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확인
가족단위 무덤으로 추정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진=문화재청)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실묘역이 현재 복원으로 밝혀진 규모보다 훨씬 큰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실묘역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을 지하물리탐사를 통해 측정해본 결과 백제 사비기 왕릉의 배치와 규모가 훨씬 크게 조성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1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후기 능원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첫 단계로 2014년부터 지난해인 2019년까지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지하물리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각 봉분의 외곽에는 호석(護石 무덤 봉분 외곽을 두르는 돌)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해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은 현재 복원·정비되어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고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함께 조성되었거나 가족단위로 무덤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조사한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되어 왔다. 특히, 고분군의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능사:왕릉 주위에 세운 절)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바 있다. 

학계는 이 지역에 백제 고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1757년 제작된‘여지도서’에도 능산(陵山)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여 능산리 왕실묘역이 처음 드러난 것은 1915년 일본인인 구로이타 가쓰미와 세키노 다다시,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등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정식보고서도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과정에서 조사된 7호분과 함께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 하반기에는 능산리 고분군중 동하총(1호분) 내부 관대(棺臺) 조사 시행에 이어서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전체 시굴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8년에는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에서 출토된 인골을 연구하여 백제 무왕과의 개연성을 확인하였으며, 2019년에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에 대한 정밀 현황조사와 지하물리탐사를 통해 무령왕릉 주변에 백제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를 통해 고분간의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비기 왕릉의 주인과 백제 후기 능원의 모습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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