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갤러리 초대석 그림에 미치다⑭]김종근의 위대한 에술가의 명언(화가)
[중앙 갤러리 초대석 그림에 미치다⑭]김종근의 위대한 에술가의 명언(화가)
  • 윤장섭
  • 승인 2020.07.27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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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화가-프란시스 베이컨.
언젠가 나는 인간의 절규에 관한 가장 최고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예술은 집중 된 리얼리티를 최고로 획득해야 한다

1992년 4월 28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프란시스 베이컨이 죽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미술계뿐 아니라 많은 그의 그림에 애호가들은 "세기말의 가장 중요한 화가 , 20세기 최고의 화가, 현대미술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금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사진=김종근 교수)
금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사진=김종근 교수)

그는 1909년 영국인 부모 사이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 바로 오스카 와일드가 태어난 집 이웃에서 태어났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빈번하게 오가는 양친의 경마용 말 사육 때문에 그는 정규적인 학교는 물론 미술에 관한 수업도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아일랜드의 어린 시절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성장했다. 그런 환경에서 오로지 그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문 받은 가구와 따피를 디자인하는 장식가가 전부였다.

그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문 받은 가구와 따피를 디자인하는 장식가가 전부였다.(사진=김종근 교수)
그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문 받은 가구와 따피를 디자인하는 장식가가 전부였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러던 그에게 처음으로 화가로서 눈을 뜨게 하고, 문을 열어 준 것은 초현실주의시기에 그려진 피카소의 작품이었다.  1927년 파리의 폴 로젠버그( Paul Rosenberg) 갤러리에서 열린 피카소의 데생 전시에서 그는 "큰 충격과 아울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 을 받았고 이어서 첫 번째 유화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무살. 당시 그의 화풍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을 뿐. 베이컨은 그때까지만 해도 오히려 가구 디자이너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술은 하나의 놀이이자 게임

1930년 영국의 가구 잡지 "Studio"는 그의 가구 디자인과 함께 디자이너로서 그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그의 예술적 주제를 가름하고 그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커다란 충격으로서 "인간의 절규"를 발견한 것은 프랑스에서 였다.

그는 불어를 배우기 위해 체류한 파리 근교 샹티城의 꽁데 미술관에서 니꼴라 푸쎙의 그림  "무고한 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 (1628-1629)에서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절규를 그린 그림"으로 "이 그림은 언제나 그에게 끔찍한 인상을 남겼다" 고  회상했다.

베이컨이 "인간의 절규"를 발견한 것은 프랑스에서 였다.
베이컨이 "인간의 절규"를 발견한 것은 프랑스에서 였다.

일찍이 그의 작업은 1933년 평론가 허버트 리드의 눈에 띄어 그의 저서 "Art Now" 에 피카소의 "욕녀"(Baigneuse, 1929 )와 함께 " 예수의 수난도" ( Crucifixion , 62 x 48.5 Cm , 유화)가 소개 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제작한 "구성(인물)"에서는 아직도 피카소의 절대적 영향을 보여준다 .

이 그림은 이미 피카소가 1930년 예수의 수난상을 주제로 한 데쎙과 수채화의 전시를 보고 난 직후에 그려진 것들이었다 .  

1934년 그의 친구집 지하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나 완전 실패, 국제 초현실주의 전람회에서도 그의 작품은 거절당했다. 1944년부터 그는 3개의 시리즈로 작품을 제작, 1946년에는 파리의 유네스코에서 전시, 이즈음 비로소 뉴욕 현대미술관의 알프레드 바에 의해 작품이 거래되면서 그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두상 시리즈를 시작했다. 

베이컨은 뉴욕 현대미술관의 알프레드 바에 의해 작품이 거래되면서 그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사진=김종근 교수)
베이컨은 뉴욕 현대미술관의 알프레드 바에 의해 작품이 거래되면서 그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러면서 그는 50년까지 부리나케 몽테까를로의 카지노에 드나들었다. 거기서 그는 어쩌면 "모든 예술은 지금 완전한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하나의 놀이 즉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림부터 그는 "필치의 표현 기법과 인간의 신체에 대한 묘사" 에서는 한결같이 충실한 세계로 세계관을 심화시켜 갔다.

▲베이컨 작품에 몇 가지 특징

그의 초창기 그림에 경향으로 보아 그에게 영향을 준 또하나의 것은 1935년 헨리무어와 같이 작업하던 시기, 파리에 들러 그가 구입한 "입에 관한 질병" 이란 책과 이젠스타인의 필름인 그레브(la Greve)와 장갑선 포템킨(Cuirasse Potemkine)의 요소들도 빠뜨릴 수 없이 지적된다.

그 스스로가 밝혔듯이 "포템킨"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 주목 할 만한 시각적 이미지가 항상 나의 그림에 방향을 이끌었다"고 고백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고흐나 벨라스케즈 등의 명작들을 재해석하는 도상학적 방법의 테마도 빈번하게 다루었다.

