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병원

초점 잃은 치매환자의 눈빛처럼 시들어진 커튼 사이로가을산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치매 노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502호 병동이다.

아니, 기거가 아닌 맡겨져 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되겠다. 기거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기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여 생활한다는 것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치매 늙은이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칠십이 가까우니 늙은이라고 하면 늙은이겠지만 그렇다고 정신줄까지 놓고 있는 치매 늙은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과 다를 것도 없다. 뇌경색. 심한 고혈압과 당뇨로 몸에 이상이 왔다고 의사들은 예전부터 말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내가 이곳 요양병원에 맡겨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뇨약과 혈압약을 매일 복용하며 나름 식이요법에 신경을 써왔는데 기어이 사달이 났던 모양이다. 왼쪽의 팔과 다리까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은 게 아무래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느낌이다.

감각이 무디어져 손에 쥔 물건도 자꾸만 떨어뜨리고 있다. 점점 내 몸이 차디찬 화석으로 굳어져 갈 모양이다. 젠장, 몸이 굳어지니 말조차 화통하게 내지를 수가 없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내가 정신을 놓고 있었던 시간들이 궁금해서 죽겠는데 그 어떤 것도 소리가 되어 나오질 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애써 입을 떼 보려 하지만 그때마다 틀어진 입술 사이로 침이 흘러 도통 단어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의 내 상태를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하리라 본다. 며칠 전인가, 안면근육에도 마비가 오고 있다고 의사가 작은애에게 하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의사의 그런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내 상태를 내가 더 잘 아는 것이라 놀란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내 상태가 최악이란 것을 부인할 힘도 또 그 어떤 희망도 없어 그저 잠이든 척 그들의 대화에 반응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을 아는 작은아이는 이불 밖으로 나온 내 손을 평소보다 힘을 주어 한참이나 쥐고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엄마, 괜찮아질거야”라고. 뭐가 괜찮아진다는 것인지, 차마 좋아질거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작은애의 심정을 잘 아는 것이라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이 녀석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작은애가 먼저 일어나 등을 보인 채 창밖을 마주 했던 것이다.

그 어떤 기대나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리움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이 나이에  터득했으니 우습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예감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역시 상대적이라 나를 찾아오는 녀석들은 나와는 영 다른 표정이라 섭섭하다.

하긴 그들에겐 챙겨야 할 제 가정이 있고 또 직장이 있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분명 야속하고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애들이 오는 날은 반가워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아이들도 그런 내 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그저 묵묵하게 눈만 껌벅이고 앉아 있다가 슬슬 내 곁을 빠져나가기 바쁘다.

특히 큰애 부부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비위가 상한 건지 자꾸만 손이 코에 올라가 앉는다. 고약한 것들. 큰놈은 누구를 닮은 건지 어릴 적부터 냄새에 민감했다. 하루면 수시로 제 방을 닦아내고 방엔 아무나 들이지 않는 까칠한 놈이었다.

그런데 며느리는 그 녀석보다 더 심했다. 하얗게 삶아놓은 행주도 제 손으로 다시 삶아야 안심을 했고 하룻밤 자고 가는 이불도 몇 번이고 털고 들어와 겨우 발만 집어넣고 자는 아이였다. 그런 점이 차라리 둘이 잘 맞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내 꼴이 이렇다 보니 그렇게 유별을 떠는 그놈들에게 심정이 사나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씩 얼굴만 들이밀고 가는 애들이 야속할수록 푸른솔이 그리워진다. 얘들에게 그의 안부를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는데도 도통 내 말을 알아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뭉텅뭉텅 기억이 소진(燒盡)되어 버리면 난 또 저 멍청한 늙은이들처럼 뒤틀린 몸뚱이로 밥타령이나 하면서 히죽거리고 앉아있을 텐데. 아, 이런 생지옥이 어디 있을까 싶다. 

