라도 간다

지금 아버지는 경기도 이천 6.25 참전용사 묘지인 호국원에 안치되어 계신다. 아버지는 살아서 고향을 가지는 못했으나 아마 영혼은 고향을 갔으리라..(사진=윤장섭 기자)
지금 아버지는 경기도 이천 6.25 참전용사 묘지인 호국원에 안치되어 계신다. 아버지는 살아서 고향을 가지는 못했으나 아마 영혼은 고향을 갔으리라..(사진=윤장섭 기자)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기자의 아버지 故 윤천식(90세)씨의 고향은 황해도 옹진군 황현리 감나무재다. 번지수는 잘 기억하지 못해 동내에서 옛날부터 불려오던 지명으로만 고향을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어려서 일찎 돌아가시고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큰 형님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해방은 되었지만 집안이 그리 넉넉한 형편은 못돼 겨우 국민학교만 나와 큰 형님댁에 언쳐 살면서 농사를 도왔다.

남한으로 내려오기까지 근 20년 동안 아버지는 타향살이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나의 큰아버지 되시고 아버지 바로 위 형님되시는 큰아버지는 아버지보다 4살이 많으셨다. 큰아버지는 1947년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한 입이라도 덜어보겠다며 국군에 지원해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고향집에서 생 이별을 했다.

첫째 큰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15살 위여서 부모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도 결국 어려운 가정형편과 큰 형님과의 동거가 불편해 국군에 지원한 형님을 찾아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3월에 고향을 떠나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막상 남쪽으로 내려오기는 했으나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했다. 북한집에 있을때 형님 친구분들이 형을 찾으려면 영등포 근처에 있는 호령부대로 찾아 가보라는 말을 들었던 아버지는 수중에 동전한닢 조차 없었고 오로지 발품만을 팔아 호령부대를 찾아 갔지만 형님은 이미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곳으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말에 아버지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도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갈 곳은 오로지 먹여주고 재워주는 군대밖에 없다고 판단해 군에 입대를 했다.

당시 아버지 나이는 20살이었다. 군대에 입대하고 2달만에 6.25가 발발했다.

아버지는 81mm소총수로 6.25전쟁에 참여했다. 근 3년동안 죽음의 고개를 몆번이나 넘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는 기자가 어렷을적에 종종 6.25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5사단 36연대 출신이다. 박정희 장군이 사단장하던 시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6.25 전투에서 사단기를 빼앗겨 5사단기가 없다는 유명한 일화도 내려오고 있다.

아버지는 지리산 공비토벌에 참여했다가 인민군에세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고 한다. 목숨걸고 한 겨울에 적진을 탈출하신 용맹담은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전쟁에서 총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받고 다시 전투에 참여하는 등 실로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였다.

살아생전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허벅지를 관통했던 총상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1954년에 군에서 제대를 하셨다. 그리고 가장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살다가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가겠다며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터를 마련하시고 평생을 그곳에서 통일이 되기를 기다리시다가 10년전인 2010년 10월에 눈을 감으셨다.

지금 아버지는 경기도 이천 6.25 참전용사 묘지인 호국원에 안치되어 계신다. 아버지는 살아서 고향을 가지는 못했으나 아마 영혼은 고향을 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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