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중앙뉴스=박종민]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아 왜군과 싸우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바 있는 의병장 휴정(休靜)서산대사가 한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가야만 할 때라도 길이 없다고 함부로 걷질 말라, 지금 나의 걸어가는 발자취가 후일 뒤 사람의 길이 되리니.”

500여 년 전에 남긴 말인데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 최첨단화한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명언이며 경구이고 교훈이다. 신구시대를 초월한, 세대를 넘나드는 도량과 역량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후대 후손 후예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침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면서 바른 행동과 행실을 하도록 하는 짧고 간결한 한마디 훈시 말이다. 사람들 모두가 자기처신을 잘 하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라는 잠언이다.

어찌 보면 세계적인 세기적 아포리즘(Aphorism)이다. 세세(世世)로 이어나갈 금언(金言)으로서 경각성의 경고이며 설유(說諭)인 admonition이다. 이 시대에 왜 어찌하여 태곳적 옛날의 인물이 쏟아낸 말이 떠오르며 회자되고 있는 걸까? 현대의 이 시국이 난세이며 난국이라는 느낌이 든다는데 있다.

자고나면 터져나는 사건사고와 거기 대비해 대처하는 정부당국지도자들의 행태에 심각 한 문제점이 있음이다. 예기된 문제점들이지만 조치를 취할 그들의 머리 가슴 속엔 안일무사가 그냥 맴돌고 있다. 급기야 겉으로 들어나 시발 성 큰 이슈로 튀어나오면서 폭발한다.

우리나라 전체를 쥐락펴락 할 정도의 위력과 영향력을 가진 대표급인사가 추행과 만행을 저지러 자신은 물론 국가의 격(國格)을 추락시킨 사례를 보라. 몸조심 입조심의 교훈을 망각한 그들이다.

애초에 무식하고 무모한 자이었는지 무지하고 무모하며 멍청한 행동거지를 일삼다가 딱 걸려들었다. 돈과 명예만 생각했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수치심과 인격엔 아예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이름난 정치인 지자체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하면 직을 관두면 그만이란 식의 뻔뻔하고 볼썽사나운 행태를 자행한다. 방송언론은 대서특필하여 추적하고 추궁하는데 본인의 잘못책임을 크게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은 별로다.

우리사회의 내일과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젊은이들이 뭘 보고 배우고 따르겠나!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필자가 십여 년 전 삼도봉등산에서 있었던 사례를 든다. 나름 교훈이 됐다.

삼도봉은 경상북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세 개의 광역지자체가 만나 경계를 이룬 해발1,178m의 백두대간의 아랫녘 정점줄기이다. 산정에 올라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록을 바라다보며 즐겁게 점심도시락을 만끽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하산 길에 들어섰다.

충청북도 쪽의 물한계곡절경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산록으로 이동하면서 하도 멋지고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콧노래도 부르고 시 한 수 읊조리며 내려오다가 그만 등산로를 이탈했다. 키가 허리춤에 이르는 조릿대 밭을 조금만 벗어나면 되겠지 하면서 들어가니 이젠 완전히 조릿대 밭이다. 다시 역으로 걸어 오르려니 너무나 많이 지나쳐왔다. 사면초과다. 그야말로 진퇴양란에 빠져버렸다.

내가 앞장서 조릿대 밭을 헤치며 나갔다. 함께 한 일행9명이 절친한 관계로 일거수일투족 나를 따랐다. 나를 믿고 따라나선 것이다. 200여m 쯤 길이 아닌 길을 헤치며 걸었다. 마침내 등산로를 찾았다. 뒤를 돌아다보니 새로운 길이 터 있었다.

내가 걸어서 온 길로 나머지8명이 걸어왔는데 명확한 길이 돼버린 것이었다. 사실 이때는 서산대사의 답설야를 몰랐었다. 내가 잘 못 들어선 발길이 그대로 길이 돼버린 것이다. 사람이 행해야 할 일과 실천에 옮길 행동에 앞서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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