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과 원형의 집수정 2기

(사진=문화재청)
조선시대 집수정(사진=문화재청)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부여(사비)가림성에서 통일신라시대와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집수정(우물) 각각 1기씩 발견 돼 당대 성내의 배수체계를 살필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은 백제 시대 거점산성인 ‘부여 가림성(사적 제4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집수정(성내에 식수 등의 물을 모으기 위한 우물) 2기를 최근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북성벽 내측부에 대한 수구와 집수 시설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9월부터 조사를 하던 과정에 최근 조선 시대에 사용한 방형(사각형) 집수정과 통일신라 시대에 사용한 원형 집수정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대 집수정은 조선 시대 집수정의 하층과 가림성 북성벽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길이 15m, 깊이 2.8m 이상의 크기로 평면은 원형을 띄고 있으며, 물을 가운데로 모으는 집수정과 그 외곽에 돌로 축조한 물을 차단하는 시설과 배수를 겸한 수로가 돌아가는 형태로, 부여 석성산성에서 확인된 집수정과도 유사하다.  

또한 조선 시대 집수정은 길이 4.9m, 너비 4.5m, 깊이 2.3m에 평면은 방형의 형태로, 내부에서 조선 시대 분청사기 조각, 기와 조각, 말머리 토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 시대 중기에 축조되었다가 가림성이 폐성되는 17~18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림성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부여 가림성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이에 발굴 팀은 북성벽에서 조사된 수구지와 함께 조선 시대 성내 배수체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내부와 주변 토층 조사를 통해 집수정의 최초 축성 시기와 축조 방식을 명확히 밝힌다는 계획이다.  

한편 부여 가림성은 백제의 사비도성을 수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에 쌓은 성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쌓았다. 아 같은 기록으로써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당나라의 장수 유인궤는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난공불락의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집수정 내부 (사진=문화재청)
통일신라 집수정 내부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1996년 동문지와 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2011년, 2015년~ 2018년까지 총 6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동문지와 남문지의 축조 형태, 백제 시대 성벽 축성법, 백제~조선 시대 개축한 성벽 흔적, 조선 시대 수구지, 정상부의 평탄지에 자리한 건물지 등이 확인된 바 있다.

문화재청과 부여군은 “가림성을 비롯한 부여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적인 조사를 통하여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ㆍ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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