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큰그림
민주당의 주장
주호영에게 없는 결정권
가합의안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양당 원내대표가 5월초부터 두 달 가까이 협상해왔고 여러 번 합의에 다가갔지만 원내 지도부 밖에서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오전 11시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래통합당이 가합의안을 거부한 배경에 대해) 그건 통합당에 취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원구성협상과 관련된 진행 상황을 놓고 봤을 때 협상권과 결정권을 달리 하는 당의 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간담회 말미에 김 원내대표는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불승인을 거부 사유로 언급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통합당이) 특정 개별 항목을 가지고 거부 입장을 밝힌 건 아니다. 잠정 합의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거부를 했고 그 다음에 통합당의 의사결정구조는 저희들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정말로 협상 결렬에 영향을 미쳤는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은 작심하고 통합당의 의사결정구조를 비판한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때문이다. 

김 수석부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6월5일부터 공식 협상만 5차례 그밖에 수 차례 교섭했는데) 여러 과정 중에서 (통합당의) 협상권과 결정권이 계속 분리돼 있고 여야 원내대표와 수석 간에 합의됐던 가합의안이 또는 논의됐던 안이 어제 주 원내대표의 사인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또 거부됐던 최종 협의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야당의 리스크에 대해서 우리 국민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다”며 “통합당에서 18개 상임위원회를 11대 7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와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나누고 주요한 상임위(국토교통·정무·문화체육관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교육·환경노동)를 민주당에서 맡지 않기로 했음에도 (통합당이 거부해서 18개 전부를) 어쩔 수 없이 여당이 책임지게 된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가합의안에 대해 김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대선 승리 정당이 맡음 △상임위원장 18개를 11대 7로 배분 △여야가 법사위 제도 개선에 진지하게 협의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 관련 국정조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 사건 관련 법사위 청문회 △3차 추경(추가경정예산)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 △6월30일 개원식 개최 등이 들어갔다고 브리핑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태년 원내대표는 통합당 없이 원구성을 완료하고 3차 추경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주당의 후일담에 따르면 금요일(26일)과 일요일(28일) 당시 양당 원내지도부는 이런 가합의안에 대해 사실상 최종 서명만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통합당 의원총회와 비대위로 가져가서 컨펌받는 과정 중에 협상이 어그러졌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김 수석부대표는 “주 원내대표의 협상의 합의와 결정권을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지난 금요일에도 오늘과 비슷한 합의안이 부결됐던 이유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 위원장이 과도하게 원내가 진행하는 상황에 대한 개입을 통해서 국회가 원만하게 이행이 되고 21대 국회가 구성이 되는 것에 대해 (중략) 무슨 역할을 했는지 되물어보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 공전 상황을) 해결해야 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방향을 만들어주는 야당이 되길 기원하고 (김 위원장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로서 부탁을 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동안 주 원내대표가 어떻게든 타결해보려고 민주당과 어렵게 합의를 해오면 당내 강경파가 의총에서 어깃장을 놨다는 가설이 민주당 중심으로 제기됐었다. 법사위를 고수하는 강경파가 협상 결렬을 부추겼고 그래서 주 원내대표의 칩거 정치 기간(15일~24일) 자체가 민주당에 대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강경파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되는 경우가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발언하고 있는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22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내가 추론하는 것이다. 통합당 의원들에 대한 분노도 상당한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 잘 해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말이 다를 수 있는데 11대 7로 가합의했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통합당으로서는 잘 한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잘 한 것”이라며 “그걸 (통합당 강경파 의원들이) 걷어찼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통합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불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원내 복귀를 하려면 저희도 노력해야겠지만 통합당도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구성협상 타결을 위해 통합당이 △의총에서 만장일치로 복귀 촉구 △주 원내대표에게 개원 협상의 전권 위임 △김 위원장의 전폭 신뢰 등 3가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주 원내대표 본인을 제외한 102명의 통합당 의원들의 견해는 각양각색일 것이기 때문에 결국 김 위원장이 어떤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김 위원장은 19일 초선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원구성협상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의견을 냈고 이는 언론을 통해 공식화됐다. 