반 고흐를 소재로 한 "자화상" (1957), 벨라스케즈의 "교황 이노쎈트 10 세" ( 1953 , 1960 )의 초상 , 장갑선 포템킨 (1957) 등의 작품들은 이런 그의 작가로서의 출발에 "인물" 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고흐에 관해서는 7점이라는 작품을 제작 할 만큼 경외감을 보이고 있다 .

만약 고흐가 자연 앞에서 열정을 그의 강렬한 색채로 불턔웠다면, 베이컨은 오히려 하나의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의 육체에 열정을 쏟아 놓았다고 이해 할 수 있다.

그는 종종 "언젠가 나는 인간의 절규에 관한 가장 최고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예술은 집중 된 리얼리티를 최고로 획득해야 한다고" 인간의 고통과 리얼리티를 주장했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온통 짓뭉개 지거나 일그러진 얼굴과 표정 , 온통 뒤틀리고 변형 된 인간의 육체 그 아우성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온통 짓뭉개 지거나 일그러진 얼굴과 표정 , 온통 뒤틀리고 변형 된 인간의 육체 그 아우성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그의 화면에는 온통 짓뭉개 지거나 일그러진 얼굴과 표정 , 온통 뒤틀리고 변형 된 인간의 육체 그 아우성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리고 그런 의식을 그는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 속에 모두가 도살장의 고깃덩어리처럼 침묵과 비명이라는 끔찍한 형태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베이컨이 인간을 하나의 정육점의 고깃덩어리로 동등하게 인식하고 있음은 그의 그림과 발언 도처에서 검증되고 있다. "나는 고기 덩어리와 도살장에 관계된 영상에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 영상들은 예수의 수난도와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다." 실지 그는 정육점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사진과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인체를 마치 푸줏간의 살코기처럼 비유화 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 이런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렘브란트의 " 도살 된 소" (94 x 67 Cm , 1655 년 , 루브르 미술관 소장 ), 이를 보고 들라크루아가 모사한 작품이나 , 오노레 도미에의 "푸줏간" 그림 , 수틴이 고깃덩어리의 비극적인 모습을 묘사한 "고기 덩어리"에 관한 회화적 모티브의 맥락 속에 나란히 서 있는 마지막 작가이기도 하다 .

그는 그림의 모델 상당수를 사진작가 이드워드 미브리지( Eadweard Muybridge )의 사진 작업을 통해서 그리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동세에 관한 해부학도 익혔다. 주로 3개로 구성 된 일련의 시리즈 작품 "인간 신체 연구" 나 "초상을 위한 연구" 등은 인체의 움직임을 드러내는데 있어 영화 속의 한 장면 장면처럼 스틸 이미지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물론 그 방법은 사진의 방법을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 대상 인물들은 대개 언제나 고립 된 인간이거나 두사람이 어우러진 상태로 빠른 속도감과 함께 화면에 뒹굴고 있다.

두사람이 어우러진 상태로 빠른 속도감과 함께 화면에 뒹굴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두사람이 어우러진 상태로 빠른 속도감과 함께 화면에 뒹굴고 있다.(사진=김종근 교수)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위 표현도 또한 다양하다 "앉아 있는 모습" "잠자는 모양" "두사람이 엉켜 있는 형태" " 섹스 하는 풍경"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 등에서 그 파라독스한 인간 모습의 정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켄버스 구성 중 이색적인 것은 늘 3개의 켄버스가 한 조가 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Triptyque" 시리즈 작품 제작 방법이다 .

베이컨은 1966년부터 1988년까지만 해도 그는 20여점의 인간의 연구에 관한 트리피티크 시리즈 작품을 완성했고, 그의 그림에 트리피티크 방법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그가 이런 방법을 택했을까 ? 이 점은 그가 선택한 사진 이미지의 연속성 표현에 이 방법이 적합했고 마치 이 연속 된 세 개의 이마쥬를 순간의 움직임 표현에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제작법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베크만의 3개 연작 "아르고 船들" (Les Argonatues ,203 x 290 Cm,유화, 1949-50 .뉴욕 개인 소장) 에서 보이는데, 베크만이 이야기의 구성상 이와 같은 방법을 채용하고 있는데 반해 베이컨은 단순한 움직임과 스냅사진 배열이라는 시각적 인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하나 눈 여겨 볼만한 것은 그의 회화에 배경이 되는 공간의 특유한 처리 방식이다. 

그는 특별하게 배경을 설정하지 않고 있으나 그냥 두어진 공간조차도 무대를 떠올릴 정도로 연극적인 공간이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는 특별하게 배경을 설정하지 않고 있으나 그냥 두어진 공간조차도 무대를 떠올릴 정도로 연극적인 공간이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는 특별하게 배경을 설정하지 않고 있으나 그냥 두어진 공간조차도 무대를 떠올릴 정도로 연극적인 공간이다 . 사각형으로 분할되어진 "방"은 일정한 면과 배경에서 철저하게 추상적인 공간으로 남겨 둔다.