벌써 어둠이 진하게 창문을 물들이고 있다. 아래층에서는 음식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닝닝한 조미료 냄새, 식기들의 부딪치는 쇳소리. 저녁 먹을 시간인 모양이다. 이렇게 아래층의 음식 냄새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올라오면  철재 위의 늙은이들 몸짓이 부산해진다. 오락가락 정신을 놓고 있어도 냄새에 먹이를 찾아내는 본능은 기억창고에서 삭제되지 않은 채 잘도 기어 나온다. 

삐쩍 마른 꺽다리와 뽀글뽀글 머리를 지져댄 뽀글머리가 침대 위의 그런 늙은이들에게 일일이 턱받이를 해주고 있다. 턱받이를 매주는 그녀들의 통통한 손목이 오늘따라 심술 나게 욕심난다. 나도 한때는 저들 못지않은 젊음이 있었거늘. 

팔월 하늘이 몽실몽실 흰 구름을 띄우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 안은 타닥타닥 슬리퍼 끄는 소리도 삼키지 못하고 대책 없이 옆 교실까지 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교무실을 나와 노천교실이 잘 내다보이는 우리 반 교실에 앉는다.

창 너머로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달구어진 화단의 칸나가 붉은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 노송에 둘러싸인 노천교실이다. 그런데 웬일로 그곳이 평소와 다르게 조용하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매미들만이 그악스럽게 울어대고 있다.

체육교사로 부임해 온 푸른솔은 학교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노천교실에 체육 특기반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국가대표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 씨름선수출신이었던 것이다. 물론 난 늦게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쨌든 그런 그가 시골 중학교 체육교사로 온 덕분에 노천교실은 방과후 모래판이 만들어졌고 새삼 활기넘치게 됐다. 

나 역시도 봄처녀의 그것처럼 하루하루가 싱그럽기 그지없게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칠판 앞에 서 있는 내 가슴에 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랬다. 내가 그에게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오늘도 종례를 마친 빈 교실에 앉아 퇴근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운동부원들 속에 있는 그를 맘껏 훔쳐보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내가 상당히 당혹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성이 처음이냐고 묻는다면 곤란하다. 대학 축제 때 5월의 여왕으로 뽑혔던 전적이 있는 만큼 내게 목매는 남학생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남자를 보는 기준 역시도 그에 상응해 만만치 않을 것이고, 간혹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진한 연예 경험도 두 손에 꼽을 만큼은 가지고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가슴 뛰게 하는 남자는 기억에 없다. 더욱이 갓 볶아낸 커피 향에 빠진 듯 사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남자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그 어떤 작업을 하려는 건 아니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아니, 난 어쩌면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이처럼 바보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오늘은 땀범벅으로 부산을 떨던 그들이 노천교실에서 보이지 않으니 적잖이 실망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니다. 덕분에 3학년의 2학기 수업계획표를 완벽하게 마쳤다. 졸업반인 그들의 다음 학기는 논술과 에세이 쓰기에 비중을 두는 것에 차시를 할애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도시학생들과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그 부분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난 다시 창밖을 살피다 결국 퇴근하기로 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든다.

교실 밖으로 나오니 한여름 열기가 기다렸다는 듯 사정없이 목덜미를 핥아댄다. 아마도 이 같은 땡볕의 날씨라 푸른솔이 학생들과 학교 인근의 물가에라도 간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푸른솔은 학생들과 융합수업에 참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이다. 순식간에 학생들 사이에 인기 투표 상위를 차지한 것도 뜻밖의 일은 아니고. 그러니 이런 모습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를 혹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곧장 운동장을 가로질러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늦춘 탓에 평소 이용하던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다. 다음 버스는 4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아니, 시골버스 시간이란 것이 기사님 마음대로라서 40분을 넘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감안 해 다른 볼일을 보러 갔다 올 수도 없다.