①원내 보이콧 철회 및 주 원내대표의 복귀 
②민주당과의 교섭 포기 
③18개 상임위원장 전부 양보 
④통합당 의원들에 대한 상임위 강제 배정 철회 후 다시 배정 
⑤정책 전문성과 사회적 약자 챙기는 이미지 구축 

하루 뒤(20일) 김 위원장은 주 원내대표가 칩거 중이었던 사찰을 찾아 회동했고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 주 원내대표는 나름 칩거 정치를 통해 언론플레이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김 위원장의 ① 요구에 더 이상 오래 끌지 못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주말 담판 당시 가합의안이 만들어졌지만 김 위원장이 주 원내대표에게 절대 안 된다는 시그널을 줬기 때문에 최종 결렬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 통합당이 4연패(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를 한 마당에 원내 실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가야 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김수민 평론가는 기자와의 메시지 교환을 통해 “김 위원장은 뭘 더 따내자는 입장이 아니고 오히려 줘버리자는 입장이 아닐까 보여진다”며 “법사위도 갖기 싫어하는 듯하다. 차라리 민주당이 강행해서 다 먹어버리고 앞으로 그에 대한 실정 책임도 독박쓰게 될 것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주호영 원내대표는 18개 상임위원장 전부 포기하고 정책 대안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주 원내대표는 강경파나 김 위원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다. 

주 원내대표도 협상 결렬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는데 우리가 상임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들러리 내지 발목잡기 시비만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했다. 민주당이 제안한 7개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민주당은 오랜 반대와 전통을 깨고 법사위원장을 일방적으로 빼앗아가 버렸다. 저희는 후반기 2년이라도 교대로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민주당은)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2년 대선 승리 정당이 법사위를 맡자는 안에 대해 “그것 자체가 국회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에 반한다고 봤다.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고 일축했다.

사실 양당이 공식 언어로는 상호 책임 전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발표 직전까지 철저히 비공개했던 가합의안이 진짜 존재했는지 △가합의안의 내용이 법사위를 전후반기 2년씩 나눠서 맡는 방안인 것인지 △대선 승리 정당이 후반기 2년을 맡는 방안인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누군가가 녹취해서 공개하지 않는 한 서로 상대 탓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지 기자는 통합당 원내 지도부 및 당 지도부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과 문자로 입장 확인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주 원내대표는 “합의문 초안이라고 할 수는 없고 여러가지 경우를 가정해서 의견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까지 서로 논의한 사실이 있을 뿐이지 합의안 초안이라고 하면 합의라도 하고 서명이라도 할텐데 그런 것은 없었다”면서도 “서로 간의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선을 서로 확인해본 사실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견 접근이란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봤던 의견 접근이기 때문에, 법사위를 최종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론내지 않고 한 의견이기 때문에 그걸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저희들은 당내 많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부인하지도 않았고 수긍하지도 않았다. 

상임위원장을 하나도 갖지 못 한 상태에서 어떻게 민주당을 견제할 것인지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으로서 역할은 포기하지 않겠다. 국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을 더 가열차게 하겠다”며 “상임위에서 최대한 팩트와 정책, 논리와 대안으로 여당을 견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예정된 기자간담회 시간보다 조금 늦게 열었고 그로 인해 통합당 원내대표실 주변에서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국회의장 비서실은 협상 결렬 이후 공식 브리핑을 통해 통합당이 상임위원장 배분안에 대해서는 거절하더라도 상임위원 배정표는 제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통합당은 이내 배정표 제출도 거부하기로 했다. 

일단 급한대로 민주당이 나머지 상임위원장을 전부 맡되 추후에 양보하는 방안이 거론됐었는데 김 원내대표는 “통합당에서 오늘 상임위원장을 다 선출하게 되면 어떻게 중간에 다시 돌려달라고 하겠느냐라고 얘기했다”며 “통합당에서 상임위원장을 배분받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고 그래서 국회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특히 3차 추경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임위원장을 다 선출하고 상임위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배준영 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15시 반 즈음 구두 논평을 내고 “민주당이 결국 의회독재를 선포했다”며 “심지어 협상의 끝자락까지 명분을 쌓기 위해 근거없이 제1야당 대표의 과도한 개입을 운운한다. 허위사실로 내부 분열까지 획책하는 여당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 “통합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책 대안과 합리적인 비판으로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고 21대 국회에 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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