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주최 차별금지법 토론회
토론회 말미에 소란
범죄와 연결해서 반대 주장
논리적 오류투성이
불변하는 정체성 보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모두가 2시간이 넘는 토론회에서 왜 반대자가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법한 타이밍이었다. 그때 어김없이 격양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일 아침 9시반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운동본부)가 주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아침부터 2시간 반동안 진행된 토론회. (사진=박효영 기자)

발제, 토론, 질의응답이 마무리 되어가던 11시50분 즈음 객석에서 앨리스씨(가명)가 벌떡 일어나서 “지금 뭐 하는 것인가? 토론회의 개념도 모르는가. 토론회면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반대 의견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소리쳤다.

앨리스씨 옆에 앉아있던 스텔라씨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진행을 맡고 있던 배복주 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말씀을 해달라”며 발언권을 부여했다.

앨리스씨는 마이크 없이 큰 소리로 “성적지향 같은 경우는 무엇을 말씀하는 건가. 성적지향은 너무나 다양하다. N번방이나 미투 사건 같은 경우 정말 여성들이 범죄에 노출이 많이 되어 있지 않는가. 지금 광주에서 개학한지 얼마나 됐는가. 4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에 의해서 한 남자애가 밤마다 강간을 당해서 결국 사망하지 않았는가. 그런 4명의 아이들에 대해 어떤 처벌이 있었는가. 왜 아이들에게 이러한 동성애 교육을 의무화시키려고 하는지 세 아이의 엄마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속사포로 털어놨다.

이어 “나같은 경우 저희 아이들에게 반대할 수 있고 이런 교육을 가르치지 말라고 주장할 수 있는 우리 헌법상의 자유가 있다. 우리가 정신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헌법에 마땅히 나와 있고 법 앞에 국민은 평등하고 다 존중받아야 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한테 있다”며 “그런데 지금 오늘 토론회라고 해놓고는 저희를 불러서 지금 뭐 하는 것인가. 토론회의 뜻을 나랏일을 하는 분들이 모를리가 없다. 솔직히 나는 기대를 하고 왔다. 사실 존경하는 분들이고 해서 그런데 토론회를 왜 이렇게 이끌어가는 건가?”라고 따져물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앨리스씨는 토론회에서 반대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성소수자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광주에서 남성 동성애자 4명이 집단 성폭행을 저질러서 피해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고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또한 95% 절대 다수의 살인 및 성폭행과 같은 강력범죄는 이성애자 남성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앨리스씨의 논리구조는 중대한 오류를 안고 있다. 과거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한 범죄자 조승희씨는 한인이었는데 그 당시 미국인들은 조씨의 개인 범행을 한국과 연결짓지 않기 위해 경계하곤 했다.  

무엇보다 △빈번한 여성 폭력 현상을 아무 상관없는 성소수자의 권익 문제와 끼워맞추려고 한 것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국민 주권론을 성소수자 혐오론에 차용하는 것 등은 앨리스씨가 너무 나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앨리스씨는 계속해서 “지금 강남에서 남자가 여자 목욕탕에 들어오는 사건이 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금 여자 목욕탕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법이 통과되면 여성이나 아이들한테 어마무지한 위협이 되고 악법이 된다고 본다”며 “어떻게 그런 남자가 여자라고 하는 것을 우리 여자가 받아줘야 하는 건가. 나는 여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다른 구역에 앉아 있던 베타씨는 짜증섞인 말투로 “나는 여자인데 인정한다! 계속 인정하지 마시라!”고 받아쳤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소속 청중들은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대로 착석한 채 묵묵히 “그래서 지금!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이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보였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소속 청중들이 소란스러워지자 조용히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배 본부장은 “알겠다. 알겠다. 지금 무슨 취지로 어떤 말씀을 하는 것인지 알겠다. 일단 오해하고 있는 것이 차별금지법이 단순히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 같다. 의견이 있으면 저희에게 따로 전달해달라. 그러면 받아서 저희가 논의를 하겠다”며 앨리스씨에 대한 코멘트를 패널들에게 요청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섰던 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앨리스씨의 주장에 대해 조목 조목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말씀한 부분에 대해서는 편향된 의견을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강조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차별적 인식을 강화할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다”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낼 때 범죄와 연결시켜서 냄으로써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혐오를 오히려 강화하고 계시다는 점을 조금 설명드리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으로서 반대한다고 했는데 여성의 개념과 정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생물학적인 정체성, 주민번호 2번이 부여한 정체성 말고 다양한 존재와 의견들 속에서 교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여성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앞서서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에 대해 김신아 활동가(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토론에서 충분히 밝혀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부분은 같이 학습을 해나가면 좋겠다”고 일침을 놨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진희 위원장은 화를 참으며 앨리스씨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진=박효영 기자)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앨리스씨가 언급한 ‘강남 목욕탕 사건’은 지난 2월 실제 일어났던 일이 맞다. 성소수자로 판단되는 생물학적 남성이 여장을 하고 여자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신고를 당했고 검거됐다. 하지만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해당 남성의 이례적인 케이스를 가지고 성소수자 일반의 일탈이 빈번하게 벌어질 거라고 상정하는 것 자체가 성급한 사고방식이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모든 성소수자가 다짜고짜 생물학적 반대 성별의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부당한 경우를 당했다고 다 차별금지법의 내용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며 “성별이라든가 장애나 종교라는 것은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고 그것이 쉽게 벗어나기 어렵고 타고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그 정체성을 벗어나라고 강요할 수 없는 이런 것들에 의해 차별을 받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그런 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차별금지법이 무슨 무시무시하게 한 마디만 하면 잡아가고 이런 법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환경을 조성하는 법”이라며 “그러다보면 어쩔 때는 약간의 강제 조치를 취해야 되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설득하고 이런 내용을 알리고 그래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그런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 법이라고 이해해주면 더 법의 취지를 잘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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