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아베
정계 은퇴는 아니고 중의원 신분 유지
평화헌법 개정하고 싶었지만
아베 마음 속 후임자는 누굴까
한일 관계 전망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아베가 물러났다. 한국인들은 2017년 초 국정농단 탄핵 정국 당시 “일본에 아베, 러시아에 푸틴, 북한에 김정은, 미국에 트럼프로 둘러쌓여 있게 됐다”며 한반도 정세를 놓고 푸념하곤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자민당(자유민주당) 극우 전략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최고 권좌에 8년 가까이 올랐던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28일 17시 총리 관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지병을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하기로 했다”며 “코로나19 재난 와중에 물러나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6월 정기검진에서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 약을 쓰면서 전력으로 직무에 임했지만 지난달 중순부터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겨 체력을 상당히 소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이달 중반에는 재발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투약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아베 총리는 “(투약의 효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28일 17시 총리 관저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아베 총리는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인데 병과 치료를 받느라 체력이 완전하지 못 한 고통 속에서 중대한 정치적 판단을 잘못해 결과를 내지 못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이미 24일 관두기로 맘먹고 비서진에게는 나중에 의사를 전달했다고 풀어냈다. 게이오대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던 아베 총리는 추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물론 총리 사퇴가 정계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수반으로서 총리직을 수행하기에는 건강이 너무 나쁘다는 것이지 현직 중의원 신분은 유지된다.

아베 총리는 “한 사람의 의원으로 계속 활동하겠다. 여러 정책 과제 실현을 위해 미력을 다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1차 집권 중이던 2007년 9월에도 같은 지병으로 총리직을 내려놨던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만드는 정상국가화를 죽도록 완수하고 싶었다. 

결국 아베 총리의 손으로는 헌법 개정을 하지 못 하게 됐는데 이에 대해 “장이 끊어지는 느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어 “유감스럽게도 (개헌 관련) 국민적 여론이 충분히 고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한 명의 의원으로 (개헌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나아가 아베 총리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이 손으로 해결하지 못 한 것은 통한스럽기 짝이 없다”며 “모두 자민당이 국민 여러분께 약속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베 총리는 후임 총리를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해 겉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최대한 자기 코드에 맞는 인사를 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은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의원내각제 체제다. 중앙 권력을 채우기 위해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두 번을 치르는 우리와 달리 의회 선거(상원격인 ‘참의원’은 6년 임기가 보장되지만 정원 절반씩 3년에 한 번 선거+하원격인 ‘중의원’은 임기가 4년이지만 총리의 의회해산권 행사로 인해 언제든지 선거가 치러짐)만 치른다. 중의원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의 대표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는 것이 관례다. 그 총리 후보가 전체 중의원(465석)의 투표를 통해 공식 총리로 선출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1955년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1993년~1996년+2009년~2012년)를 제외하고는 항상 강력한 집권 다수당이었다. 그래서 자민당의 현직 총재인 아베 총리가 누구를 후임자로 밀고 있을지가 주목된다. 

일본 언론들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국무총리) △고노 다로 방위상(국방부장관)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외교부장관) 등을 하마평에 올려놓고 있다.

아베 총리는 “새 강력한 체제 아래 추진력을 얻어 새로운 정책의 실현을 향해 나아갈 것을 확신한다. 차기 총리가 임명되는 최후까지 확실히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에게 후임 총재 선거의 방식과 일정에 대해 일임했다. 9월1일 열리는 당 총무회에서 정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8년 가까이 총리직을 수행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입장에서 아베 총리의 공백은 솔직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자민당 차원의 통치행위로 봐야겠지만 아베 총리는 분명 극우 인사로서 한일 관계에서 껄끄러운 역사 문제를 놓고 전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아베 총리가 단행한 대한국 무역 제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28일 오후 논평을 내고 “아베 총리의 재임 기간 동안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다. 새로 선출되는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에 보다 전향적인 시선으로 임하는 각료이길 바란다”며 “역사의 아픔을 인정하는 참회와 화해의 토대위에 양국 간 협력과 미래를 도모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최지은 더불어민주당 국제 대변인은 “새로 서게 될 일본 정부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일 간 연대와 협력은 동아시아 안보, 경제, 방역 등 국제관계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교역과 경제를 위해서도 양국 간의 대화와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보다 전향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청와대는 여야 정당들과는 달리 한일 갈등의 측면에서 전향적인 태도 전환을 주문하는 입장을 피력하지 않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짧은 입장문을 내고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로서 여러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고 특히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온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 아베 총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당분간 한일 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책 <아베는 누구인가>를 집필한 일본 및 외교통 길윤형 전 한겨레21 편집장(현직 한겨레 기자)은 28일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아베가 내려온다고 한일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다. 변화가 없거나 변화가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 아베가 나갔으니 더 나빠질 일은 없을 듯”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날 출고된 기사를 통해서는 “사상 최악이라 평가되는 한일 관계의 미래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아베 총리는) 1시간에 걸쳐 사임 기자회견을 열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남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가 해결하지 못 해 통한의 극치란 표현을 사용한 3대 과제는 자신이 필생의 과업이라 거듭 언급해온 개헌, 일본인 납치 문제,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쿠릴열도 남단의 섬 4개에 대한 러일 영토 갈등 해결)이었다”며 “현재 한일 갈등의 핵심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 차기 총리가 타협적인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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