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고 엄중한 이유
에둘러 표현
긁어부스럼이나 논란 안 만들어
‘권력의지’ 보다는 ‘겸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치인의 유형이 ‘권력의지형’과 ‘겸손형’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했을 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가 봐도 후자다. 통상 전자는 사안에 대한 판단이 빠르고 직관적이지만, 후자는 느리고 신중하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을 놓고 ‘신념 윤리’보다 ‘책임 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 의원이 딱 그런 스타일이다.

정치인의 책임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고 엄중한 것이 이 의원의 스타일이다.

출마 선언 뒤 언론 인터뷰 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이낙연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 의원은 8일 아침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체조경기를 자세히 보면 평소 훈련량이 많은 선수일수록 자세가 안정돼 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서 안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해서 안정감 또는 신중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속에 훈련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도 생각해주면 좋겠다”며 “신중함이라는 것은 어떤 정책 방향을 얘기할 때 그렇게 했을 경우 거기에 따르는 문제들이 무엇 무엇이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중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대표 후보자로서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비판에 대해) 그렇기보다는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 그런 편은 아니”라며 “(생각이 떠올라도 바로 말로 표현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건 당연하다. 왜냐하면 책임이 따르니까”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의원은 13개월 연속 차기 대권 주자 1위였다. 그러나 정치적 중량감에 비해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 너무 신중하고 엄중하기만 하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이지혜 한겨례 기자는 6월14일 출고된 칼럼을 통해 “(현안에 대해 물어보면 또 엄중하다고 하겠지라는 언론인들의 푸념은)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의원이 어떤 현안이든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무색무취 전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며 “정치권에선 부자 몸조심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선 1위 주자 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충분한 상황에 굳이 논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하지만 무작정 핵심 사안에서 멀찌감치 빠져있을 수도 없기에 전략적 애매모호 화법을 구사한다는 설명”이라며 “실제론 논쟁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마치 참전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전략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내에선 이낙연은 모든 게 세팅되어 있어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서복현 앵커의 거듭되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의원. (캡처사진=jtbc)

7일 공식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 의원은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금태섭 전 의원 징계 문제를 놓고 인터뷰어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의원은 7일 저녁 방송된 jtbc <뉴스룸>에서 “기본적으로 의원 개인의 소신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이 강제적 당론이라고 정했거나 당력을 총 집중하는 현안이 있을 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른 소신을 견지하겠다면 약간의 불이익을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했다. 

다만 “금 의원이 공수처 문제에 대해서 당의 입장과 다른 소신을 계속 견지했었다. 그 문제로 당원들이 후보 경선에서 현역이었던 금 의원을 탈락시키는 굉장히 엄격한 정치적 심판을 이미 해버린 것”이라며 “당으로서는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징계 여부라든지 하는 것을 정치적 심판으로 거의 끝났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뒤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당과 별도로 독립된 기구인 윤리심판원에 우리 지지자들이 제소를 해서 문제가 다시 된 것이다. 기왕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결과가 곧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요지는 △의원 개인의 소신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당의 중점 과제에 반대하는 소신을 피력하고 싶다면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이미 경선 탈락한 금 의원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 끝났기 때문에 징계는 불필요하다는 뉘앙스를 보이면서도 △독립적인 당 윤리심판원의 재심은 아직 남아 있어서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에둘러 표현한 중층적인 답변에 기자 출신 서복현 앵커는 무려 열 차례나 되물었다.

사실 이 의원은 당권 출마를 공식화하자마자 그동안 밀려 있던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았다. 

이를테면 △차별금지법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강남 아파트 대신 충북 청주 주택만 팔기로 한 것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증세 방안 △이스타항공 관련 이상직 의원 논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등이다. 이 의원은 기존의 엄중 모드에서 한층 나아가 모든 사안에 방향을 택해서 답변을 했다. 허나 금 의원 케이스에 대해서는 너무 애매모호했다. 당대표가 되면 기자들의 거친 질문에 자주 직면할텐데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의원은 8일 아침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남지사나 국무총리보다는 국회가 더 거친 곳”이라며 “(총리의 결정 과정에 비해) 국회의원은 그 과정상에 부딪치는 일들이 많다. 또 언론들도 정부보다는 국회 쪽이 출입기자가 훨씬 많고 어딜 가나 10명 넘는 기자들이 에워싸서 마구 알 수 없는 곳에서 화살을 쏘아댄다”고 묘사했다. 
 
