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타협 파행 책임에 ‘물러난다’
노사정 합의안 부결에 사퇴
현장투쟁파는 왜 반대?
코로나 이후의 업종 자체가 붕괴되는데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명환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24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위원장이 먼저 제안해서 열렸던 노사정 테이블이 빈손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노사정 테이블에서는 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 중집위원들(중앙집행위원회) 및 대의원들의 강력 반대로 무산됐다.  

보수진영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비난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맨날 강경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밉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대한민국 제1의 100만 전국노조 민주노총이란 조직은 그리 간단치 않다.

김 위원장을 비롯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략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고, 중집위원이나 대의원 등 다수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재벌 편만 드는 우파 정부라고 규정하며 비타협 노선을 견지한다. 그래서 2019년 초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략적 참여를 추진했지만 대의원대회에서 무산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코로나19 위기 속 경사노위 밖에서 노사정 테이블을 구성하자고 선제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내부 현장투쟁파의 벽을 뛰어넘지 못 했다.

결국 노사정 타협의 불발에 책임지고 사퇴하게 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예고한 대로 임기가 5개월 남짓 남았지만 (노사정 합의안 부결에) 책임을 지고 위원장, 수석부위원장(김경자), 사무총장(백석근)이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체제는 2017년 연말 직선제로 들어섰다. 3년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다. 하지만 협상파인 김 위원장은 그동안 현장투쟁파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언젠가는 조기 사퇴의 길을 가게 될 것만 같았다.

김 위원장은 “국민 전체와 호흡하는 민주노총이 되기를 지금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오로지 저희의 부족함으로 그런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6월 안에 합의안 도출을 목표로 팽팽하게 노사정 협상을 이어왔다. 노사정 대화 테이블에는 정세균 국무총리를 정점으로 △민주노총+한국노총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등이 참여했다. 

원래는 7월1일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협약식이 예정돼 있었고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대표자로 참석하려고 했지만 50여명의 중집위원들 다수가 강경 반대를 표방하며 김 위원장을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못 하게 막았다. 협약식 개최 15분 전에 결국 파행됐다. 정 총리는 민주노총에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협약식이 물건너 간 이후 김 위원장은 중집이 아닌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추인을 받으려는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 대의원 규모는 1500여명 가까이 되고 상대적으로 현장투쟁파의 정파성이 덜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결정족수는 투표자의 과반 이상이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 투표 결과는 1311명 중 △찬성 499명 △무효 7명 △반대 805명(61.7%)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왜 현장투쟁파는 반대하는 걸까. 

합의안은 큰 틀에서 △고용 유지 △기업 살리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으로 구성됐다. 

현장투쟁파는 △기업들의 해고 금지 의무가 명시되지 않고 “노력한다”는 수준에 불과하고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핵심 요구사항은 기존의 문재인 정부가 이미 추진하려는 수준 외에는 확실한 시행 로드맵이 없고 △반면 임금 동결 등 노동계의 희생만 담겼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21일과 23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이미 한국사회에서의 노동이 갖는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거라고 본다. 사회를 바꾸는 투쟁과 그 사회를 바꾸는 교섭의 두 바퀴가 정말 함께 살자라는 방향에 맞춰서 그렇게 굴러가야 된다”며 “이번에 사회적 교섭의 방향은 바로 민주노총 내 조직된 노동자보다도 조직되지 못 한 노동자들에게 방향이 맞춰져 있고 저임금, 취약계층, 원청보다는 하청, 이런 노동자들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니까 이번에 사회적 대화가 이른바 단위노조의 임금, 그 다음에 복리후생 이런 걸 가지고 논의한 게 아니”라며 “이른바 경영계 측에서는 우리한테 임금 삭감, 임금 동결, 임금 반납을 요구하고 우리는 거기에 그러면 더 교환하는 고용을 어떻게 보장해 줄 거냐는 이런 공식이 있었는데 그 공식이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김 위원장은 “기업의 책임을 많이 끌어내지 못 했다고 하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게 자본의 특혜로 가득 차 있다. 이건 동의할 수 없다”며 “이번에 반대하는 분들의 내용을 좀 보면 전무 아니면 전부를 다 가져왔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명환 지도부는 현장투쟁파의 벽을 넘어서지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에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완전체의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할뻔 했지만 결국 불발됐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절충안을 도출했던 때처럼 노사정 합의안도 민주노총 패싱 상태에서 후속 이행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내부 강경파가 물리적 압력, 동원식 줄세우기로 민주노총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민주노총의 사회적 고립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진보연대는 24일 논평을 내고 “(김 위원장 지도부의 무능함을 서두에 지적한 뒤 현장투쟁파의) 합의안 반대 프레임에는 전통적인 기업별 고용안정 투쟁의 관성이 있었다”며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정세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는 항공업을 비롯해 다수 업종에 이전 상태로 복구할 수 없을 만큼의 타격을 입혔다. 일시적 해고금지가 아니라 영구적 해고금지를 도입한다고 해도 일자리를 보존할 방법이 없다”며 “이런 정세에서 현장파 의견그룹은 밑도 끝도 없이 투쟁하자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국유화 요구도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정세에서 노사정 교섭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투쟁과 요구가 불가능한 사업장들, 즉 투쟁할 대상과 내용이 사라지는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회복할 수 없는 업종의 고용을 다른 경제 영역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예로 주기장에 서 있는 수백 대의 항공기는 국유화된다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다”며 “그 항공기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강력한 투쟁을 한들 이전처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사회적 대화 또는 노사정 교섭은 이런 코로나19의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진보연대는 “현장파 의견그룹의 주장은 평시에 그것도 지불능력이 있는 사용자를 상대로 한 투쟁을 코로나19 정세에 그대로 가져와 비판의 논거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민주노총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대상은 코로나19 정세에서 외통수에 내몰린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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