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한 방 정리
정세균 총리가 적극 설득한 듯
김태년 원내대표의 세종시 국회
이낙연 의원의 자기 성찰
이재명은 여전히 사이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같은 날 같은 시간 이념과 가치가 다른 정당의 대표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똑같은 요구를 했다. 기이한 일이지만 그만큼 부동산 문제로 여권 전체가 혼란스럽고 헤매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필두로 집값을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봤다. 이제 공급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 공급을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로 충당할지 말지 주말 사이 뜨거운 감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①대통령의 정리 “그린벨트 해제 않고 보존하기로”
20일 아침 각자 국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정당 수장들이 모두 문 대통령에게 그린벨트나 부동산 정책의 혼선에 대해 정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먼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상무위원회에서 “정부의 부동산 후속 대책을 둘러싼 여권의 혼선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여당 중진 의원(진성준 의원)이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경솔한 발언을 하고 당정청 핵심 인사와 대선 주자까지 나서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쏟아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후속 대책이 나오기도 전에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부동산 정책의 성공 여부는 원칙과 신뢰, 일관성에 달려있다”며 “말로만 하는 입장 표명이 아니라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부동산 대책이 지금 최고의 민생 과제라고 말씀하셨던 만큼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여권의 혼선을 정리하고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바로 세워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은 누구 말을 듣고 정책을 신뢰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도대체 부동산 정책을 누가 주도하는지 분명치가 않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집을 지어줘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대해 총리도 딴 얘기하고 심지어 경기도지사, 법무부장관까지 발언을 쏟아낸다”며 “분명히 말씀드린다. 대통령 책임제 하에서 경제정책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주택 정책에 관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완전히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라며 “당청청이 의견을 정리했다고 하는데 내용이 모호하다. 유력 당권 주자 간에 의견이 다르고 소속 광역단체장과 심지어 법무부장관까지 끼어들어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그린벨트와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장기자랑 하듯 각자 주장을 내세운다면 시장과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책임하게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 하고 내뱉기만 하니 집권 야당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정부여당 내 혼선을 정리하고 입장을 밝혀달라. 부동산 정책과 같은 핵심 정책의 실패에 대해 대통령이 왜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실제 추미애 법무부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더불어민주당 당권에 도전 중인 김부겸 전 의원과 이낙연 의원,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모두가 그린벨트 해제 여부에 대해 한 마디씩 얹었다. 대체로 그린벨트 해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결국 문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 총리와의 주례회동을 갖고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직접 워딩은 없다. 문 대통령은 앞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판 뉴딜에 대해 길게 발언했지만 그린벨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 총리가 적극적으로 문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주말 내내 여권 내에서 그린벨트로 혼란이 격화되자 정 총리는 일요일(19일)에 방송된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 왜냐면 그린벨트는 한 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된다. 한 번 쓰면 복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매우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정 총리가 위기감을 느끼고 정무적으로 방향을 정한 뒤 문 대통령을 만나 빨리 정리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그린벨트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주택 공급 물량을 확대하기 위해 △국공립 시설 부지 확보 △국유 태릉 골프장 부지 활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국무총리실이 전했다. 

②김태년 원내대표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것이 있다. 수도권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출퇴근 시간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9호선만 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코로나19도 별 수 없는 지옥철 그 자체다. 

면적은 대한민국(10만188km²)의 10분의 1(서울 605.2km²+경기 1만184km²+인천 1063km²)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5178만579명)의 절반 이상(서울 972만846명+경기도 1333만8020명+인천 294만7217명)이 산다. 그래서 故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고 역대 정부 모두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국회 세종시 이전을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길거리 국장과 카톡 과장을 줄이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며 “더 적극적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렇게 (모두 이전) 해야 서울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 세종시(세종특별자치시)로 대표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행정수도’는 차이가 크다. 가장 중요한 국회, 청와대, 대법원 등이 서울을 벗어날 수 있느냐의 문제가 핵심이다. 원래 행정수도 이전은 故 박정희 대통령이 최초로 계획한 국책 사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강력하게 밀어붙었다. 실제 국회에서 2003년 12월29일 여야 합의로 특별법(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특별법은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이상한 관습 헌법을 명분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행정수도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다. 그런데 여전히 수도권 집중 현상은 심하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물론 세종시에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처들이 이전해 있다.

