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강남 아파트 팔지만
다주택자 누구나 사연은 있다
청와대의 잘못된 시그널
부동산 정책 신뢰없음 그 이유
고위공직자 무조건 다 팔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남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하지만 부동산 재테크를 권하는 듯한 청와대의 시그널은 그대로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노 실장은 8일 아침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아들)의 거주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이달 내에 서울 소재 아파트도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노 실장은 작년 12월 “수도권 내에 두 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청와대 비서관급(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은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면 이른 시일 내에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처분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반포 아파트(서울 서초구)와 충북 청주 아파트 등 두 채를 보유한 본인은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다.

노 실장은 “지난 목요일(2일) 보유하고 있던 두 채의 아파트 중 청주시 소재 아파트를 매각한다고 밝힌 바 있고 지난 일요일(5일) 매매됐다”며 “BH(청와대) 근무 비서관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에게 1가구 1주택을 권고한데 따른 스스로의 실천이었고 서울 소재 아파트에는 가족이 실거주하고 있는 점, 청주 소재 아파트는 주중대사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수 년간 비워져 있던 점 등이 고려됐다”고 해명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강남 아파트를 팔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대대적으로 실거주 주택 한 채만 보유하자는 방침을 공표한 고위공직자가 반년 넘게 다주택 생활을 이어오다가 겨우 팔겠다는 것도 “똘똘한” 강남이 아닌 지방 주택이었다는 것은 씁쓸함을 남겼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똘똘한 한 채를 챙기겠다는 노 실장의 처신을 (부동산 시장은) 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동시에 정의당은 다주택자인 고위공직자의 주택을 강제로 처분하는 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7일 방송된 jtbc <뉴스룸>에서 “(노 실장이) 강남 집을 팔면 좋겠다. 그런데 거기에 십 몇 년째 아들이 살고 있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런다 하더라도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노 실장은 “의도와 다르게 서울의 아파트를 남겨둔 채 청주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 서울의 아파트를 지키려는 모습으로 비쳐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 했다. 송구스럽다. 가족의 거주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이달 내에 서울 소재 아파트도 처분하기로 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엄격히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 실장 정도의 사연은 다주택자 모두가 수 백개씩 내놓을 수 있는 뻔한 스토리다. 직장 때문에,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각종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무주택자인데다 원룸, 반지하, 옥탑방, 고시텔, 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에 살고 있는 경우도 매우 많다.

고승혁 jtbc 기자는 5일 <브런치>를 통해 “청주에서 정치를 해서 차기 충북지사로 꼽히던 그였다. 그의 행보는 SNS에서 깔끔한 부등호로 정리됐다. 충북지사 < 반포 주민. 청와대가 국민에게 보낸 시그널은 명확했다”며 “인생에 권력도 명예도 돈도 아무튼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강남의 아파트를 골라라. 도대체 몇 번인지도 모를 부동산 대책을 청와대가 믿으라고 윽박질러도 믿어서는 안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모든 말은 결국 입이 뚫려있으니 한 번 질러보는 군소리에 불과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그 모든 대책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아파트를 선택했다. 청와대 참모들도 청와대 발표를 안 믿었다”고 환기했다. 

작년 3월 자진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열린민주당 소속)은 2018년 7월 재개발 중인 서울 동작구 흑석동 뉴타운 9구역에서 25억 7000만원에 상가를 사들였다. 문재인 정부의 실수요자 위주 부동산 정책을 알려야 하는 현직 신분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 청와대 대변인 자격으로 대통령 주재 고위급 경제 테이블에 배석해서 내부 정보를 알아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전 대변인 소동으로 여권은 조심스러워졌다. 

부동산 문제로 발목잡히지 않기 위해 총선을 앞둔 작년 연말 이인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집을 재산증식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며 출마 예정자 중심으로 ‘거주 목적 외 주택의 처분 서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올해 1월20일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내에 주택 두 채 이상을 보유한 출마자들에 대해 1주택 외에 ‘매각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권고했다. 혹시 당선된다면 2년 안에 무조건 매각하도록 했다.

(사진=연합뉴스)
경실련은 민주당에 1주택 실현을 촉구했다. (사진=경실련)

아직 매각 기한이 남긴 했지만 민주당 소속 의원들 중 투기지역 다주택 보유자는 상당하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7일 국회 근처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정책을 결정하는 청와대 고위공직자와 여당 등 국회의원들이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하고 공직자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불로소득과 특혜를 누리는 현실에서는 국민을 위한 주택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3년 동안 지속된 집값 폭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의 자체 분석 결과 전체 의원 300명 중 250명(83%)이 유주택자이고, 이중 88명(29%)은 2주택 이상 다주택자였다. 민주당은 1인당 부동산 자산 평균이 9억8000만원이고, 다주택자 비중이 23%다. 

나아가 경실련은 서약 권고 대상에 속하는 투기지구-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 두 채 이상을 보유한 민주당 의원이 11명(강선우·서영교·이용선·양향자·김병욱·김한정·김주영·박상혁·임종성·김회재·김홍걸)이라고 공개했다.
특히 국토교통부의 6․17 대책 기준을 적용하면 9명이 늘어 총 20명(박찬대·윤관석·이성만·박병석·이상민·홍성국·조정식·정성호·윤준병)이다. 

심 대표는 “청와대와 여당이 1가구 1주택 정책에 행동으로 솔선수범 해주기 바란다. 야당도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부동산 주거 안정을 위해 책임있는 입법에 함께 나서기를 제안한다”며 “정의당이 제안한대로 청와대 참모, 국회의원, 장차관은 물론 1급이상 고위공직자들이 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을 강제로 처분하는 법을 제정해서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들의 주거 문제를 책임있게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보여나가기를 바란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모든 정책이 의미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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