그래서 몇몇 동료 교사들은 이 같은 불편함에  학교 인근 마을에 방을 얻어 주말에나 시골버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난 이 동네 방을 얻어 생활하는 것보다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특별히 행동에 제약이 없는 시골버스 출퇴근을 선호한다. 산간벽지 마을에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학부형들의 레이더망 1순위로 걸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예나 수학선생이 더위를 피해 동네 어귀 산책을 나갔다 우연히 과학 선생을 만나게 된 일을 누군가 둘이 사귄다는 소문으로 퍼트려  한동안 이들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던 일도 그 중 한 예이다. 그러니까 난 예초부터 그런 사생활 노출을 그들에게 일체 제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난 시간 개념없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하고 한적한 대합실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읽다 접어 둔 책을 꺼내든다. 그런 내 주위로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아오른다. 아니, 파리 소리가 아니다. 뭔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핫 둘 핫 둘……”
앗! 녀석들이다. 체육특기생들. 난 선생이란 사실도 잊고 채신없이 대합실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온다. 그리고 반가움에 그만 탄성을 지른다. 역시나 두 줄로 늘어서 달리는 아이들 속에 푸른솔이 내 눈에 들어온다. ‘어머!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나는 거야!’ 나는 반가움에 그를 향해 눈을 흘긴다. 그런 내 눈에 풀빵처럼 얼굴이 부풀어 오른 3반의 찐빵녀석도 들어온다.

“어이, 찐빵!”

난 아이들 속에서 맨 앞줄의 찐빵을 크게 부른다. 생각 없이 그들을 막아선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서다. 마침 녀석의 별명이 생각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녀석의 얼굴이 워낙 동글동글한데다 밥보다 찐빵을 싸온 날이 더 많아 녀석의 별명이 되었다고 언젠가 3반 아이들이 말했었다.

“선생님! 목말라요.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찐빵은 내가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뛰는 걸 냉큼 멈추고는 슈퍼 앞에 내놓은 아이스박스부터 가리킨다. 마치 날 만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사달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찐빵이 소리를 지르자 뒤따르던 녀석들도 일제히 날 향해 외쳐댄다.

“선생님, 아이스크림 사줘요”

푸른솔도 배시시 눈인사를 건네며 내 옆으로 와 선다. 그런 그의 옷이 땀으로 젖어 도대체 눈을 둘 수가 없다. 탄탄한 상체의 근육이 젖은 티셔츠 위에 그린듯 선명하다. 멋있다. 남자가 정말 잘생긴 푸른 소나무다. 난 그런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얼음통을 가리킨다.

순간 아이들은 “와와” 소리를 지르며 얼음통으로 냅다 달려간다. 그런 녀석들 모습에 푸른솔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아이스크림 통에 매달린 녀석들은 어느새  포장지를 벗겨내기 바쁘게 혀에 발라먹기 시작한다. 그 중 한 녀석이 달려와 아이스크림을 푸른솔과 내 앞에 내밀어 낸다. 그런데 푸른솔이 욕심 사납게 내 것까지도 넙죽 낚아채어 간다.

그 모습에 어이없어 난 또 웃고 만다. 내 웃음에 그도 따라 웃는다. 그런 그가 투박한 손가락을 움직여 겉포장지를 민첩하게 벗겨 나에게 내민다. 아아, 저 하얗게 싱글거리는 웃음. 푸른솔! 으으 윽, 난 그의 상큼한 마력에 빠져 그만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얼른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물고 만다.

“어매, 어매! 이 할매 좀 보소, 또 정신이 나갔구만. 화장지를 이렇게 통째로 넣고 뜯어 잡수다니. 난리가 아니네, 난리가 아니여! 왜 또 이러실까, 참말로 한동안 괜찮으시더니...”

꺽다리 소리다. 그 여편네가 우악스럽게 내 입술에 투박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사정없이 후비고 있다. 차갑고 찝찔한 그녀의 손가락 침입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가락을 물어 챈다. 그러다 또 오줌까지 질금거리고 만다. 젠장, 눈물도 나온다. 아! 생지옥이 따로 없다. ‘여보! 푸른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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