그래서 김 원내대표가 국회 상임위원회를 오가야 하는 ‘길거리 국장’과 ‘카톡 과장’을 묘사한 것이다. 안 그래도 서울에 있는 청와대와 국회가 조세징수권, 예산집행권, 교부권, 법률제정권 등등 주요 권한을 다 갖고 있는데 지방으로 물리적 실체까지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 현상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 이전 방안에 대해) 지난번에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결정됐다. 이제 와서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손사레를 쳤다.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도 “온나라 부동산이 쑥대밭인 이 시점에 세종시 국회 이전이라는 국가 개발의 거대 담론을 던졌다. 투기 조장 1등 정부와 집권여당답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도,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김 원내대표도 나름 지방분권에 대해 진지한 접근법을 갖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통합당 입장에서 보면 구체적인 플랜없이 갑자기 툭 말만 던져놓았기 때문에 영 믿음이 안 가는 것이다.

③이낙연 의원 “대처가 좀 굼뜨고 둔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법적으로 클리어됐고 연일 각종 현안들에 대한 시원한 워딩을 쏟아내고 있다. 아무리 이낙연 의원이 당권이든 대권이든 다 대세라지만 조바심을 느낄 수 있다. 이 지사는 코로나 정국 이후 안정적인 차기 대권 주자 2위다. 10% 중반대다. 혹자는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낙연 대 사이다 이재명의 싸움이라면서 ‘명낙 대전’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이 의원의 텐션은 국무총리직을 내려놓고 당으로 돌아온 올초부터 아주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전혀 급격하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이 의원은 이날 아침 기자들과 만나 “대처가 좀 굼뜨고 둔감했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정치인은 자유롭게 말해도 괜찮지만 나는 내 위치가 특별해서 좀 더 조심스러움이 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후보이기에 좀 더 자유롭게 내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당대표 후보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는 이낙연 의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날 이 의원은 국회 주변에 있는 민주당 중앙당사를 찾아 당대표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제 정식 당권 주자가 된 것이기 때문에 기자들로부터 좀 더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은 것이다. 이 의원이 언급한 “특별한 위치”라는 것은 부처 장관들을 통솔해야 하는 총리직과 국가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 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직의 무거움을 뜻한다.

입장 표명은 분명했으면 하고, 속도는 빨랐으면 한다. 그게 언론인들의 주문이다.

그래서 이 의원은 바로 현장에서 △그린벨트 신중론과 공급 확대 방안 △그린벨트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 비판 △국가시설의 지방 이전 촉구 △넘쳐나는 유동성이 주식시장 및 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 △특별감찰관제도 시행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 의원은 2021년 4월 예정된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무공천할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집권여당으로 어떤 길이 책임있는 자세인가를 당 안팎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 정당에서 어느 한 사람이 미리 결론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혀 또 다시 신중 모드를 보였다.

사실 최근 민주당 당권 주자들에게 가장 곤란한 질문이 무공천 문제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이 지사는 어려워하면서도 선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아침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거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보시니까 말을 안 할 수가 없다”면서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 정치는 어떤가. 안 믿는다. 또 거짓말하는구나.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렇게 말도 아니고 규정(당헌당규)으로 무슨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놨지 않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면 지켜야 한다”며 “그렇다고 이걸(성범죄) 중대 비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당원이나 아니면 우리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면 무책임한 소리가 아니냐 하겠지만 당연히 엄청난 손실이고 감내하기 어려운 게 분명한데 그래도 우리가 국민한테 약속을 했으면 공당이 문서로 규정으로까지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며 “도저히 정치적으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면 당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그 다음에나 겨우 규정 바꾸고 그건 당연히 내부적으로 당연한 일이고 규정 바꿔준다고 될 일은 아니고 국민한테 석고대죄하는 정도의 사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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