이런 구도 , 즉 화면 중심에 위치한 사각형과 배경의 평면화, 그리고 인물 표현의 기법 등은 그의 작품이 넓게는 표현주의에서 미니멀 아트까지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의 여지를 가능케 하고 있다.

그의 작업 중 우리의 입장에서 간과 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인간" 이라는 일관된 주제에 대한 깊은 천착 , 초기부터 말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강한 붓놀림과 움직임에 대한 표현법과  지속적인 탐구 자세이다.

바로 그는 당시의 추상 회화라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방법과 신념에 따라 세기말의 독자적인 구상화가로 당당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베이컨을 통하여, 한 예술가가 자기 작품세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념과 뜨거운 열정으로 마침내 모든 것을 바쳐 도달하게 되는 숭고한 지점을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게 된다 . 

50년대 말까지도 인기를 얻지 못한 그를 일컬어 "윌리암 터너 이후 잊혀진 영국의 미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작가"라는 사실을...

▲현대미술에 끼친 베이컨의 영향  

그러면 과연 프랜시스 베이컨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는 비구상 미술, 즉 추상미술을 근본적으로 피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던 추상 회화나 앵포르멜의 그림에 유혹당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던 추상 회화나 앵포르멜의 그림에 유혹당하지 않았다.(사진=김종근 교수)
그는 단 한 번도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던 추상 회화나 앵포르멜의 그림에 유혹당하지 않았다.(사진=김종근 교수)

"나는 정말로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처럼 말한다. 가끔 이것은 너무 예쁘다. 장식적이고, 그러나 이게 전부다".라고 공공연히 멀리했다.

그런 그의 그림이 현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의 농도에 관해서는, 우선 그의 작품이 구상작가들이 드문 오늘의 현대미술 상황에서 외롭게 투쟁해 온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영향 중 우리는 같은 영국 작가이며 구상 화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호크니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인간의 신체를 그림의 가장 아름다운 주제"라고 생각한 호크니로서 인간의 벌거벗은 형상을 한 베이컨이 독특하고 인상적인 인체의 처리는 매혹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궤적을 우리는 호크니의 작품 "3월 24일 이른 시간에 춘 차차춤"(1961년작 )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인간의 신체 일부를 뭉개는 듯한 표현 방법과 화면 구성에서 베이컨의 테크닉을 다시 보게 된다.

또 하나는 프랑스 서술구상(Figuration Narrative) 작가들에게 보이는 그의 영향이다. 신구상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인 유고슬라비아 작가인 벨리코빅( V. Velickovic)과는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어를 잘한 베이컨이 파리의 벨리코빅과 이웃한 작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벨리코빅이 인간 신체에 대한 묘사를 다양하게 시도 제작했다는 점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벨리코빅이 신체의 과학적이고 해부학적 측면에서 신체를 분석 그리려 했다면, 베이컨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도덕적 고뇌를 열정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또한, 베이컨이 붉은, 그리고 오렌지색으로 화면 중간에 움직임이 강하고 동적인 모습으로 인간을 드러냈다면, 벨리코빅은 파란색 배경에 벌거벗은 인간의 걷거나 뛰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리얼리즘 회화의 작가인 루시안 프로이드 (Lucian Freud)와는 1942년부터 오랜 동료로서 모델 ("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을 위한 연구", 각 198 x 147.5 Cm의 3개, 1964년 )로서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프로이드의 인간 신체에 대한 사실적인 주제와 비장감조차 불러일으키는 벌거벗은 육체의 징그러움은 베이컨을 빼놓고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베이컨 회화의 꽃으로 지칭되는 인물의 형상성에 관한 끈질긴 탐구는 이탈리아의 1950년 1960년대에 미술과 1980년대의 트랜스 아방가르드 (Trans Avant -Garde) 작가들, 예를 들면 엔조 쿠치나 산드르 키아 등에서 인간의 변형과 표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예술의 단순성과 비정형성, 불규칙적인 대상 표현에서 그는 곧잘 쟝 뒤뷔페와도 비교된다. 그러나 그가 많은 형태의 변형으로 원시성에서 독자적인 인물 형태의 창조를 이룩했다면, 베이컨은 신체의 부분적인 변형과 생략으로 영화나 사진기가 구사할 수 없는 인간의 심연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이 가진 하나의 근본성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오히려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아라, 이제 이런 그림들을 보면 오래된 레이스와 같지 않은가"라며 그 추상미를 거부하는 몸짓 가운데에서 그는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정육점에 가면 고깃덩어리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고 "고깃덩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다"라고 되뇌던 베이컨이었다. " 내가 푸줏간에 갈 때면 언제나 나는 놀라움에 다다른다,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는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가 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러한 그의 전율은 단순히 그 자신의 이름이 "베이컨"이라는 돼지고기의 이름과 똑같다는 우스갯소리 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베이컨"에 대한 베이컨의 싸움, 어쩌면 이것은 그의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종근 교수, 미술평론가
김종근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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