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자세로 권력 절제”
11주기 추모식
DJ와 여야 화합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김대중 대통령(DJ)이 세상을 떠난지 11년이 흘렀다. DJ는 사상 최초 호남 출신 대통령이자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정치 입문 이후 40여년 동안 숱한 죽을 고비를 극복해오기도 했다. 또한 독재 권력에 맞서 치열하게 공부했고 6선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권 도전에서는 4수 끝(1971년·1987년·1992년)에 국정 최고책임자가 됐다.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故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지 11년이 지났다. (사진=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 현충원에서 DJ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여야정청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총집결했는데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으로 인해 참석 인원을 제한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한채 엄수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김 대통령은 길고도 질겼던 분단의 철조망을 넘어 남북이 오가는 평화의 새 길을 열었다”며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뚜벅뚜벅 큰 정치인인 DJ의 험난하지만 빛났던 길을 함께 가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와 싸우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외환위기를 극복한 김 대통령의 인동초 정신을 구해본다”고 말했다.

추도식 진행을 맡은 함세웅 신부가 미리 계획되지 않았지만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는 통합과 화합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으로 지나나치게 힘이 세다고 힘만 행사할 게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권력을 절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면서 여권을 향해 메시지를 냈다.

추도식에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 왼쪽부터 심상정 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 이해찬 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실 김 대통령은 군사독재 정권에서 당했던 고초에 대해 숱하게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을 통해 정적을 족치고자 했던 적폐청산의 동기가 DJ에게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DJ는 정치 보복을 자제했다.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내란살해범 전두환씨에 대한 사면을 보장해줬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군사독재 정권의 수괴임에도 비극적인 정치 보복의 사슬을 끊어내려고 했다. 

정 총리는 “김 대통령은 화합의 힘을 믿으셨다. 1980년 치욕의 군사법정에서 이렇게 유언했다. 나는 이제 죽지만 다시는 이 땅에 정치 보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죽음을 기다리는 최후 진술에서 화해와 용서, 화합과 통합을 말씀하신 것”이라며 “18년 후 정권교체를 이끌어냈고 죽음을 강요했던 군사 독재정권을 품에 안았다. 우리는 독재의 죄를 결코 용납 못 하지만 독재를 범한 인간은 용서할 수 있다. 대통령은 화해와 용서를 통해 화합과 통합의 시대를 활짝 연 것”이라고 정리했다. 

DJ는 빨갱이 사상검증의 가장 큰 피해자다. 사상검증이란 것이 다른 게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상종하지 못 할 취급을 하는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가 극심했던 대한민국에서 종북몰이가 대표적이지만 토착왜구 프레임과 적폐몰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강성 지지층과 달리 사상검증을 도구화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DJ의 어록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말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DJ의 정치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캡처사진=TVN)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날 추도식에 참석했는데 2017년 11월10일 방송된 TVN <알쓸신잡2>에 출연해서 DJ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유 이사장은 “정치 지도자는 서생의 문제의식을 갖고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했다. 유명한 말이다. 그게 그분의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을 제일 잘 보여주는 어록이라고 본다”며 “사람들은 어떻게 보냐면. 서생의 문제의식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상주의를 지지한다.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진보층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중 일부가 상당한 비율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노출했다. 상인의 현실감각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상인의 현실감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중에는 그분이 갖고 있는 서생의 문제의식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빨갱이라고 했다”며 “그 두 개를 붙이면 엄청나게 훌륭한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태도가 되는데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봐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만 주목한다. 이게 대중과 김대중이라는 정치인 사이의 불화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DJ를 중도진보 정치인이라고 평가했고 유럽의 정치 선진국에서는 양극단을 배제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이분은 두 측면 모두 자신의 선택과 무관했다. 출생 지역의 문제는 너무 부당했다. 두 번째 것도 본인의 선택의 결과인데 김 대통령 본인이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는데 너무나 오래 걸렸다”며 “그런 정치인을 어느정도라도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문화나 정신적 태도가 그 사회의 민주 정치에 대한 성숙도를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민주주의를 오래 한 나라들은 양극단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이분은 중도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는데 각각 양쪽에서 반대쪽 극단으로 밀어냈다”며 “나는 되게 그 당시에도 좀 안타까웠고 그래서 이분은 너무 빨리 일찍 온 분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목포에 오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병석 의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유 이사장은 2019년 하반기 조국 사태(조국 전 법무부장관)에서 문재인 정부를 방어하는 어용 지식인의 포지션에 섰다. 그러면서 양극단의 한쪽 공간을 키우고 양쪽의 대립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자처했다. 반대파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정권의 이익을 옹호했던 그의 모습은 민주적 관용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고 진영의 선동가와 가까웠다.

좋든 싫든 통합당은 국회에서 103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다. 청와대가 국정 주요 과제를 밀어붙이고 민주당이 입법 드라이브를 걸 일이 아니라 통합당과 협치를 모색해야 한다.

박 의장은 “김 대통령이 진정한 의회주의자이기도 했다”면서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는 원칙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할 때는 국회에서 저지하자고 외쳤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는 국민은 국회에서 싸우라고 뽑아주셨다면서 민주당 지도부를 다독였다”고 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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