정말 각종 현안에 대한 화살 같은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 곳이 국회다. 하지만 이 의원은 ‘유력 대권 주자’나 ‘정권 재창출’과 같은 정치적 욕망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겸손 모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의원은 8일 진행되어 9일 출고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적어도 내가 대표로 있는 동안 정권 재창출은 머리에서 지울 것”이라며 코로나19 등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고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뉴스쇼>에서 사실상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그걸 미리 예고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민주당에는 후보가 아무도 없다. 대선 후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13개월 연속 지지율 30%대로 차기 대권 주자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과분하다. 국민들의 기대나 목마름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투사됐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의원은 정치적 이익을 탐하는 이미지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선 끝나고 3개월만에 당권 도전에 나서게 된 명분이 중요하다. 이 의원은 코로나 국난 상황에서 국민과 당원이 불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뉴스쇼>에서 “국가적인 위기라고 하는데 내 입으로도 대답을 했는데 그때는 어디서 뭘 했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며 “특히 눈 앞에 큰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외면하고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이 생겼다. 그래서 도리가 없다. 여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표현했다. 

이어 “국민들이나 당원들이 이낙연이 한 번 해 봐라. 이런 여론이 압도적이지 않았는가? 그걸 내가 아닙니다. 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대권 주자 1위 말고도) 당대표로서 누구냐라는 조사가 있었다. 그런데 일반 국민의 50% 넘는 분들 또 당원의 70% 넘는 분들이 이낙연이 해봐라는 것이었다”며 “이 국가적인 위기에 너의 수완을 보여다오 하는 것인데 두려움을 안고 국민의 뜻을 받들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그럼에도 당권 레이스에서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점을 환기했다. 유일한 경쟁자인 김부겸 전 의원은 당대표가 되면 2022년 대선을 포기하겠다면서 2년 임기를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7개월짜리 당대표가 될 수도 있는 이 의원의 약점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은 <뉴스쇼>에서 “우선 내가 출마를 한다고 하고 또 대표가 됐을 때는 나 때문에 자칫하면 전당대회가 7~8개월 만에 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한테 미안하다. 그런데 이제 온라인 정당이 됐기 때문에 온라인 투표를 하게 되면 비용이 5분의 1로 절감되고 절차가 간소해진다”면서 사실상 대권 출마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어 “이번에 당을 2년 동안 맡으면 지방선거 공천권을 가진다. 그래서 굉장히 그 점에서의 경쟁이 올해부터 달아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년 봄에 누군가 그만둘 수 있다고 하면 그 경쟁이 내년 봄까지 미뤄지는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향한 경쟁을 꼭 올 여름부터 해야 되는가. 오히려 국가적인 위기 때는 그런 경쟁은 뒤로 미루는 것이 더 좋지 않는가. 그런 판단도 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금 의원에 대한 답변을 보면 친문재인계 세력에 대한 눈치를 어느정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의원은 연합뉴스에서 “(친문 세력을)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역대 최장수 2년 7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했던 이 의원은 당정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이 의원은 <뉴스룸>에서 “(정부에 쓴소리를 할지 말지는) 상황에 따라인데. 우선 쓴소리하기 이전에 충분히 협의를 해서 조정을 해야 된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확인도 하지 않고 쓴소리부터 해서 분란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며 “불가피할 때는 하겠지만 그것이 선행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시 내부에서 협의하면 될 일을 굳이 외부로 드러내서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기조인데 이 의원은 이것을 연합뉴스에서는 “현장의 얘기들을 더 시의적절하게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수정하기 쉽지 않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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