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트랙 전략
백혜련 의원도 대표 발의 
국민의힘 없이 법 통과 가능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미뤄지고 있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국민의힘(구 미래통합당)에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만 선임해준다면 △청와대 특별감찰관 △북한인권재단 이사 등의 선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제안하고 있고, 또 한쪽으로는 소속 법사위원들(법제사법위원회)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 절차를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국힘을 압박하고 있다.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백혜련 민주당 의원(재선)이 14일 아침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백 의원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후보추천위원에게 부여된 비토권은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지 위원회 구성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을 보장하는 의미가 아님에도 국민의힘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며 “후보 추천 해태 행위는 공당으로서 자격 상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러한 국회 횡포와 직무유기에 정당한 입법권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이 8월 2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추천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왼쪽부터 소병철 의원, 김종민 의원, 백혜련 간사, 박주민 의원, 최기상 의원. [
더불어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8월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 추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소병철 의원, 김종민 의원, 백혜련 의원, 박주민 의원. (사진=연합뉴스)

국힘은 공수처 자체에 반대하고 있고 작년 연말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4+1(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의 드라이브에 홀로 반대한 바 있다. 국힘은 공수처가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원론적인 비판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정적과 야당만 탄압할 것이라는 우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원칙에 맞지 않게 둘 다 보유하고 있다는 모순 등을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공수처법이 작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만큼 법률에 따라 공수처가 공식 출범돼야 하는데 국힘은 헌법재판소에 위법성을 심판해달라고 청구한 상태다. 동시에 추천위원 명단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출범을 지연시키고 있다. 

통상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구의 위원 추천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실력행사를 해왔다. 2018년 7월~9월 구 자유한국당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명단을 미제출하면서 시간을 지연시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나서고 있는 것인데 일단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즉각 추천하고 정상적 출범을 약속한다면 특별감찰관 후보자와 북한인권재단 이사의 국회 추천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주호영 국힘 원내대표는 9일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하겠다”고 받아쳤다.

9월부터 이낙연 신임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은 국힘과의 협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공수처가 숙원사업임에도 국힘과 협력해서 출범시켜보려는 제스처를 취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법사위원들의 입법 압박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백 의원 법안까지 3개인데 앞으로 더 발의될 수도 있다. 충분히 발의를 해놓고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뒤 의석수로 밀어붙여서 △법사위 1소위 상정 △통합당없는 의결 등의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면 김용민 의원(초선)이 8월24일 발의한 공수처 개정안은 “6조 5항 추천위원회는 국회의장의 요청 또는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거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위원장이 소집하고 재적위원(7명)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 원안에는 7명 중 6명의 동의가 있어야 공수처장 후보를 확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던 만큼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해놨다. 하지만 김 의원의 개정안은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없어도 의결이 가능하도록 5명의 동의만 얻도록 만든 것이다.

박범계 의원(3선)이 9월8일 발의한 것의 골자는 “5항 국회의장은 교섭단체에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하여 위원의 추천을 서면으로 요청할 수 있고 각 교섭단체는 요청받은 기한 내에 위원을 추천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요청받은 기한 내에 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교섭단체가 있는 경우 국회의장은 해당 교섭단체의 추천에 갈음하여 다음 각 호의 사람을 위원으로 임명하거나 위촉한다”는 것이다. 국힘이 계속 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박병석 국회의장이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사단법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을 위원으로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백 의원의 개정안은 박 의원의 것과 같고 추가적으로 “소집된 추천위원회는 30일 이내에 처장 후보자 추천을 위한 의결 절차를 마쳐야 한다. 단 1회에 한하여 위원회 의결로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하여 연장할 수 있다”는 대목을 삽입했다.

이미 법정 출범 시한이 늦어진 만큼 백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50일 안에 출범을 완료할 수 있도록 속도에 신경을 쓴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 위와 같은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내거나 공식 당론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앞으로도 국힘과의 공수처 관련 협상을 진행하면서 뭔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법사위 채널로 입법 압박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압박을 해도 국힘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실제 국힘 패싱으로 법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